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86)

 

눈은 몸의 등불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네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네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마태복음 6:22-23)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다. 두려움이나 거짓, 사심이나 거리낌이 없을 때 우리는 편안하게 상대방의 눈을 바라본다. 하지만 관계에 이상이 생길 때마다 우리 눈은 살짝 흔들린다. 핏발 선 눈, 섬뜩한 눈, 이글거리는 눈, 흐릿한 눈, 초점을 잃은 눈과 마주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반면 넉넉하지만 깊고, 깊지만 따뜻하고, 따뜻하지만 진실한 눈을 보면 저절로 마음이 맑아진다. 예수님은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말씀하신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표현이다. 여기서 말하는 몸은 육체를 가리키는 말이라기보다는 유한한 인간의 삶 전체를 이르는 말이다. 

 

눈이 몸의 등불이라는 말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네 눈이 성하면 네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네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라는 말씀과 함께 읽어야 한다. 우리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라는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외적 정보를 조합해 세상과 만나고 소통한다. 오감 가운데서 어떤 감각에 유난히 예민한 이들도 있지만, 보통사람들에게는 시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시대는 특히 시각이 독주하는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치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다.

 

 

 

 

 

옛 사람들은 밖으로 향한 눈보다는 안으로 열린 눈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자기를 살피고 또 살피는 성찰(省察)이야말로 사람됨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성찰은 물론 고독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늘 누군가와 접속 중인 이들은 성찰적 존재가 되기 어렵다. 어쩌면 성찰의 시간을 견딜 수 없어 누군가와 접속을 갈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자기 속에 있는 약함, 상처, 그림자, 부끄러움 등을 살필 용기가 없는 사람일수록 남들에게 가혹하다. 그들은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을 찾아내기 위해 두리번거리다가 작은 티끌이라도 찾아내면 그것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자기 허물을 가리려는 가련한 시도일 뿐이다. 

 

제대로 보는 사람이라야 삶이 비루해지지 않는다. 마음의 빛이 흐려져 제대로 보지 못할 때 우리는 세상에 휘둘리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연연하게 된다.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가 되어 산다. 눈이 밝아져 제대로 볼 수 있어야 비로소 세상의 인력에 속절없이 끌려 다니지 않는다. 눈이 성하지 않으면 온 몸이 어두워지게 마련이다. 온 몸이 어둡다는 말은 자기 인생의 때를 분별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네 눈이 밝아지려거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라”(요한계시록 3:18)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말씀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안약이 아닐까.  

 

*기도*

 

하나님, 눈빛 맑은 사람을 보면 저절로 마음이 밝아집니다. 똑같은 사물이나 대상을 보아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표현하는 이들과 만나면 우리 마음도 덩달아 따뜻해집니다. 그러나 남의 눈에서 티끌을 빼려는 자세로 일관하는 이들과 만나고 나면 말할 수 없는 피곤함을 느낍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셨는데, 눈이 어두운 우리는 그때를 즐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 눈을 밝혀주십시오.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은 보게 하시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보지 않는 의지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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