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우는 사람

김기석의 새로봄(113)

 

꽃 피우는 사람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 즐거워할 것이다. 사막은 꽃이 무성하게 피어, 크게 기뻐하며, 즐겁게 소리 칠 것이다.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영화가, 사막에서 꽃 피며, 사람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며, 우리 하나님의 영화를 볼 것이다. 너희는 맥풀린 손이 힘을 쓰게 하여라. 떨리는 무릎을 굳세게 하여라. 두려워하는 사람을 격려하여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복수하러 오신다. 하나님께서 보복하러 오신다. 너희를 구원하여 주신다” 하고 말하여라(이사야 35:1-4)

 

가난하고 외로운 하숙생이 있었다. 그는 옆방에 살고 있는 얼굴이 창백하고 아름다운 한 처녀를 짝사랑했다. 성탄절이 되자 외로움이 깊어졌다. 그날 밤 그는 홀로 자기 방에 있다가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침대가 삐걱이는 소리, 이상한 신음소리… 벽에 귀를 대고 그 소리를 듣고 있던 그는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배신감에 사로잡혔다. 세상에 더할 수 없이 순결하게만 여겨졌던 처녀에 대한 환상이 깨졌던 것이다. 잠시 후 옆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젊은이는 마침내 살 희망을 잃고 목을 매고 말았다. 경찰이 와서 그 젊은이의 시신을 수습해가는 동안, 하숙집 아주머니는 처녀의 방을 열다가 비명을 지른다. 처녀가 침대에 엎딘 채 죽어있었던 것이다. 비소중독이었다. 처녀의 유서는 ‘고통스러운 고독’과 ‘삶에 대한 총체적인 혐오감’이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외로운 두 혼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쓸쓸해하다가 죽고 만 것이다. 로맹 가리의 소설 『벽』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소통을 가로막는 벽에 갇힌 삶의 절망감을 증언한다. 

 

 

 

 

 

인정이 메말라 팍팍한 세상이다. 저마다 바쁘다고 아우성이다. 이웃들의 처지를 살뜰하게 보살펴주는 사람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메마른 대지에 단비가 되어 내리는 사람들, 우리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그늘진 곳에서 인정의 꽃을 말없이 피워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 즐거워할 것이다. 사막은 꽃이 무성하게 피어, 크게 기뻐하며, 즐겁게 소리 칠 것이다.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영화가, 사막에서 꽃 피며, 사람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며, 우리 하나님의 영화를 볼 것이다.”(이사야 35:1-2)

 

이 대목은 미래에 어떠어떠한 일이 벌어질 지에 대한 서술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서술법은 항상 명령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런 세상을 막연히 기다리기만 하면 안 된다. 그런 세상을 지금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가수 조영남 씨가 촬영감독인 정일성씨와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다. 정 감독은 한 때 직장암으로 다 죽게 되어 인생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골몰하고 있었다. 어느 날 임권택 감독이 그를 찾아왔다. 임 감독은 자기가 구상하고 있는 새 영화 이야기를 한참 하더니, 그 영화를 당신이 꼭 찍어야 한다고, 당신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그 말 때문에 일어설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야기를 듣던 조영남 씨가 무릎을 탁 치면서 말했다. “하, 세상에 그보다 더 좋은 치료제는 없네요!” 그렇다. 희망보다 더 좋은 치료제는 없다. 하나님의 꿈을  가슴에 품은 사람은 맥풀린 손을 힘이 쓰게 하고, 떨리는 무릎을 굳세게 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을 격려한다. 

 

*기도*

 

하나님, 벽 앞에 선 것처럼 암담할 때가 있습니다. 완강하게 소통을 거부하는 듯한 표정과 자꾸 마주치다 보면  우리 마음도 닫히고 맙니다. 벽을 밀면 문이 된다고들 말하지만 벽을 밀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우리는 벽 너머의 세상을 제멋대로 상상할 뿐, 그 너머에 있는 이들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주님, 광야와 메마른 땅 같은 세상을 탓하기보다는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어 꽃을 피워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지레 지치지 않도록 우리 속에 주님의 생기를 불어넣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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