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알고 싶습니다

김기석의 새로봄(158)

 

당신을 알고 싶습니다

 

(사도행전 17:22-27)

 

아레오바고에 선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는 아테네 사람들이 매우 종교적이라면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도 보았다고 말한다. 인간에게 익히 알려지지 않은 신들의 노여움을 살까 무서워 사람들은 미지의 신들의 제단까지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표면적 질서 너머에 다른 질서가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느낀다. 무신론자를 자처했던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은 나를 어쩔 수 없이 끌어당기는 덫이라고 말했다. 신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그는 그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그는 <미지의 신에게>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당신을 알고 싶습니다, 未知의 당신,/心靈 속 깊숙이 파고 든 당신을./내 목숨을 폭풍처럼 정처 없이 떠돌게 하는 당신./알 수 없는 당신, 그러면서 가까운 나의 血緣!/당신을 알고 싶습니다, 몸소 당신을 섬기고 싶습니다.“ 

 

 

 

 

 

신에 대해 알고 싶지만, 인식의 벽 앞에서 사람들은 절망한다. 알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나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그 대상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23b)라고 말한다. 그는 먼저 하나님을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당연하게 들리지만 아테네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만물의 근원(arche)을 자연 속에서 찾았던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을 알고 있다. 탈레스는 , 데모크리토스는 원자, 피타고라스는 가 만물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이런 논의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또 바울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손으로 지은 신전에 거하지 않으신다고 말한다. 신전은 신을 만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놓은 상징적인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또 하나님은 무슨 부족한 것이라도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제물을 바쳐야 노여움을 푸시는 분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다. 여기서 받음이 충격적으로 대비되고 있다. 하나님은 받으시는 분이기 이전에 주시는 분이시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살고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이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기에 낭비와 파괴가 일어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곳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사도행전 17:27)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해야 사람다운 삶이 가능하다.

 

*기도*

 

하나님, 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바다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세계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먼 데 계신 분으로 인식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눈을 열어주십시오. 세상 만물 속에 이미 와 계신 주님을 보게 해주시고,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기적임을 알아차리게 해주십시오. 그런 눈이 열릴 때 우리는 영적 빈곤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땅이 주님이 머무시는 곳임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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