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함과 신뢰가 만날 때

김기석의 새로봄(94)

 

절실함과 신뢰가 만날 때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다가와서, 그에게 간청하여 말하였다. “주님, 내 종이 중풍으로 집에 누워서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가서 고쳐 주마.” 백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나는 주님을 내 집으로 모셔들일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마디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내 종이 나을 것입니다. 나도 상관을 모시는 사람이고, 내 밑에도 병사들이 있어서, 내가 이 사람더러 가라고 하면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고 하면 옵니다. 또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고 하면 합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놀랍게 여기셔서,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 아무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과 서에서 와서,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시민들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서,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시각에 그 종이 나았다.(마태복음 8:5-13)

 

어느 날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한 백부장이 그 앞에 나아와서 간곡하게 말한다. “주님, 내 종이 중풍으로 집에 누워서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그 상황에 대한 묘사를 극도로 절제하면서 예수님의 반응을 간결하게 드러낸다. “내가 가서 고쳐 주마.” 이 군더더기 없는 간결성은 우리에게 다음에 전개될 상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이어지는 백부장의 말은 다소 장황하다 싶을 정도이다. 자신은 주님을 집으로 모실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면서 그저 한 마디 말씀만 해주셔도 종이 나을 거라고 말한다. 자기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고, 부하들이 자기 명령에 복종하는 것처럼, 주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종의 병이 물러갈 것이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그를 신앙의 전범으로 소개한다어떤 의미에서 그러한가

 

 

 

 

 

 

첫째그는 공감(sympathy, 동정)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공감이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 앞에 자기를 열어놓은 상태를 말한다. 다른 사람의 상황에 서보는 감정이입(empathy)과는 다르다. 공감이란 다른 이들의 고통을 함께 아파한다는 점에서는 감정이입과 비슷하지만, 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감정이입은 쉽지만 공감은 쉽지 않다백부장은 종의 고통을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 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다. 떠돌이 유랑 설교자 앞에 나아와 간청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둘째, 백부장은 단순하고 소박한 믿음의 사람이다. 그는 예수님을 무한히 신뢰한다. 예수님이라면 종의 병을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확신했기에 그는 주님 앞에 엎드릴 수 있었다. 종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의 절실함과 예수님에 대한 신뢰가 결합하여 기적을 일으켰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일화가 떠오른다. 어느 초겨울 저녁, 술 한 잔을 걸쳐 약간 취기에 찬 그는 제자와 쌀쌀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 갑자기 그가 어느 한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군고구마를 파는 포장마차였다. 제자는 선생께 고구마를 자시겠냐고 묻자 무위당은 뜻밖의 말을 했다. “저기 군고구마라고 쓰인 글을 보게. 초롱불에 쓰여진 저 글씨를 보게. 저 글씨를 보면 고구마가 머리에 떠오르고, 손에는 따신 고구마를 쥐고 싶어지고, 가슴에는 따뜻한 사람의 정감이 느껴지지 않나. 결국 저 글씨는 어설프게 보이지만 저게 진짜고 내가 쓴 것은 죽어있는 글씨야. 즉 가짜란 말이야. 그러니까 내 글씨는 장난친 것밖에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야.”(<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 중에 나오는 김종철의 나락 한 알 속의 우주에서 재인용)

 

절실한 마음에서 진실이 나온다. 자식들을 데리고 살아야 하는 이가 절박한 심정으로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글씨에서 장 선생님은 삶의 진실을 보고 있다. 온갖 필법을 연마한 끝에 써내려간 일필휘지보다도 군고구마 장사의 글씨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하나님은 신학자들의 정교한 이론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 정직하고 절실한 이들의 마음에 다가오시는 분이시다. “나는 주님을 내 집으로 모셔들일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마디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내 종이 나을 것입니다.” 기적의 모태는 이런 자기 겸비와 절대적 신뢰이다. 주님은 백부장의 그런 신뢰에 대해 명쾌한 말씀으로 응답하신다.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성경은 바로 그 시각에 그 종이 나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야기의 시작이 그러하듯이 마무리도 간결하다

 

*기도*

 

하나님, 부정한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 가슴은 돌가슴으로 변했습니다. 이웃들이 고통을 겪는 것을 보면서도 그저 혀를 찰 뿐 어찌해야 할 바를 모릅니다. 외로운 이들은 홀로 외로움을 견디고, 괴로운 이들은 홀로 그 고통의 심연을 건너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인종, 종교, 문화, 계급, 민족 등 사람을 갈라놓는 인위적 장벽을 넘나들며 아픔을 치유하셨습니다. 종의 아픔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백부장의 마음이 주님의 사랑과 만나자 치유의 빛이 태어났습니다. 우리도 그 빛 안에 머물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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