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75)

 

사랑은 제자됨의 징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낳아주신 분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 그분이 낳으신 이도 사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그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다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니고 누구겠습니까?(요한일서 5:1-5)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는 말은 그분이 나의 모든 죄를 다 사해주셨다는 확신과 더불어, 그분이야말로 우리가 성취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전형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생각 하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소명 의식이다. ‘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주님은 늘 깨어 있었다.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여쭙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세상과 대결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이웃들의 고통에 민감한 분이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마태복음 9:12)는 말은 주님의 삶의 방향성을 뚜렷하게 드러내주는 말이다.

 

맹자는 공자를 가리켜 ‘성지시자(聖之時者)’라 하였다(孟子, <萬章 下>). 공자는 성인 가운데 시중(時中)의 도리를 지킨 분이라는 뜻이다. ‘시중’이란 ‘수시처중(隨時處中)’이라는 말을 줄인 것으로 때에 따라 가장 적절하게 처신한다는 말이다. 어떤 틀에 매이지 않으면서도 삶의 핵심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수님이야말로 시중의 삶을 사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세상 사람들 앞에 온전히 드러내셨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現-存在’(Dasein)이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그분을 따라 살아야 한다.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명에 대한 ‘아멘’이었다. 사랑에 근거한 순종이기에 비애가 남지 않는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그분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 역시 그 분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주님이 주신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이다. 사랑이야말로 예수님의 제자임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의지에 속한다.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사랑은 수고를 전제한다. 수고 없는 사랑의 고백은 허사일 뿐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 나오는 조시마 장로의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지옥이란 다름 아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데서 오는 괴로움이다.” 사랑할 수 없음이 지옥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사랑에 무능한 사람이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천국에 속한 사람이 된다. 좋은 식당에 가면 웨이터들이 늘 손님들의 식탁을 주목하고 있다가 물 잔에 물이 떨어지면 곧 다가와 물을 채워준다. 낯선 나그네들을 영접했던 아브라함도 그들이 먹는 동안 서서 시중을 들었다지 않던가(창세기 18:8). 하나님의 사랑도 그렇다. 우리가 누군가를 돕기 위해 내 잔을 비워낼 때 하나님은 그것을 넉넉히 채워주신다. 이런 은총을 경험한 이들은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한다. 주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기도*

 

하나님,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사랑받기를 구합니다. 사랑이야말로 우리 속에 깃든 가장 아름다운 삶의 가능성을 깨어나게 합니다. 주님은 조건 없는 사랑으로 사람들을 맞아주셨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먹이셨고, 외로운 사람에게는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사랑을 갈구하지만 사랑을 누리지 못한 이들의 가슴에는 차가운 얼음이 자랍니다. 그 얼음은 두려움과 냉소 혹은 공격성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주님, 따뜻한 봄볕이 만물을 깨우듯이 우리도 사랑으로 세상에 봄을 가져오는 사람들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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