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70)

 

소나 나귀를 매개로 하여

 

너희는 원수의 소나 나귀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보거든, 반드시 그것을 임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너희가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의 나귀가 짐에 눌려서 쓰러진 것을 보거든,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말고, 반드시 임자가 나귀를 일으켜 세우는 것을 도와주어야 한다.(출애굽기 23:4-5)

 

성정이 다르고 지향이 다른 이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고단한 일이다.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소한 차이가 관계를 어렵게 만들곤 한다. 욕정을 품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없을 수 없다. 문제는 갈등이 ‘함께 함’에 대한 회의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다른 이들과 등을 돌리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화해의 연습이 필요하다.

 

토라는 화해를 가르치기 위해 구체적인 상황 하나를 제시한다. 소나 나귀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들짐승의 먹이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짐승이 잘 아는 사람이나 가까운 이들의 소유라면 우리는 얼른 그 짐승을 붙잡아 주인에게 돌려줄 것이다. 짐에 눌려 쓰러진 짐승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 주인을 잘 모른다 해도 그 딱한 광경을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런데 만약 그 짐승의 주인이 원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해관계가 얽혀 사이가 나빠졌든, 삶의 방식이 너무 달라 비위가 맞지 않는 사이이든, 원수의 불행은 그다지 기분 나쁜 일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성경은 단호하게 말한다. 원수의 것이라 해도 길을 잃고 헤매는 짐승을 보거든 반드시 임자에게 돌려주고, 짐에 눌려 쓰러진 짐승을 보거든 그냥 내버려 두지 말고 반드시 임자를 도와 나귀를 일으켜 세우라는 것이다. ‘반드시’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있다. 이것은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요구가 아니다. 우리가 모름지기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꼭 해야 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왜 이런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을 요구하시는 것일까? 그것이 치유의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길을 잃거나 무거운 짐에 눌려 쓰러진 ‘원수의 짐승’이 아니라, 그런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다. 내게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어려움에 처한 모습을 보면 ‘잘 됐다’, ‘고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들의 솔직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당연한 것으로 혹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그 마음에 고착되는 순간 인간적 성장은 멈추게 마련이다. 비록 적대감이 그와 나를 갈라놓았지만, 더 깊은 곳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원수를 직접적으로 돕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토라는 가여운 처지에 빠진 동물을 매개로 하여 화해를 모색할 지혜를 발휘해보라고 말한다. 꼭 동물이 아니라도 마음을 열고 바라보면 우리를 이어줄 끈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곤란에 처한 원수를 돕는 것은 사실은 자기를 돕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속에 있는 쓴 뿌리, 즉 악한 경향을 극복할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화해의 용기를 발휘할 때 우리는 더욱 커진다. 

 

*기도*

 

하나님, 마음 내키지 않는 이들과 함께 지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불편한 장소와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마음이 무거울 때는 그런 이들이 없는 어딘가로 훌쩍 떠나 살고 싶다는 헛된 꿈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만 지낼 수 없는 게 세상 현실입니다. 주님, 낯선 이들을 존중하는 열린 마음을 심어주십시오. 고통과 시련을 함께 감내하면서 서로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사랑에 당도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십시오. 아멘. 

'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 > 김기석의 새로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와의 복권  (0) 2019.05.18
본이 된 사람  (0) 2019.05.17
소나 나귀를 매개로 하여  (0) 2019.05.16
예언자 오뎃  (0) 2019.05.13
시험을 기뻐하라고?  (0) 2019.05.07
해석자가 아니라 친구가 되라  (0) 2019.05.06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