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지키는 길

김기석의 새로봄(184)

 

마음을 지키는 길

 

아이들아,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내가 이르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이 말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말고, 너의 마음 속 깊이 잘 간직하여라. 이 말은 그것을 얻는 사람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몸에 건강을 준다.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잠언 4:20-23)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순간마다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측 가능한 ‘상투어’가 아니다. 늘 새롭게 들려온다. 하지만 우리 경험은 인생이란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라고 말한다. 무료하고 권태로운 삶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분명한 지향이 있어야 한다. 제법 나이가 들고,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갖춘 이들도 가끔 길을 잃는다. 이정표를 찾아야 한다. 시인 이정록은 많이 배우진 못했지만 삶에 대한 통찰력이 넘쳤던 어머니와 아버지를 이정표로 삼고 산다.

 

“허물없는 사람이 어디 있겄냐?/내 잘못이라고 혼잣말 되뇌며 살아야 한다./교회나 절간에 골백번 가는 것보다/동네 어르신께 문안 여쭙고 어미 한 번 더 보는 게 나은 거다./저 혼자 웬 산 다 넘으려 나대지 말고 말이여.”(<가슴 우물> 중에서)

 

 

 

 

 

삶은 이처럼 단순한 건데 우리는 복잡하게 살아간다. 그렇기에 어떤 경우에도 우리 삶을 바른 길로 인도해 줄 말씀과 만나야 한다.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나부끼는 부평초처럼 우리 마음은 속절없이 흔들린다. 하루에도 몇 번씩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 감사와 노여움 사이를 오간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천국을 짓기도 하고 지옥을 짓기도 한다. 외부 세계의 영향에 민감한 우리 마음은 고요함을 누리지 못한다. 오죽하면 ‘내 마음 나도 모른다’는 말이 있겠는가? 예레미야는 일찍이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습니까?”(예레미야 17:9)라고 탄식했다. 

 

옛 사람은 어딘가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쓸 수 있어야 한다(應無所住而生其心, 金剛經)고 말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진 않다. 우리는 편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 똑같은 사안도 이익이나 입장, 친소관계에 따라 전혀 달리 평가한다. 누가 감히 나는 언제나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 마음은 늘 흔들린다. 그렇기에 마음을 제대로 쓰고 살려면 늘 잘 조율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음’으로 삼아야 할까? 히브리의 지혜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음으로 삼으라고 말한다. ‘귀를 기울이라’, ‘한시도 눈을 떼지 말라’, ‘마음 속 깊이 간직하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집중하라는 말이다. 집중이라는 한자어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모일 集에 가운데 中 자가 결합된 말이고, 다른 하나는 잡을/지킬 執에 가운데 中 자가 결합된 단어이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中’에 우리 마음을 오롯이 모아야 하고(集中), 또 그것을 꼭 붙들어야 한다.(執中) 붙드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꼭 지켜야 한다. 그것이 마음을 지키는 길이다.

 

*기도

 

하나님, 우리 마음은 늘 흔들립니다. 어떤 때는 담대하다가도 다음 순간 두려움에 떨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이타적인 선택을 하지만 이기심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이것이 내 마음이다’라고 말할 만한 확고한 마음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마음을 주님께 내놓습니다. 주님의 마음에 조율되지 않으면 우리는 어둠의 일에 이끌리겠기 때문입니다. 구멍투성이인 우리 마음을 고쳐주시고, 주님의 마음을 우리 속에 심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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