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니아

김기석의 새로봄(128)

 

아나니아

 

아나니아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해를 끼쳤는지를, 나는 많은 사람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잡아 갈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그는 내 이름을 이방 사람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가지고 갈, 내가 택한 내 그릇이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지를, 내가 그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그래서 아나니아가 떠나서,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손을 얹고 “형제 사울이여, 그대가 오는 도중에 그대에게 나타나신 주 예수께서 나를 보내셨소. 그것은 그대가 시력을 회복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도록 하시려는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고, 그는 시력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그는 일어나서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다.(사도행전 9:13-19)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이들을 박해하던 사울에게 가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아나니아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들라는 말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거라’라는 명령이 거듭되자 아나니아는 그 명령에 순종했다.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사울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도 아니지만, 그는 말씀에 의지하여 사울을 찾아간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게 바로 믿음이다. 믿음이란 비록 이해할 수 없다 해도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에 대해 ‘아멘!’ 하는 것이다.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있던 이스라엘은 적을 목전에 둔 길갈에서 전투에 나설 젊은이들에게 할례를 행했다.(여호수아 5장) 전투에 대한 상식이 없는 사람이 보더라도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말씀에 순종해 그렇게 했고 마침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미디안과의 전투를 앞두고 있던 기드온은 군인들이 너무 많다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처음엔 이천 명을, 그리고 그 다음엔 만 명을 돌려보내고 오직 삼백 명만 데리고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뒀다.(사사기 7장)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고,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다르다. 이걸 인정해야 한다.

 

 

 

 

아나니아는 ‘곧은 거리’에 있던 유다의 집을 찾아가 사울과 만난다. 그는 사울이 경험하고 있는 어둔 밤의 체험은 오히려 그의 생을 바로 세우기 위한 창조적 혼돈임을 깨우쳐 주었다. 지금까지 사울은 맹목적 열정에 사로잡힌 채 살았다. 그것은 눈 먼 자의 행로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그릇된 열정을 변화시켜 복음을 위한 열정으로 변화시키려 하셨다. 아나니아는 “형제 사울이여, 그대가 오는 도중에 그대에게 나타나신 주 예수께서 나를 보내셨소. 그것은 그대가 시력을 회복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도록 하시려는 것이오”(사도행전 9:17)라고 말했다. 아나니아는 사울을 ‘형제’라고 부른다. 형제를 뜻하는 그리스어 아델포스(adelphos)는 ‘자궁’을 뜻하는 델푸스(delphus)에서 나온 말이다. 아나니아는 사울을 골육지친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 자신은 물론이고 사울도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자궁에서 새롭게 태어난 혹은 태어날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울의 몸에 닿은 아나니아의 손길은 어쩌면 주님의 손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침내 바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갔다. 그릇된 열정의 비늘, 편견과 경쟁심의 비늘, 자기 의라는 비늘이 떨어져 나가자, 그는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영혼의 어둔 밤에서 벗어나자 그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충만한 세상을 감격 속에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새로운 생의 열정이 그를 사로잡았다. 거기에는 타인에 대한 미움도,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조바심도 없었다. 궁극적인 평안과 기쁨이 그의 내면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그는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다. 아나니아라는 이름은 ‘주님은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의 하나니아(hananiah)와 연결된다. 세상에는 이처럼 은혜를 매개하는 이들이 있다.

 

*기도*

 

하나님, 만나기 꺼려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살아가는 방식이나 지향이 다른 이들을 만나면 본의 아니게 불쾌한 상황에 직면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에 맞는 이들과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만나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가라 하십니다. 아나니아는 그 명령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매개했습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세우신 사람들을 우리 멋대로 판단하고 도외시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넓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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