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뭄을 겪으며

김기석의 새로봄(

 

인생의 가뭄을 겪으며

 

주님, 비록 우리의 죄악이 우리를 고발하더라도, 주님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선처해 주십시오. 우리는 수없이 반역해서,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의 희망이십니다. 이스라엘이 환난을 당할 때에 구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땅에서 나그네처럼 행하시고, 하룻밤을 묵으러 들른 행인처럼 행하십니까? 어찌하여,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는 사람처럼 되시고, 구해 줄 힘을 잃은 용사처럼 되셨습니까? 주님, 그래도 주님은 우리들 한가운데에 계시고,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백성이 아닙니까? 우리를 그냥 버려 두지 마십시오.(예레미야 14:7-9)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고 제 고집대로 살던 백성들, 죄악에 익숙해져서 선을 행할 줄 모르는 백성들에게 경고의 의미로 극심한 가뭄을 내리셨다. 백성들은 기력을 잃은 채 땅바닥에 쓰러져 탄식하고, 땅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고, 땅에서는 풀조차 돋아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동안 못할 일이 없는 것처럼 도도하게 살아왔지만, 하나님이 잠시 은총을 거두시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자들임을 절감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다.

 

“주님, 비록 우리의 죄악이 우리를 고발하더라도, 주님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선처해 주십시오. 우리는 수없이 반역해서,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예레미야 14:7)

 

절실한 기도이다. 하지만 이 기도가 진실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삶이 먼저 갱신되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들의 살 권리를 마구 짓밟았던 죄를 회개해야 한다.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함부로 말했던 죄를 눈물로 씻어야 한다. 남의 골수를 마르게 했던 죄에서 돌이켜야 한다.

 

 

 

 

때때로 고통은 사람을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 계기가 된다. 버티기 힘든 고통을 겪고 보니 백성들은 비로소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고는 살 수 없는 자기의 한계를 직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민족사의 어려운 고비마다 지키시고 건져주신 은혜를 떠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처지에 아랑곳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우리를 그냥 버려두지 마십시오.”

 

80년대에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절박하게 불렀던 노래가 있다. “우리들에게 응답하소서 혀 짤린 하나님/우리 기도 들으소서/귀 먹은 하나님.” 불경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가사 속에는 절박한 상황 속에 처한 이들의 절규가 담겨 있다. “그래도 당신은 하나 뿐인 늙으신 아버지.” 실낱같은 희망조차 버릴 수 없다. 희망은 하나님에게서 올 수밖에 없다.

 

그 희망을 품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이 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이 머무시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가 맺는 관계 속에, 우리가 섞여 살고 있는 사회 속에 하나님의 자리를 마련해 드려야 한다. 하나님을 소외시킨 죄를 참회하고, 하나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셔야 한다. 하나님의 눈으로 이웃을 보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보인다. 불화와 분쟁을 만드는 호전적인 말들을 그쳐야 한다. 누군가를 없앰으로 평화를 만들 수 있다는 망상을 떨쳐버려야 한다. 그때 비로소 인생의 가뭄이 그칠 것이다.

 

*기도

 

하나님, 전도자는 ‘바람 그치기를 기다리다가는, 씨를 뿌리지 못한다.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다가는, 거두어들이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막연한 기다림, 불모의 기다림이 우리 삶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인생의 가뭄이 찾아왔을 때,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더하여 주십시오. 우리 마음의 지성소를 차지하고 있는 헛된 것들을 내쫓고 그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게 해주십시오. 일상의 모든 순간, 하나님을 소외시키는 일이 없도록 우리를 인도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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