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학교

김기석의 새로봄(126)

 

광야학교

 

당신들은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잘 지키십시오. 그러면 당신들이 살아서 번성할 것이며, 주님께서 당신들 조상에게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당신들이 광야를 지나온 사십 년 동안,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기억하십시오. 그렇게 오랫동안 당신들을 광야에 머물게 하신 것은, 당신들을 단련시키고 시험하셔서, 당신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당신들의 마음속을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낮추시고 굶기시다가, 당신들도 알지 못하고 당신들의 조상도 알지 못하는 만나를 먹이셨는데, 이것은, 사람이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당신들에게 알려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사십 년 동안, 당신들의 몸에 걸친 옷이 해어진 일이 없고, 발이 부르튼 일도 없었습니다.(신명기 8:1-4)

 

광야 길은 강인한 이들만 걸을 수 있다. 햇볕을 가려줄 나무나 갈증을 해소시켜 줄 물줄기를 만날 가능성도 많지 않다. 광야 길에 접어든 사람은 자기 속에 슬그머니 자리 잡으려는 두려움과 회의와 맞서야 한다. 막막하고 아득한 길, 그 길은 사람을 단련시킨다. 그래서 광야는 학교이다.

 

광야 학교는 우리 속에 있는 뿌리 깊은 교만을 치유해준다. 교만은 자기의 분수를 지키지 않으려는 마음, 자기의 영향력을 자꾸 확대함으로 남을 지배하려는 마음이다. 교만한 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네가 하나님처럼 되리라' 말했던 뱀의 유혹에 넘어가게 마련이다. 뱀의 유혹은 달콤하지만 그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지옥이 시작된다. 인생의 광야를 만나 암담할 때 낙심하지 말자. 오히려 그 시간을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연처럼 한없이 높아지려는 우리 마음을 낮추시기 위한 하나님의 개입으로 받아들이자. 

 

광야학교는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해준다. 광야에서 히브리인들은 철저히 무기력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먹을 것을 구할 수도, 마실 물을 구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다만 희망을 하나님께 둘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이 가라 하시면 가고, 서라 하시면 섰다. 자기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을 때 우리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신비 앞에 서게 된다. 

 

 

 

 

필립 시먼스는 일리노이주의 레이크 포레스트 대학 영문과 교수였고 주목받는 작가였다. 그러던 그가 루게릭병(근위축성측색경화증)에 걸려 5년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게 되었다. 그의 나이 서른 다섯이었다. 그는 날마다 찻 숟가락 하나로 생명을 덜어내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오히려 생의 충만함을 맛보았다. 시먼스는 어느 날 근심스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다섯 살배기 딸 애밀리아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소멸의 아름다움』 중에서). 

 

“내 손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지만, 아직은 너를 안아줄 수 있어.”

“팔이 움직이지 않으면 어떻게 해?”

“그러면 네가 ‘나’를 안아주어야겠지. 네가 안아주기만 하면 난 괜찮을 거야.”

 

우리가 완전히 무력하게 되어도 하나님이 우리를 안아 주신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살다보면 우리는 벼랑가로 내몰리는 것 같은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그때 우리 앞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뒷걸음질을 치면서 쓰라린 고통과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런저런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버리고 하나님의 섭리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광야 학교에 적응을 잘하는 이들에게 삶은 신비이다.

 

광야학교는 탐욕의 우상숭배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만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을 보여준다. 노자(老子)는 하늘의 도는 남는 것을 덜어 모자라는 것을 보태는데,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아서 모자라는 것을 덜어 남는 데 보탠다고 말했다(天之道 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천지도 손유여이보부족, 인지도칙불연, 손부족이봉유여 77장). 광야학교는 우리를 비움과 나눔의 신비 가운데로 인도한다.

 

*기도*

 

하나님, 사람은 누구나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구합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도 습관처럼 익숙한 것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일들이 찾아와 우리 삶을 뒤흔들어 놓을 때가 있습니다. 그 동안 애집하던 것들조차 우리를 지켜주지 못할 때 마치 광야에 선듯 마음이 스산해집니다. 하지만 광야는 우리 삶이 정초되어야 할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줍니다. 주님, 버릴 것은 단호하게 버리고, 붙잡아야 할 것은 꼭 붙들 수 있는 용기를 우리 속에 심어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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