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하나님의 사람인가?

김기석의 새로봄(105)

 

누가 하나님의 사람인가?

 

의인은 집짐승의 생명도 돌보아 주지만, 악인은 자비를 베푼다고 하여도 잔인하다.(잠언 12:10)

 

누가 의인인가? 한 두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러나 히브리의 지혜자는 단순화시켜 대답한다. 의인은 생명을 아끼고 소중히 돌보는 사람이다. 의인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닮은 자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 창조된 모든 것들을 보고 기뻐하셨다. 의인은 그런 기쁨에 동참하는 사람이다. 인간의 생명이 소중한 것과 마찬가지로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다 소중하다. 그 모든 것들 속에 하나님의 숨결이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생명의 주인으로 고백한다면, 온 세상에 있는 뭇 생명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하나님은 생명을 잘 돌보는 사람을 보고 ‘옳다’고 하신다. 

 

지금 우리의 생명 감수성은 둔감하기 이를 데 없다. 날마다 생명에 대한 폭력이 거침없이 자행되는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모든 생명이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존재’임을 망각하고 살아간다. 옛 사람들은 수령이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벨 때도 죄스러워 했다. 먹고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취하면서도 그 생명과 하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았다. 그러기에 먹는다는 행위는 하늘을 모시는 행위(以天食天)였다. 하지만 물건이 넘쳐나는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잊고 산다.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방식이 반생명적으로 변해버린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가축을 사육하고 도축하는 방식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악인은 자비를 베푼다고 하여도 잔인하다’는 잠언의 경고가 우리 시대처럼 들어맞는 때는 없는 것 같다. 

 

 

 

 

 

불교 승려들이 여름 동안 한곳에 머물면서 수행에 전념하는 것을 일러 하안거(夏安居)라 한다. 그런데 이 하안거의 유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석가모니 당시 인도에는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는 출가 수행자가 많았는데,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가 되면 땅 속에서 기어 나오는 작은 동물들을 밟지 않기 위해 하안거의 전통을 만들었다고 한다. 생명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다른 생명에 대해서 잔인할 수는 없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인가? 자기 마음속에 있는 날카로운 것들을 녹여낸 사람들이 아닐까? 

 

김준태 시인은 자기도 모르게 무심코 어린 생명들을 짓눌러 죽일까봐서 날마다 손톱을 깎으며 더욱 사람이 되자고 마음속으로 외친다고 말한다. 그의 시 <감꽃>은 우리 현대사에 대한 기가 막힌 요약이다.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전쟁 이후의 근대화는 우리에게 풍요로움을 안겨주었지만 순박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앗아갔다.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경외의 시작이 아닐까?

 

*기도*

 

하나님, 한가롭고 느긋한 평화를 누리는 것이 사치처럼 여겨지는 나날입니다. 도처에서 날선 말들이 오가고, 거칠고 위협적인 표정을 짓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슴에 쌓인 울화를 풀어낼 길 없는 이들이 무고한 여린 생명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도 종종 벌어집니다. 피조물의 신음 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옵니다. 약한 생명을 돌보려는 마음 없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요? 주님, 세상의 모든 아픔을 당신 몸으로 감당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 속에 심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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