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구조조정

김기석의 새로봄(111)

 

영혼의 구조조정

 

엘리야가 그 곳을 떠나서, 길을 가다가, 사밧의 아들 엘리사와 마주쳤다. 엘리사는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다. 열한 겨리를 앞세우고, 그는 열두째 겨리를 끌고서, 밭을 갈고 있었다. 엘리야가 엘리사의 곁으로 지나가면서, 자기의 외투를 그에게 던져 주었다. 그러자 엘리사는 소를 버려 두고, 엘리야에게로 달려와서 말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드린 뒤에, 선생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말하였다. “돌아가거라.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그러느냐?” 엘리사는 엘리야를 떠나 돌아가서, 겨릿소를 잡고, 소가 메던 멍에를 불살라서 그 고기를 삶고, 그것을 백성에게 주어서 먹게 하였다. 그런 다음에, 엘리사는 곧 엘리야를 따라가서, 그의 제자가 되었다.(열왕기상 19:19-21)

 

엘리사는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열 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다. 열두 마리 겨릿소로 밭을 간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유복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즉각적으로 응답했다. 그의 앞에 고생길이 활짝 열렸다. 하나님 편에 가담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편안한 길이 아니다. 엘리야가 자기 겉옷을 벗어 그의 위에 던졌을 때, 엘리사는 그것이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먼저 부모님에게 작별 인사를 드린 후, 겨릿소를 잡고, 소가 메던 멍에를 불살라서 그 고기를 삶아 일꾼들에게 나눠주었다.  일종의 작별 예식이다. 그는 돌아갈 다리를 스스로 불태운 것이다. 엘리야를 따라 나선 그가 한 일은 엘리야를 수종 드는 것이었다. 부유한 청년이 위험 인물로 낙인 찍힌 이의 동행이 된 것이다. 극적인 변화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삶의 구조조정을 요구한다. 말씀 혹은 부름에 응답하려는 이들은 익숙한 세계와 결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속에 갈등을 일으킨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일은 우리 본성상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없는 이유를 차곡차곡 쌓아놓고 경우에 따라서 적절히 사용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달아나는 사람일수록 이유가 많고 응답할 수 없는 사정이 많아진다. 이런 사람들은 <어린왕자>에 나오는 지리학자처럼 신앙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뿐 모험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어려운 일을 만나면 천연덕스럽게 기도한다. “하나님, 내 마음 아시지요? 내 사정 아시지요? 헤아려주세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가 진실되게 기도할 수 있을까?

 

엘리사는 행복한 삶의 조건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베드로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도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바울도 이전에 그의 삶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모든 자부심의 근거들을 배설물처럼 버렸고, 예수님을 위해 고난당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뭔가를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누가복음 9:23)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를 따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버렸나? 아브라함은 공포와 전율 속에서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다. 영생을 얻기 위해 우리는 오늘 무엇을 바치고 있나? 영적인 자유는 버림 혹은 바침에서 비롯된다.

 

현대인들은 몸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좋다는 음식은 다 찾아 먹고, 조금 아프면 얼른 병원으로 달려간다. 의사들의 말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따른다. 자기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서 몸의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영혼을 위한 구조조정에는 매우 게으르다. 버리고 떠나기를 연습해야 할 때이다.

 

*기도*

 

하나님, 삶이 권태로울 때면 우리는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합니다. 새로운 장소와 만남이 주는 긴장이 살아있다는 감각을 생생하게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떠나야 할 것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익숙한 것에 집착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삶의 불확실함을 피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우리는 신앙의 모험에 나서지 못합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삶의 자리에 서지 못합니다. 우리의 나태함을 꾸짖어 주십시오. 버리고 떠나는 삶을 연습하게 도와주시고, 그 가운데 참된 자유를 맛보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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