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159)

 

흙가슴으로

 

다른 죄수 두 사람도 예수와 함께 처형장으로 끌려갔다. 그들은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서,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달고, 그 죄수들도 그렇게 하였는데, 한 사람은 그의 오른쪽에, 한 사람은 그의 왼쪽에 달았다. 그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제비를 뽑아서,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누가복음 23:32-34)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던 시간, 세상은 흑암과 절망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의와 진리와 사랑과 선이 잦아들고, 악마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골고다 언덕에서 군인들이 예수님의 손과 발에 쾅쾅 쳐 못을 박을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사는 사람들, 진실과 정의가 승리한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의 가슴에도 대못이 박혔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한껏 조롱하던 이들은 강자의 편에 서서 자신의 용렬함과 비겁함을 숨기려 했다. 그 어둠의 시간, 야만의 시간에도 주님은 당신께 맡겨진 일을 계속하셨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누가복음 23:34). 죽음의 문턱에서도 예수님의 사랑은 그치지 않았다. 주님은 세상의 폭력과 미움과 비겁함과 무지함을 사랑으로 감싸 안으셨다.

 

 

 

 

 

이 대목을 묵상할 때면 신동엽의 시 <껍데기는 가라>의 마지막 연이 떠오른다. “껍데기는 가라/한라에서 백두까지/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든 쇠붙이는 가라“. 시인은 한반도에서 모든 전쟁 무기들이 사라지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절절한 평화의 염원을 담고 있는 흙가슴이라는 표현이 이채롭다. 세상의 모든 것을 품에 안아 기어이 정화시키고야 마는 흙을 닮은 마음이 바로 흙가슴일 것이다. 어느 날 외국 기자가 장일순 선생을 찾아와 물었다

 

혁명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혁명이란 따뜻하게 보듬어 안는 것이라오.” “그런 혁명도 다 있습니까?” “혁명은 새로운 삶과 변화가 전제가 되어야 하지 않겠소? 새로운 삶이란 폭력으로 상대를 없애는 게 아니고, 닭이 병아리를 까내듯이 자신의 마음을 다 바쳐 하는 노력 속에서 비롯되는 것이잖아요? 새로운 삶은 보듬어 안는 정성이 없이는 안 되지요.”(최성현 엮음, <좁쌀 한 알>, 156-7쪽 요약)

 

우리는 야만의 시대에 대해 분노해야 하지만, 사람들을 네 편 내 편으로 가르고, 누군가를 적으로 규정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그것은 예수의 길이 아니다. 불의에 치열하게 저항하면서 정의를 추구해야 하지만, 미움과 증오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주님은 하늘 군대를 동원하여 원수를 없애기보다는 당신의 몸으로 세상의 어둠을 받아들여 빛으로 바꾸는 길을 택하셨다. 바로 이것이 예수의 혁명이다. 어리석어 보이고, 너무나 더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길이야 말로 생명의 길이고 평화의 길이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 떠오른다.  “자기의 몸을 신에게 바친 사람은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신을 믿는 사람은 결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진리가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리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분은 바로 이 사실을 몸으로 증언하셨다.

 

*기도*

 

하나님,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면서도 참 어렵습니다. 상처 입은 마음은 좀처럼 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에 새겨진 모욕과 수치의 기억을 우리는 적대감으로 바꾸어 마음에 쟁여두곤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어떻게 당신을 조롱하고 박해하는 무리를 용서하실 수 있었나요? 그 마음을 얻어 보려 노력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가해와 피해의 이분법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더 큰 세상과 잇댄 채 살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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