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를 삼키는 자들의 정체

한종호의 '너른마당' 2019.09.28 09:48

한종호의 너른마당

 

낙타를 삼키는 자들의 정체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구나(마태복음 23:24).”

 

난폭한 시대다. 검찰은 죄를 찾는 게 아니라 죄를 발명해내고 있는 것만 같고 언론은 받아쓰기 외에는 하지 못한다. 교육에서 받아쓰기를 아예 없애야 할 판이고, 발명은 과학과목에서 폐기해야 하는 걸까?

 

한 나라의 법무부장관 임명과 관련해서 온통 이런 난리를 겪은 적이 있을까? 대선급 소용돌이다. 그만큼 검찰개혁이 민감하기 때문이다. 사생결판이 나야 끝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어느 쪽이 승리할 것인가이다.

 

적폐지속인가, 개혁추진인가? 이 갈림길에서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물러서는 순간, 개혁세력의 몰살이 닥친다. 강력해진 검찰권력은 무소불위의 힘으로 우리 사회를 관리하려 들 것이다. 어찌 이대로 두고 볼 것인가?

 

어디 정치판만 그런가? 대형교회 세습에 한 교단이 아예 몰빵을 했다. 기막힌 일이다. 무얼 더 가져야 속이 시원하다는 말일까? 주구장창 교회를 사유화하려는 세력의 권세가 추하다. 이미 그곳은 성전이 아니다. “강도의 소굴”일 뿐이다.

 

 

 

 

 

 

예수께서는 그의 선교역정에서 바리새파와 율법학자의 위선을 매우 강렬하게 미워하셨다. 그리고 여기에 더욱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들의 정체를 폭로하신 점이다. 그것은 이들이 지닌 사회적 위치와 종교적 권위가 폭로의 대상에서 벗어나게 하고 있었다는 현실과 관련이 있다.

 

즉, 누구도 감히 그러한 작업을 할 용기나 생각을 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이면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한 채 그들의 지도자적 권위에 순종하는 일종의 종교적 세뇌에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은 예수께서 이들이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것이 자신들의 종교적 선행을 포장하는 행위라는 점을 지적한 부분이다. 이들은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것을 대단한 것으로 선전하고, 그것이 자신들의 의로움을 보장해주는 듯한 모습으로 세상에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들이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것을 보고 자신들의 가치를 존중하고 종교생활의 기준을 거기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들이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이유는 낙타를 삼키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것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확보하고, 그 대가로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낙타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이만큼 순수합니다, 나는 이만큼이나 정직합니다, 나는 이만큼이나 학식이 높습니다. 나는 이만큼이나 희생해 왔습니다, 나는 이만큼 선행을 베풀어 왔습니다.” 등등은 사실은 전부다 낙타를 삼켜먹기 위한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행위라는 것이다.

 

“아, 욕심이 없으시군요. 아, 얼마나 자신을 버리고 희생해 오셨습니까?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군요. 오로지 높은 지혜에만 관심을 보이고 살아오셨군요.” 등의 평가를 얻어내어 낙타를 먹어치우기 위해 위장하는 자들은 도처에 있다.

 

가령, 정치판이 벌어지면 이렇게 ‘나는 하루살이를 걸러내고 사는 사람입니다’라는 자기발전의 선전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한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표와 자리가 주어지면, 그 다음에는 그의 위 속에 수 십 마리 낙타가 들어가는 것을 본다.

 

나는 소위 기독교 인사들이(진보와 보수를 망라하지만 진보라고 자처하는 이들의 위선과 탐욕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교단선거뿐만 아니라 연합기관이나 자신의 교단과 기관에서 자리를 보전하거나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실은 낙타를 겨냥하면서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덕을 선전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마음은 낙타에 가 있고 하루살이는 그걸 위한 도구가 될 뿐이다.

 

 

 

 

 

지금 우리는 나라의 운명을 감당하겠다는 이들의 말과 삶 속에서도 하루살이가 낙타를 얻기 위한 제물로 바쳐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자신이 살아온 바가 하루살이를 걸러내며 살아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욕없이 국가와 민족의 미래만을 위해 나섰다고 하지만, 그들이 사는 집과 재물과 삶의 스타일, 그 자손들의 행실은 낙타를 삼킬만한 위가 있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는 것들임을 발견한다.

 

조국 장관의 자녀 문제로 쌍심지를 돋우고 있는 정치인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이미 뱃속에 낙타 몇 마리는 너끈히 집어삼키고는 하루살이조차 걸러낸 듯 재고 있다. 참으로 두꺼운 낯짝이다. 그걸 벗기려면 보다 예리한 칼이 필요할 것이다.

 

당대의 현실에서 예수께서는 이들의 정체를 폭로하시면서 ‘눈먼 인도자’라고 공박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도자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준을 알게 된다. 그가 낙타, 즉 거부하기 어려운 크기와 강도의 재물과 권세와 명예의 유혹 앞에서 자신의 진실을 포기하는가, 아닌가이다.

 

아, 이 어리석음여, 하나님 나라를 낙타에 비길까? 정작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면서 낙타를 삼키겠다는 자들이 득시글거리는 세상에서 우리는 그 뱃속을 해부해야 하는 임무까지 맡았다. 참으로 고단하구나. 그래도 해야겠다. 욕심에 눈먼 자들이 인도하는 세상을 종치기 위해서.

 

한종호/꽃자리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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