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그리고 함께

김기석의 새로봄(129)

 

홀로 그리고 함께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자기의 동무를 일으켜 줄 수 있다. 그러나 혼자 가다가 넘어지면, 딱하게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 또 둘이 누우면 따뜻하지만, 혼자라면 어찌 따뜻하겠는가?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전도서 4:9-12)

 

서양의 정신사는 자유를 추구하는 과정이었다. 자유란 남들에게 아무 것도 강제당하지 않으면서 전적으로 자기의 자발성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경우 ‘타인’은 늘 우리의 자유에 걸림돌로 작용하기 일쑤이다. “타인은 나에게 있어서 지옥”이라고 말했던 사르트르의 말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홀로 자족적인 자유를 찾는 과정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외로움이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사람들은 술과 마약, 그리고 쾌락으로 도피한다. 때로는 배타적이 되고, 이웃에게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외로움은 쉬 사라지지 않는다. 소금물을 들이킨다고 갈증이 해소되지는 않는 법이다. 요즘 우울증이 늘어나는 것은 타자들과의 소통이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전도서는 혼자보다는 함께 일하는 게 효율적이고, 혼자 걷는 것보다는 함께 걷는 게 좋고, 혼자 눕는 것보다는 함께 눕는 게 따뜻하고, 혼자 싸우기보다는 함께 싸우는 게 승산이 높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참 진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진부하다고 해서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내 이웃이 누구냐고 묻는 율법교사에게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도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그를 피하여 지나갔고,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 이야기 끝에 주님은 율법교사에게 물으셨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누가복음 10:36) 주님은 ‘이웃’의 경계를 설정하거나 범주화하지 않았다. 다만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 ‘이웃 되어주기’를 사유하도록 하셨을 뿐이다. 종교, 문화, 피부색, 나라도 이웃의 경계일 수 없다. 측은히 여기는 마음, 바로 이것이 주님께서 이 세계에 회복시키려는 마음이다. 

 

제랄드 메이는 『사랑의 각성』이라는 책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옆집에 사는 할아버지는 아주 괴팍한 노인이었다. 아이들이 뒷마당에서 놀기 시작하자 노인은 철조망을 치고 자기 집 마당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하루는 아들 폴의 고양이가 그 집 장미 덩굴 안으로 들어가자 노인은 고양이를 죽이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폴은 고양이가 그 집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노심초사했지만, 며칠 후 고양이의 주검을 발견하고 말았다. 노인이 쥐약을 먹였던 것이다. 가족들 모두가 분노해서 뭔가 복수하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폴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이 지난 후 아이가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는 매우 외로운 분일 거예요. 우리가 그분에게 생일 파티 같은 것을 해드렸으면 좋겠어요.” 이 어린 천사는 우리에게 이웃 되어주기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누군가의 이웃이 되려 할 때 우리를 사로잡는 외로움 혹은 우울은 안개처럼 흩어진다.

 

*기도*

 

하나님, 남에게 방해를 받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삶이 무겁다고 느낄 때마다 나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소스라치곤 합니다. 피부가 상한 자리에 스치는 모든 것들이 다 고통을 안겨주듯이 삶에 지친 우리들은 작은 일에도 비명부터 질러댑니다.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는 이들을 보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는 누군가의 이웃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보다는 다른 이들의 속 깊은 아픔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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