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118)

 

나의 뜻은 사라지고

 

그들이 아침을 먹은 뒤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 떼를 먹여라." 예수께서 두 번째로 그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쳐라." 예수께서 세 번째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때에 베드로는, [예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이나 물으시므로, 불안해서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먹여라.(요한복음 21:15-17)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는 여섯 살부터 온 유럽을 떠돌며 연주를 해야 했다. 그는 마치 곡마단의 동물처럼 왕들 앞에 구경거리로 내세워지고, 아첨을 받고, 선물을 받고, 두루 귀여움을 받았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자신에게 흥미를 나타내 보이는 사람들에게 종종 이런 천진한 질문을 던지곤 했다. "나를 사랑하세요? 나를 정말로 사랑하세요?" 사람들이 '그렇다'고 대답할 때만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한다. 그의 연주를 듣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레기날드 링엔바하, <하나님은 음악이시다>, 30쪽)

 

어린 모차르트는 어른들의 대답이 상투적이어도 만족하여 연주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던진 질문은 참 중요하다. 그 느닷없는 질문은 청중들에게 음악을 듣는 자세를 가다듬게 만들었을 것이고, 모차르트는 자기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연주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주님은 우리의 사랑을 요구하신다. 우리의 사랑 없이는 설 수 없는 분이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해야 우리가 그분의 일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질문은 "네가 나를 믿느냐?"가 아니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였다. 예수님은 오직 그것만 물으셨다. 이 질문이 참 무겁다. 소설가 이승우는 <사랑의 생애>에서 사랑하는 자는 알아가야 하는 숙제를 떠안는 자라고 말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하는 이는 그 사랑의 대상을 앞으로 알아갈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다.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상투적일 수 없다. 창조적 긴장에 따른 설렘이 그 사랑의 기쁨이다.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가 기뻐하는 일을 성심껏 해낸다. 찬송가 5402절 가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적실하게 보여준다. “주여 넓으신 은혜 베푸사 나를 받아 주시고 나의 품은 뜻 주의 뜻 같이 되게 하여 주소서”.  지금은 어긋나는 부분이 많지만 내가 다듬고 또 다듬어 주님의 뜻과 일치하기를 비는 것이다. 이 곡의 원래 가사는 더 극적이다.  “나의 영혼이 확고한 희망으로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나의 뜻이 당신의 뜻 안에서 사라지게 하소서 Let my soul look up with a steadfast hope, And my will be lost in Thine”. 찬송 시인은 나의 뜻당신의 뜻안에서 사라지기를 바란다. 베드로가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고백하자 예수님은 내 양 떼를 쳐라명하셨다주님에 대한 사랑은 양들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만 확인된다해방신학자인 구티에레즈는 "이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존재"라고 말했다. 우리가 맺는 사랑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은 현전하신다

 

*기도*

 

하나님, 예수님은 깊은 자괴감에 빠져 있던 제자들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지친 그들을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셨습니다. 그 가없는 사랑은 두려움과 공허에 사로잡혔던 제자들의 마음을 심연에서 끌어올리는 줄이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과 마주하고 보니 가슴에 전율이 입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습니다. 주님을 사랑할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일상 속에서 낯선 이의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따뜻한 사랑으로 맞이하겠습니다. 주님, 우리의 어두운 눈을 밝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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