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76)

 

힘을 내어라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학개 2:4-5)

 

규모의 문제가 우리의 발목을 잡을 때가 많다. 어느 시인은 ‘천국에는 아라비아 숫자가 없다’고 했다. 모든 가치가 숫자로 환원되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성적, 점수, 연봉, 재산, 아파트 시세에 목숨을 건 것처럼 보인다. 숫자 앞에서는 우정도 박애도 인간적 친밀함도 뒷전으로 밀려난다. 아름다움과 몸까지도 숫자로 관리되기에 피트니스 센터는 새로운 신전이 되었다. 체중, 몸매, 체질량을 전문가의 손에 맡겨 관리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몸과 마음은 이렇게 하여 자본주의 질서에 확고히 포획된다.  

 

신앙인들조차 큰 교회와 작은 교회를 가르고, 교회의 크기에 따라 목회자들의 계급 관계가 만들어진다. 큰 교회 목사들은 신앙적 깊이나 인간적 품격과는 관계없이 발언권을 독점하고, 작은 교회 목사들은 이유 없이 주눅 들어 지낸다.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했던가? 그래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인 숫자를 늘리면 그들은 유능한 목사라 인정받는다. 저마다 백향목이 되어 모든 나무들 위에 군림하고 싶어 한다. 겨자풀들의 천국을 가르쳤던 예수님은 오늘의 교회에서 침묵을 강요받고 있다.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이들은 성전을 지음으로 삶의 중심을 세우려 했다. 뜻은 장했으나 척박한 땅에서의 생존이 어려워지자, 환멸이 찾아왔고 성전 건축은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사는 것이 힘겨운 판에 성전을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사람들이 말할 때, 학개는 성전을 포기했기에 삶이 어려워진 것이라 말하며 성전 건축을 독려한다. 뜻이 바로 서야 삶도 회복된다는 것이다. 학개의 독려를 통해 성전 건축 공사가 재개되었다. 성전 터가 정비되고 기초가 놓일 때 옛 솔로몬 성전의 영화로움을 기억하던 이들은 그 초라한 규모를 보고 통곡한다. 그들의 울음은 다른 이들까지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건만, 사람들은 규모에 집착한다. 그때 학개를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가 전달된다.  

 

“그러나 스룹바벨아, 이제 힘을 내어라. 나 주의 말이다.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 대제사장아, 힘을 내어라. 이 땅의 모든 백성아, 힘을 내어라.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너희는 일을 계속하여라.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학개 2:4)

 

‘힘을 내어라’라는 구절이 세 번이나 반복된다. 중요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는 여호와의 확언이다. 에스겔은 온갖 부패의 온상이 되어버린 솔로몬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이 떠나시는 모습을 보았다. 하나님의 영이 떠난 성전 혹은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 학대받은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작은 시작을 부끄러워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건재하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신다면 대체 주저할 것이 무엇이랴. 세상에는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교회와 죽은 교회가 있을 뿐이다.

 

*기도*

 

하나님, 사람들이 성전의 아름다움에 넋을 놓을 때 주님은 그 성전의 무너짐을 보셨습니다. 진리를 권위로 바꾸고, 거룩을 이익으로 바꾼 성전 혹은 교회는 마치 모래 위에 세운 집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 땅에 주님의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들이 이 두려운 진실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의 영이 머무는 교회만이 병든 세상을 치유하는 주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늘 망설이면서 실행의 시간을 놓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금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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