김기석의 새로봄(48)

 

시름하는 동조자

 

그 뒤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거두게 하여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그는 예수의 제자인데, 유대 사람이 무서워서, 그것을 숨기고 있었다. 빌라도가 허락하니, 그는 가서 예수의 시신을 내렸다. 또 전에 예수를 밤중에 찾아갔던 니고데모도 몰약에 침향을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왔다. 그들은 예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대 사람의 장례 풍속대로 향료와 함께 삼베로 감았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신 곳에, 동산이 있었는데, 그 동산에는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하나 있었다. 그 날은 유대 사람이 안식일을 준비하는 날이고, 또 무덤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거기에 모셨다.(요한복음 19:38-42)

 

갈릴리의 어부들은 ‘나를 따라 오너라’라는 부름을 들었을 때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다. 즉각적이고 전폭적인 응답이었다.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리던 1세기 갈릴리의 상황은 참담했다. 그는 황제의 이름을 딴 도시 티베리아스를 건설했다. 그 건설비용을 감당해야 했던 것은 무고한 백성들이었다. 그는 또한 자기의 임명권자인 로마에 잘 보이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징수했다. 조상 대대로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던 어부들도 배와 그물의 크기에 따라 세금을 내야 했고, 기껏 잡아 올린 물고기도 헤롯이 만든 염장 처리 공장에 헐값으로 넘겨야 했다. 삶은 피폐해졌고, 혁명의 기운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예수의 첫 번째 제자들이 어부라는 사실이 암시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복음의 말씀을 듣는다고 하여 모두가 주님을 따라나서는 것은 아니다. 예수를 따라다닌 사람들은 대개 가난한 이들이었지만 유력한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예수의 새로운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또 깊이 공감했지만 모든 것을 버려두고 그분을 따를 근기가 없었다. 자기가 예수의 가르침에 공감한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드러내지도 못했다. 그것은 주류사회의 질서를 해치는 일처럼 보였고, 그때 자기들에게 집중되는 비난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해야 할까? 따름의 철저성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그들은 비겁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규정은 여린 싹을 짓밟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여백이 없는 믿음의 강요는 허위의식을 낳기 쉽다.

 

 

복음에 동조하면서도 여전히 생활에 매여 있는 이들이 있다. 헨리 나웬은 그런 이들을 가리켜 ‘시름하는 동조자들’이라 명명했다. 그들을 비웃거나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후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숨은 제자였던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를 찾아가 주님의 시신을 요구했다. 유대인들이 두려워 자기의 신앙적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던 그가 ‘겁 많은 자의 용기’를 낸 것이다. 차마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내적 끌림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자기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위험과 사회적 평판을 계산하지 않았다.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 백 근을 가져와 예수님의 시신을 닦고 새 무덤에 모셨다. 빛나는 신앙적 도약의 순간이다.

 

경직된 믿음은 자칫 잘못하면 율법주의로 흐를 수 있다.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려야 한다.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처럼 신앙도 그렇게 배워가는 과정이다. 넘어지면 일어서면 된다. 지향만 바르면 된다. 지향이 바르면 잠시 푯대가 보이지 않아도 낙심할 것 없다. 저 언덕을 넘으면 푯대는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다.   

 

*기도*

 

하나님, 믿음은 결단이고 모험이라는데 안일에 길들여진 우리는 도무지 길을 떠나지 못합니다. 우리 옷자락을 붙드는 옛 생활의 습성을 떨쳐버릴 힘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결단해야 할 때를 놓치곤 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우리 영혼은 누추해졌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는 어떻게 두려움을 떨치고 위험 앞에 설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주님, 그들을 일으켜 세웠던 그 뜨거움을 우리에게도 주십시오. 자아의 한계를 넘어 자유롭게 주님의 뒤를 따를 수 있는 검질긴 믿음을 우리 속에 심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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