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73)

 

우리가 자랑해야 할 것

 

나 주가 말한다. 지혜 있는 사람은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아라. 용사는 자기의 힘을 자랑하지 말아라. 부자는 자기의 재산을 자랑하지 말아라. 오직 자랑하고 싶은 사람은, 이것을 자랑하여라. 나를 아는 것과, 나 주가 긍휼과 공평과 공의를 세상에 실현하는 하나님인 것과, 내가 이런 일 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아 알 만한 지혜를 가지게 되었음을, 자랑하여라. 나 주의 말이다.(예레미야 9:23-24)

 

예레미야는 멸망이 목전에 닥쳐왔는데도 허망한 자랑에 빠진 이들에게 “지혜 있는 사람은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아라. 용사는 자기의 힘을 자랑하지 말아라. 부자는 자기의 재산을 자랑하지 말”(렘9:23)라고 충고한다. 겸허함을 모르는 ‘지혜’는 다른 이들을 훈육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힘’은 자기의 의지를 타자들에게 강제하고픈 욕망으로 이어지고, ‘재산’은 과시적인 소비의 욕망을 부추긴다. 

 

자랑하는 마음의 뿌리에는 열등감이 있다. 그들은 다른 이들의 칭찬이나 인정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인받고 싶어한다. 지혜와 힘과 재산은 그들이 중요한 사람임을 입증해주는 전리품이나 마찬가지이다. 반면 내면이 충실한 이들은  굳이 다른 이들 앞에서 자신을 과시적으로 내보이려 하지 않는다. 프랑스 사상가인 르네 지라르는 인간의 욕망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매개되어 있다고 말했다. 무엇을 가지고 싶다, 무엇을 하고 싶다, 무엇이 되고 싶다고 말할 때 그 마음의 뿌리에는 그것을 이미 누리고 있는 이들에 대한 선망의 감정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망의 감정이 지배할 때 우리는 부자유 속에 살 수밖에 없다.

 

믿음의 사람들은 세인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삶을 모방하지 않는다. 그들이 모방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예레미야는 우리가 삶을 통해 경험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긍휼, 공평, 공의라는 세 단어로 요약하고 있다. 긍휼은 몸으로 표현되는 사랑 혹은 사랑으로 가득 찬 친절함이고, 공평은 회복적 정의를 가리킨다. 공의는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견결한 태도이다. 하나님은 엄중하신 동시에 부드럽고, 상처입은 세상과 사람을 치유하고 회복시키시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신다. 우리가 자랑해야 할 것은 이것 뿐이다. 

 

 

 

모제스 마이모니데스(Moses Maimonides)는 중세 최고의 철학자이자 랍비였다. 그는 <당황하는 이들을 위한 지침>(The Guide for the Perplexed)이라는 책에서 하나님의 존재, 인간 인식의 한계, 악의 문제 등을 다뤘다. 주제가 어려운 만큼, 내용도 어렵다. 책의 말미에 그는 자기의 가르침을 요약하는 성경구절을 인용한다. 그게 바로 예레미야 9장이다. 고도의 지적인 사색을 거쳐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그 책을 쓴 후 그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을 다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처럼 행동할 수는 있다고 믿었고, 인간의 지혜는 하늘을 향한 발돋움이지만 결국 그것은 땅에서 바로 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의학을 공부해 병든 이들을 고쳐 주었고, 고민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해결책을 제시했다. 또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기도하는 것을 즐겼다. 그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사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기도*

 

하나님, ‘타인의 시선이 나를 타락시킨다’는 사르트르의 말이 참 적실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살기보다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위선적인 태도를 보이고, 가식적인 미소를 짓기도 합니다. 세상에 적응하느라 지쳤습니다. 속이 텅 비어 버린 것 같습니다. 헛된 자랑거리를 추구하던 삶에서 돌이키고 싶습니다. 긍휼과 공평과 공의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마음과 접속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주님, 우리를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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