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의 길을 나서는 이들

한종호의 '너른마당' 2020. 9. 23. 08:03

한종호의 너른마당(64)


순례의 길을 나서는 이들

 

코로나에 길고 긴 장마와 태풍, 유례없었던 무더위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계절의 변화를 그 누구도 거스를 수는 법. 어느 누구도 태양을 바닷속으로 집어넣었다가 산 위로 꺼내 올릴 수 없다. 하늘의 별들을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냈다가 다시 나오게 할 방법도 없다. 우주의 흐름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 궤도를 정해놓으셨고, 그에 따라 인간의 삶도 그 변화의 흐름과 궤도, 그 길 위에 있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길은 이미 있기도 하고 아직 없기도 하다. 기존의 궤도를 돌아 움직이는 길이 있는가 하면, 아직 그 위에 서 보지 않아 길은 있으나 그 길이 아직 자신이 걸어갈 길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길이지만, 그 길 위를 걷는 이에 따라 그 길의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결국 도달해서 얻게 되는 종국적인 뜻이 같을지라도 그 여정의 내용과 과정은 사뭇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인간의 운명과 그 길은 이미 있는 것이지만, 그 길을 처음 가는 이에게는 이미 있으나 아직 없는 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무수히 오간 길도 그 길을 처음 밟는 이에게는 낯선 길이다. 전혀 모르는 새로운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우리는 오랜 옛날 그 길 위에 있던 사람들의 영혼, 숨결, 그리고 인생과 역사를 만나게 된다. 그들이 겪었던 고뇌, 슬픔, 좌절과 갈망 그런 것들이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된다. <순례>는 바로 그러한 여정을 우리에게 준비시킨다.

 

순례는 다만 성지를 다녀오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의 고뇌와 절망, 그리고 새롭게 일어서려는 의지의 꿈이 존재하는 곳이면 그 어디든 우리에게 순례의 현장이 되는 것이다. 그로써 우리에게 새로운 영성과 깨우침이 일어나면 그 순례는 성공적이 될 것이다. 그건 무언가를 찾아 나선 길이 결국 그 무언가를 찾았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두가 바쁘게 뛰어가면서 살아가는 때에 순례는 그 속도가 너무 느리게 보인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세월에 이 숨차게 돌아가는 시대에 적응할 수 있을까 염려하기도 한다. 모두가 정신없이 자기 일에 몰두하는 때에, 긴 시간을 뚝 떼어내서 그 어디론가 순례의 길을 떠난다고 하면 그건 세월의 낭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낙오하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모두가 실생활에 결국 도움이 되는 것을 구하는 때에, 그보다는 고답적이고 정신적이며 생활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 같은 순례자의 삶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빠르게 달리기만 했다가 그 여정에서 반드시 봐야 할 것과 깨우쳐야 할 것을 놓치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속도는 있지만 방향은 없고, 빠르기는 하지만 결국 도달할 곳에 도달하는 것은 아닌 기이한 인생의 모순에 직면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자기 일에 집중하는 것 같지만 큰 맥락을 놓치고 살아가기에 자신의 삶이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래서 우리 인생사의 커다란 지도를 갖지 못한 채 그저 열심히 가기만 하면 되는 줄로 아는 어리석음이 우리를 삼켜버릴 수 있다. 이에 더하여, 현실의 삶이란 그 정신적 능력에 의해 그 가치가 달라질 수 있음을 알지 못한 채 세끼 밥 먹고 자기 욕심 채우고 살면 다 되는 줄로 아는 자기 삶의 품격을 스스로 저버리고 마는 지경에 빠져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일상의 삶을 잠시 멈추고, 순례의 길로 떠나는 것은 사실 먼 곳을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도 하다. 사랑하는 남편이 갑자기 자신에게 말도 하지 않고 베트남 전쟁 최일선으로 떠나자 아내는 엉터리 위문단의 일원이 되어 가수로 베트남에 가게 된다. <님은 먼 곳에>라는 영화의 줄거리 대략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남편인 님을 김추자의 노래처럼 늦기 전에만나지만 그곳에서 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도 만나게 된다. 님은 먼 곳에 있으나 그녀의 순례는 그 먼 곳을 마다하지 않고 떠남으로써 님과 자신 모두를 동시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순례도 그와 다르지 않다. 우리의 인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을 만난 자신을 만나는 그런 여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님은 먼 곳에있는 것 같으나 사실은 자신의 가슴, 영혼, 삶 속에 있다는 것을 깨우치는 이 순례의 여정은 지리적 거리를 뛰어넘는 자기 안의 순례로 귀결된다. 길을 가면서 순례자는 끊임없이 자신과 대치해야 하고 자신과 긴장해야 하며 자신과 새롭게 조우하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자신을 만나고 이루어나가게 된다.

 

사실 우리는 순례의 의미를 역사 속에서 갖지 못한 민족이다. 정신적 성지가 없는 민족의 모습을 여기서 보게 된다. 그건 우리에게 부끄러움이기도 하다. 나라가 힘들고 사회가 어지럽고 정치가 파행을 겪을 때, 우리에게 순례자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긴 호흡으로 세상을 내다보면서 미래를 예견하는 그런 정신적 순결의 힘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당장의 이해에만 휘둘리는 그런 저열함으로 살아가는 사회가 되고 만다.

 

세상은 한없이 변하는 것 같지만 인간이 사는 본질은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나 행복해하고 싶고 자유와 기쁨과 감사를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건 그저 오지 않는다. 정신적 성지를 향한 순례로 순결해지는 영성을 가진 개인과 사회가 진정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그것이다. 빠르기만 하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집중하고 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현실적이기만 하면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니다. 깊고 깊은 영성의 힘이 솟구칠 때, 이 혼란의 시대를 뚫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

 

가을바람이 불면, 순례의 길을 떠나는 이의 머리 위 하늘에서 별들이 반짝일 것이다. 숲은 춤추며 노래하고 강은 우리보다 앞서서 달려갈 것이다. 우리는 이미 길 떠난 자이며 아직 그곳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벌써부터 축복을 누리는 존재가 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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