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구원받은 사람인가

  • 감사합니다. 자격 조건에 자신을 끼워 맞추고 살아야 이 세상 쉽게 산다는 데, 자격 없는 이에게 오늘도 생명 주심에 감사하며 살아야 겠습니다.

    이진구 2019.09.23 08:58

김기석의 새로봄(197)

 

누가 구원받은 사람인가

 

예수께서 여러 성읍과 마을에 들르셔서, 가르치시면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께 물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집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면서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졸라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때에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주인님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인님은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할 터이나, 주인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모두 내게서 물러가거라’ 할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는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는 바깥으로 쫓겨난 것을 너희가 보게 될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면서 이를 갈 것이다. 사람들이 동과 서에서, 또 남과 북에서 와서, 하나님 나라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다. 보아라, 꼴찌가 첫째가 될 사람이 있고, 첫째가 꼴찌가 될 사람이 있다.(누가복음 13:22-30)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13:23) 이것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질문자는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정말 궁금한 것을 물은 것이다. 그는 이미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구원을 보증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구원에 대한 갈망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다. ‘구원’이라는 단어를 통해 많은 이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하나님 나라'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천당’이라고 해야 그들의 숨은 욕망이 더 잘 드러날 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욕망이 어떠하든 성경에서 사용되는 구원(soteria)이라는 말은 매우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치유’라는 의미로 쓰일 때가 가장 많다. 병자의 치유, 귀신들린 자의 회복이 구원으로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회복은 그런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주님은 당신을 영접한 삭개오가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놓고, 남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고 했을 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누가복음 19:9)고 선언하셨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주로 사람의 사람됨이 회복된 것을 이르는 말이다. 거듭난 사람이라야 구원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던 사람은, 구원을 남과는 구별되는 특권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구원조차 남과의 경쟁에서 승리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정작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고 있는가?” 오지랖 넓게 남이 구원 받았나 받지 못했나를 곁눈질할 게 아니라 자기 삶을 살필 일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존경했다는 아베 피에르 신부에게 한 방송 진행자가 다짜고짜 물었다. “삶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피에르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영원한 사랑과의 영원한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 주어진 약간의 시간일 뿐입니다. 인생이 내게 그 사실을 가르쳐주었지요. 나는 이 말을 후세에 물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이러한 확신이 내 인생과 행동의 열쇠이기 때문입니다.”(아베 피에르, <피에르 신부의 유언>, 16쪽) 

 

예수님은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라는 질문에 동문서답으로 응대하셨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24절) 힘쓴다는 말은 ‘아고니제스테agonizesthe’를 번역한 것이다. 이 단어에서 심한 고통을 뜻하는 영어 단어 ‘agony’가 나온 것을 보면, 이 단어는 고심하고 고투하는 것 즉 진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급적이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이 아니라, 최선의 노력을 다해 들어가라는 말이다. 세상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이들이 있다. 편안하고 안락한 삶의 자리에서 벗어나 사서 고생하는 길에 접어든 이들 말이다. 이 거친 세상에 살면서 마음이 상하고 찢긴 이들의 이웃이 되어 주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상호부조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그런 이들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닐까?

 

*기도

 

하나님, 사람들은 구원받을 사람의 자격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 자격 조건에 자신을 맞추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구원받을 사람의 숫자가 제한되어 있다고 말하며 사람들을 미혹하기도 합니다. 구원을 독점한 듯 말하는 이들 가운데는 삶으로 주님을 부인하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주님, 구원받은 자답게 살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웃과 피조물을 대하고, 이웃을 복되게 하기 위해 스스로를 섬김의 자리에 서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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