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등뼈를 곧추 세우라

김기석의 새로봄(191)

 

삶의 등뼈를 곧추 세우라

 

이 세상에는 주 우리의 하나님이 숨기시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일도 많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뜻이 담긴 율법을 밝히 나타내 주셨으니, 이것은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의 자손은 길이길이 이 율법의 모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신명기 29:29)

 

출애굽 공동체가 모압 땅에 이르렀을 때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이른바 호렙산에서 맺었던 언약에 덧붙여서 주어진 모압 언약이 그것이다. 모세는 출애굽의 긴 여정 가운데서 이스라엘이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행위를 간략하게 언급한다. 애굽 땅에서 베푸신 이적, 광야에서의 이적은 그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권능의 행위였다. 백성들은 그런 놀라운 일을 보고 겪었지만 여전히 수동적 객체일 뿐 역사의 주체로 서지 못했다. 모세는 그런 현실을 이렇게 요약한다.

 

“그러나 바로 오늘까지, 주님께서는 당신들에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지 않으셨습니다”(신명기 29:4).

 

‘깨닫는 마음’, ‘보는 눈’, ‘듣는 귀’가 열리지 않으면 사람은 누구나 독립적 주체로 서지 못한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다른 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다른 이들의 언어를 자기 말로 여기며 산다. 광야는 사람의 마음을 시험한다. 척박한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인해져야 한다. 하지만 광야는 중첩되는 어려움으로 인해 마음이 물크러질 수도 있는 공간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넉넉하진 않았지만 필요한 것들을 다 얻을 수 있었고, 위기 때마다 구원을 경험했다. 모세는 그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라고 말하며 그들은 새로운 언약관계 속으로 초대한다.

 

 

 

 

그들은 다른 민족들의 신을 섬겨서는 안 된다. 힘 있는 이들의 편익을 위해 동원되는 우상 앞에 머리를 숙이는 순간 평등공동체의 꿈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삶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빛과 어둠,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기쁨과 슬픔이 확연하게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 않던가. 모호함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모호하다고 하여 모든 판단을 유보한 채 되는 대로 살자는 말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주 우리의 하나님이 숨기시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일도 많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것입니다.”(신명기 29:29a)

 

알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는 것으로 남겨두고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지도 삼아 시간 여행을 하면 된다. 하나님의 뜻이 담긴 율법 혹은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안내인이다. 그 말씀이 설사 우리 이익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말씀을 척도로 삼아 우리 삶을 조율할 때 삶이 가지런해진다. 말씀을 따라 사는 일에 익숙해질 때 우리 삶의 등뼈가 곧게 세워진다. 광야를 헤매는 것처럼 삶이 고달프고, 도무지 방향을 알 수 없어 어지러울 때면 말씀 한 자락을 붙들고 그 미로를 헤쳐가야 한다.

 

*기도

 

하나님, 삶이 순탄치 않다고 느낄 때마다 우리는 버릇처럼 누군가를 원망합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부모를 원망하기도 하고, 우리가 누려야 할 몫까지 독점한 것 같은 이들을 미워합니다. 강자들의 편을 드는 것 같은 사회 시스템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원망한다고 하여 세상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제는 원망하는 버릇을 내려놓고 성실하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미로와 같은 세상을 통과하겠습니다. 우리의 동행이 되어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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