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72)

 

하와의 복권

 

남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서, 내가 너에게 먹지 말라고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니, 이제, 땅이 너 때문에 저주를 받을 것이다. 너는, 죽는 날까지 수고를 하여야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땅은 너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다. 너는 들에서 자라는 푸성귀를 먹을 것이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때까지,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담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하였다. 그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창세기 3:17-21)    

 

성경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하와이다. 하와의 이름은 언제나 ‘선악과’, ‘타락’, ‘유혹’과 결부되곤 한다. 순진한 아담을 꾀어 하나님의 금지 명령을 위반하도록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종교학자들은 유혹과 하와를 연결시키는 것은 여성이 갖고 있는 신비한 매력에 대한 남성들의 공포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정말 그러한가? 하와는 히브리어로 ‘생명’이란 뜻의 하야(hajja)에서 유래된 단어(라틴어 Eva)로서 ‘모든 생명체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어떤 학자는 그 이름이 고대 히타이트 족의 천둥신의 아내인 헤바(Heba)와 연결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창세기 기자는 하와에게 ‘모든 생명체의 어머니’라는 영예스러운 호칭을 부여하고 있다. 타락 이야기에 익숙한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하와’가 복권되어야 하는 시대이다. 아담이 인류의 첫 사람인 동시에 우리 모두를 의미하듯이, 하와는 생명을 북돋고 살리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모든 사람의 이름이다. 하와는 ‘여성적 원리’를 드러낸다. 남성들이 주도해 온 세상은 지배, 정복, 경쟁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긴장과 의구심을 거둘 수 없다. 그런 세상에서 평화의 열매를 거두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여성들의 문화는 배려, 공감, 보살핌, 양육, 협동의 원리 위에 세워진다. 여성들을 그런 역할에 고정시키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여성들은 계급적으로 위/아래를 나누는 일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돌보는 일은 자비의 심성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여성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훨씬 가깝다. 나희덕 시인은 아기를 낳은 후 젖몸살을 심하게 앓았던 이야기를 시로 형상화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열과 수시로 찾아드는 오한 속에서 밤을 보내야 했는데, 어머니가 곁에서 밤새 뜨거운 찜질로 젖망울을 풀어주려고 굳었던 가슴을 쓸어주시며 기도하시더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땀이 시인의 가슴을 흔들어 깨웠고, 가슴 가장 깊은 곳에 있던 뭔가가 솟구쳤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사랑이 딸의 가슴에 잠들어 있던 ‘어머니 성’을 불러낸 것이다(<해빙>)

 

이런 기적은 여성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신비이다. 생명을 키우는 일은 홀로는 할 수 없기에 여성들은 다른 이들과 협력하는 데도 익숙하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이야기를 나눈다. 기독교인이라면 다른 의미의 ‘하와’ 즉 ‘모든 생명의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게 하려고 왔다”(요한복음 10:10b)고 하신 예수님의 마음과 하와의 마음이 아름답게 조응하고 있다.

 

*기도*

 

하나님,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지만 우리는 늘 불안 속에서 살아갑니다. 유동하는 공포가 삶의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습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언제라도 화를 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친절하고 따뜻한 얼굴과 만나면 마치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행복해집니다. 주님, 우리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하와’를 깨워주십시오.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일이 곧 하나님에 대한 예배임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오늘도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도록 우리 마음을 하늘빛으로 채워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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