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125)

 

영혼의 계승

 

요단 강 맞은쪽에 이르러,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데려가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느냐?”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스승님이 가지고 계신 능력을 제가 갑절로 받기를 바랍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엘리야가 말하였다. “너는 참으로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구나.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네 소원이 이루어지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불병거와 불말이 나타나서, 그들 두 사람을 갈라놓더니, 엘리야만 회오리바람에 싣고 하늘로 올라갔다. 엘리사가 이 광경을 보면서 외쳤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마병이시여!” 엘리사는 엘리야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엘리사는 슬픔에 겨워서, 자기의 겉옷을 힘껏 잡아당겨 두 조각으로 찢었다. 그리고는 엘리야가 떨어뜨리고 간 겉옷을 들고 돌아와, 요단 강 가에 서서, 엘리야가 떨어뜨리고 간 그 겉옷으로 강물을 치면서 “엘리야의 주 하나님, 주님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하고 외치고, 또 물을 치니, 강물이 좌우로 갈라졌다. 엘리사가 그리로 강을 건넜다.(열왕기하 2:9-14)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영화 <나사렛 예수>에 나오는 한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권력자들에게 독설을 서슴지 않던 세례자 요한이 군인들에게 붙잡혀갈 때, 그 소란 속에서 요한의 겉옷이 땅바닥에 떨어진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물끄러미 그 광경을 지켜보던 예수님이 슬그머니 다가가 그 옷을 집어 들고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셨다. 함께 영화를 본 한 청년은 ‘예수님이 참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실 그 장면은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라는 마가복음 1장 14절의 말씀을 이미지화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 장면은 세례자 요한의 길과 예수님의 길은 다르지만 두 분 모두 하나님 나라를 지향했음을 우리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하나님께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지자 엘리야는 자신의 생도들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려 한다. 하나님을 등졌던 아합과 이세벨에 맞서 싸우느라 지쳤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힘을 내라시면서 아직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선지자 7천 명이 남아 있다고 말씀하셨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세상에 의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쉽게 절망하고 낙심하는 것은 믿는 이의 마땅한 태도가 아니다. 세상 어딘가에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있는 이들이 있다. 선지자의 생도라 하는 이들은 어쩌면 그 7천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오랜 싸움에 지친 엘리야의 가슴에 다시 한 번 용기의 불꽃을 지펴주었던 소중한 동지들이었다. 하나님께 돌아가기 전 이들을 만나 용기를 붇돋고 싶었던 것이리라. 

 

엘리야는 산지인 길갈을 떠나면서 엘리사에게 그곳에 남아있으라고 권했지만, 엘리사는 스승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엘리사는 스승이 가는 곳마다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길갈에서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강가로…. 요단강을 앞에 두고 엘리야가 겉옷을 말아서 물을 치자 물이 갈라지고 두 사람은 걸어서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넌 후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무엇을 구하는지를 묻자 엘리사는 아주 간결하게 답한다. “스승님이 가지고 계신 능력을 제가 갑절로 받기를 바랍니다.”(열왕기하 2:9b)

 

머지않아 떠나실 스승에게 엘리사가 구하는 것은 유형적인 유산이 아니라 영적인 능력과 깊이였다. 엘리야를 휘몰아갔던 하나님의 영이 자신에게 갑절이나 부어지기를 그는 바랐다. 이윽고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가자, 슬픔에 잠긴 엘리사는 엘리야의 겉옷을 들고 요단 강 가에 섰다. 그리고 겉옷으로 강물을 치자 강이 갈라졌다. 둘 사이에 일어난 영적 계승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정신의 계승자로 살고 있는가 돌아볼 일이다.

 

*기도*

 

하나님, 삶이 고단하고 팍팍하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뜻하지 않은 행운이 자기에게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그런 헛된 바람을 한번 웃음으로 소비하면 그만이지만,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 삶이 지리멸렬해집니다. ‘왜 사는지를 알면 어떻게든 살 수 있다’는 격언처럼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삶의 방편이 아니라 삶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정념을 품고 살기를 원했던 엘리사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마음에 깊이 접속된 사람이 되어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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