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115)

 

생명 살림의 정치

 

왕은 속으로 생각하였다. ‘두 여자가 서로, 살아 있는 아이를 자기의 아들이라고 하고, 죽은 아이를 다른 여자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좋은 수가 있다.’ 왕은 신하들에게 칼을 가져 오게 하였다. 신하들이 칼을 왕 앞으로 가져 오니, 왕이 명령을 내렸다. “살아 있는 이 아이를 둘로 나누어서, 반쪽은 이 여자에게 주고, 나머지 반쪽은 저 여자에게 주어라.“  그러자 살아 있는 그 아이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에 대한 모정이 불타 올라, 왕에게 애원하였다. ”제발, 임금님, 살아 있는 이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시어도 좋으니, 아이를 죽이지는 말아 주십시오.“ 그러나 다른 여자는 어차피, 내 아이도 안 될 테고, 네 아이도 안 될 테니, 차라리 나누어 가지자하고 말하였다. 그 때에 드디어 왕이 명령을 내렸다. "살아 있는 아이를 죽이지 말고, 아이를 양보한 저 여자에게 주어라. 저 여자가 그 아이의 어머니이다."(열왕기상 3:23-27)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창녀들이다. 그 여인들은 사흘 간격을 두고 아기를 낳았다.  그런데 그만 자다가 한 여인이 자기 아기를 깔아 죽였다.  그 부주의한 어미는 이런 궁리 저런 궁리를 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아기를 바꾸자.' 그 여인은 다른 여인이 곤히 잠들어있는 틈을 타서 아기를 바꿔치기 했다. 잠에서 깨어난 진짜 엄마는 곧 사태를 파악했고 그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둘은 솔로몬에게 가서 시비를 가려 달라면서 살아 있는 아이가 자기의 아들이고, 죽은 아이는 다른 여자의 아들이라고 우겼다”. 누가 보아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자초지종을 들은 솔로몬은 냉정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살아 있는 이 아이를 둘로 나누어서  반쪽은 이 여자에게 주고, 나머지 반쪽은 저 여자에게 주어라”(열왕기상 3:25)

 

왕의 냉정한 선언을 듣고 두 여인은 아주 다른 태도를 보인다. 진짜 엄마는 아기에 대한 모정이 불타올라서 스스로 아기를 포기하겠다고 말한다. 설사 그와 함께 살 수 없다 해도 아기의 목숨을 끊는 일이 차마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던 것이다. 반면 가짜 엄마는 어차피, 내 아이도 안 될 테고, 네 아이도 안 될 테니, 차라리 나누어 가지자고 말한다. 생명이 우선인가? 산술적 공정이 우선인가

 

 

 

 

 

솔로몬의 지혜로움의 예증으로 선택된 이 이야기가 기록된 곳은 바벨론이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싸우다가 결국은 외세의 침입으로 나라는 망하고, 국민들은 바벨론에 잡혀간 희망 없는 처지에서, 사람들은 이야기를 수집하고 기록했다. 그것만이 자기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재판으로 알려진 이 이야기 속에는 이스라엘이 겪어온 참담한 기억과 아울러 미래를 어떻게 기획할 지에 대한 암시가 녹아들어 있다

 

창녀인 두 어머니는 신랑이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제멋대로 타락과 죄악의 길을 걷다가 망해버린 이스라엘과 유다의 운명을 상징한다. 이야기꾼은 빈사상태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를 살리기 위해서는 더 이상 남과 북으로 갈라져 소모적인 논쟁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넌지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이스라엘을 살리는 일이 최우선의 관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를 두고 벌이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이득이라도 챙겨보려고 나라를 나누고 가르는 것은 결국 죽음의 길이라는 사실을 이야기꾼은 전하고 있다. “아이를 죽이지는 말아 주십시오.” 솔로몬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기 권리를 포기하려는 이가 진짜 엄마라고 선언했다. 오늘의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에게 절실한 것은 당리당략이 아니라 생명 중심적 사고이다.

 

*기도*

 

하나님, 우리의 어리석음을 꾸짖어 주십시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때는 반갑게 손을 잡고 따뜻한 웃음을 나누지만, 이해관계가 엇갈릴 때면 가까웠던 이들에게도 싸늘하게 등을 돌리곤 하는 게 인간의 세태입니다. 이런 일을 반복적으로 겪는 동안 우리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무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처럼 쓸쓸한 일이 또 있을까요? 하나님 이익이 아니라 신의를 따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생명을 훼손하면서까지 제 욕망을 채우려 드는 사악한 마음을 우리 속에서 도려내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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