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41)


 낯선 곳, 어색한 잠자리와 꿀잠


구름에 달 가듯이 그렇게 가면 얼마나 좋을까만, 시간이 지날수록 길은 멀게 느껴졌고 걸음은 무겁고 더뎌졌다. 긴장으로 응축되었던 몸과 마음이 점점 풀어지는 듯 시간이 지날수록 헐거워지고 느슨해진다 싶었다.


먼 길을 격려차 찾아온 어머니와 형과 함께 점심을 먹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는 군대 간 아들 면회를 오신 듯 바리바리 간식이며 과일 등을 챙겨 오셨다.


철도 중단역인 백마고지역으로 달리는 경원선 열차,

 언제나 길이 열려 북쪽 끝까지 숨가쁘게 달릴 수 있는 날이 찾아올지.


오후에는 하루를 묵기로 한 대광리역까지 가야 했다. 길은 거반 개울을 따라 이어졌다. 개울을 따라 걷는 것은 아스팔트를 걷는 것에 비하면 거의 천국과 같았다. 무엇보다 한적해서 좋았고, 내달리는 자동차를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훅훅 얼굴로 올라오는 아스팔트의 열기도 없었다. 경치도 좋았고 거기에다 바람도 불었다.


하지만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땡볕이었다. 제방 둑을 따라 심은 것은 대개가 꽃, 꽃은 사람에게 향기를 주지만 그늘은 주지 못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다 줄 수가 없는 것처럼. 중간 중간에 나무를 심은 곳도 있었지만, 아직 키가 작아 나무 또한 그늘을 만들지는 못했다. 이름만으로는 제 역할을 다 할 수가 없다는 듯이.


걷고 또 걷다가 너무 지쳤다 싶을 때면 잠깐씩 쉬었다. 한 번은 다리 밑 그늘 속으로 들어가서, 두 번은 수로의 수문을 관리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서 그야말로 고꾸라지듯 쓰러져 누웠다. 벗은 배낭을 베고는 그냥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럴 줄 알았으면 깔개라도 챙길 걸. 잠시라도 눈을 붙이면 한결 낫겠다 싶은데, 천하의 잠보에게도 잠은 쉬이 오지를 않았다. 혹 지나가는 누군가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내 모습을 봤다면 거지 아니면 간첩으로 오인을 했을 것이다.


아무도 반기는 이 없는 마을에 들 수는 없지 않겠냐는 듯, 이가 드러나도록 웃으며 반겨주는 장승.


점심을 먹던 식당에서 주인에게 우연히 들은 말에 의하면 군남면 옥계리 마을의 마을회관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가 있다고 했다. 값도 저렴할 것이라 했다. 값도 값이지만 대광리역 앞에서 숙소를 찾는 것보다는 마을회관에서 하루를 묵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식당 주인에게서 받은 연락처로 전화를 하여 마을 부녀회장님과 통화를 했더니, 가능하다고 했다. 생각지 않았던 일이지만 그날 밤을 기꺼이 옥계리에서 묵기로 했다. 여건이 어떨지 모르는 대광리역에서 숙소를 구할 필요가 없어지니, 마음도 훨씬 홀가분해졌다.


한적한 시골마을 옥계리에 도착을 했을 때는 긴 여름해가 기울며 조금씩 땅거미가 깔리고 있었다. 그 시간에 저녁을 먹기는 어려울 터, 마을 초입에 있는 가게에서 빵을 샀다. 아침은 부녀회장님 집에서 먹을 수가 있다고 했으니 저녁만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하룻밤을 묵은 옥계리 마을회관. 길을 걷는 자에게는 어색하거나 불편한 잠자리는 따로 없었다.


겨울철이야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겠지만 한창 일철, 마을회관의 문은 닫혀 있었다. 일에 바쁜 부녀회장님 대신 동네의 한 아주머니가 찾아와 문을 열어주었다. 평화누리길 게스트하우스 3호이기도 한 옥계리 마을회관은 생각보다도 컸다. 숙소는 2층에 있었다. 덩그마니 커다란 방, 숙소라 하기엔 뭔가 어색했지만 그래도 씻을 곳이 있었고, 뜻밖에도 샤워실엔 세탁기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얼른 씻고 빨래를 마친 뒤 벽에 기댄 채 빵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러는 동안 조금 높은 곳에 자리를 잡은 맞은 편 창밖으로는 이내 어둠이 내렸다. 낯선 동네 마을회관에서 묵는 하룻밤, 제법 큰 방에 혼자 누운 것도 그랬거니와 오랫동안 비어있던 집에 들어온 듯 어색한 마음이 들었다.


걷는 일정이 아니었다면 그런 분위기가 낯설고 어색하여 잠을 뒤척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한없이 조용한 숙소일 뿐, 잠을 방해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잠에 빠져들기까지의 시간이 결코 길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가 길을 걷는 사람이란 걸 안다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불편하고 어색하고 낯선 상황을 만나도 얼마든지 그러려니 할 수 있지 않을까. 낯선 곳, 어색한 잠자리를 두고도 얼마든지 꿀잠을 잔 옥계리 마을회관은 그런 의미로 남아 있다.


한희철/동화자각, 성지교회 목사


0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 http://fzari.tistory.com/956

0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0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 http://fzari.com/959

04. 배낭 챙기기 http://fzari.com/960

05. 챙기지 않은 것 http://fzari.com/961

06.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http://fzari.com/964

07.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 http://fzari.com/966

08. 가장 좋은 지도 http://fzari.com/967

09. 길을 잘 일러주는 사람 http://fzari.com/969

10. 사람은 가도 남는 것 http://fzari.com/971

11.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http://fzari.com/973

12. 소똥령 마을 http://fzari.com/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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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할머니 민박 http://fzari.com/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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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영의 구약지혜서 산책(12)


나의 말이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새겨졌으면


글 쓰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자기 이름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쓴다. 또 누군가는 입신출세의 길이어서 쓴다.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 쓰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글을 쓰지 않고서는 못 배기기 때문에 쓴다. 글을 쓰지 않으면 마음속 지병이 되기 때문에 쓰는 이도 있다.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쓴다는 것은 기도의 형식과 같다고 했다. 간절한 무엇이 있기에 글을 쓴다는 것인데, 그러면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만을 위한 행위일까? 글쓰기가 자신의 존재이유인 사람도 있지만, 인류에 대한 연민 때문에 글을 쓰는 이도 있다. 지금 이 순간 나의 글쓰기는 자신의 결백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불멸의 기록이 되기를 염원했던 한 남자를 향한 연민 때문이다.


죽음을 갈망했던 남자


옛날 아주 먼 옛날 ‘우스 땅에’ 욥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살았다(욥기1:1). 그는 사해 남쪽 에돔 지역 어디쯤으로(창세기36:28) 추측되는 우스의 시민이었다. 그의 시대, 지역, 어떤 집안의 사람인지, 이름의 뜻도 정확히 알려진 바 없으나 하나님이 승인하신 당대의 의인이었다(1:1, 16). 자녀는 아들 일곱에 딸 셋이 있었으니(1:2) 이상적이고 완벽한 가족 그 자체다. 그러나 느닷없이 닥친 재난과 불행은 그를 처참한 상태로 몰아갔다. 모든 재산과 자식을 잃고(1:13-19), 심각하고 끔찍한 피부병에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2:7-8). 이것은 하늘 위에서 벌어진 하나님과 사탄과의 일종의 ‘내기’에서 시작된 일 때문이었다(1:8-11). 그러나 하늘 위를 볼 수 없는 욥은 자기의 불행과 육체적인 고통의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래도 그는 불행과 고통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복과 화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고백하며(1:21; 2:10) 순응했던 아버지였고, 남편이었다.


어느 날, 고통당하는 욥을 위로하기 위해 친구들이 찾아 왔다. 친구들은 경악했다. 그들은 처참한 욥의 모습을 보고 일제히 소리 지르며 울고 겉옷까지 찢으며 죽은 자를 애곡하는 의식처럼, 욥의 고통에 동참했다. 친구들은 욥의 처절한 고통에 차마 말도 못하고 칠일 동안 침묵의 시간을 보낸다(2:11-13).


그런데 욥에게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욥이 친구들과 긴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발설한 첫 마디는 ‘자기저주’였다. 욥은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며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충격에 휩싸였다. 욥은 태어난 날과 수태되던 밤을 저주했다. 그 밤이 현재 자신이 겪는 슬픔을 막아주지 못했다고 생각해서였다(3:1-10). 욥은 출생 당시 죽지 않아 안식할 수 없었던 것(3:11-19), 그리고 내면에 차오르는 두려움과 비탄은 죽음을 갈구하는 탄식의 소리로 분출했다(3:20-26). 신체적인 고통이 커지면서 고뇌의 깊이도 깊어졌다. 욥은 왜 자신이 끔찍한 고통에 던져졌는지 도무지 답을 구하지 못해 답답했다. 그의 탄식은 숨겨진 자기의 길에서 삶의 방향감각을 잃고 분출하는 믿음을 위한 투쟁이었다. 그는 갑작스러운 재난과 고통을 이해하려고 분투했고, 솟구치는 의문들을 쏟아내며 과감하게 항변했다.


그러나 욥의 항변과 탄식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는 친구들(엘리바스와 빌닷, 소발). 그들은 욥의 고난이 밝혀지지 않은 욥의 죄 때문이라고 추정하며 죄인으로 몰아세우기까지 한다. 위로자로 왔던 친구들은 더 이상 위로자가 아니다. 친구들에게 욥의 내적투쟁과 불평의 언어들은 전통적인 지혜가르침과 보응신학을 변개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향한 도전이며, 평화를 깨는 위험한 사상가로 보일 뿐이다. 때문에 친구들은 욥에게 마음을 돌이켜 순응하고 회개하라고 화려한 신앙의 언어로 집요하게 설득한다.

그러나 욥은 부당하게 느껴지는 고난은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억울하게 둘러막고 불공평하게 대하시고 박해자가 된 것임을 친구들이 제발 알아주길 바란다(19:6). 욥이 하나님을 고발한 셈이다. 욥은 폭행을 당해 부르짖어도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 불운한 시민처럼, 어둠에 갇힌 여행객처럼, 굴욕을 당하는 왕자처럼, 뿌리 뽑힌 나무처럼, 전쟁터의 적군처럼, 적군에게 포위당한 도성처럼(19:7-12) 하나님이 자기를 다루시는 것처럼 느낀다.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 <욥기> 삽화


아, 모두가 나를 버렸구나!


욥은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외로움이 버겁다. 형제와 친척이 모두 떠나고, 자기를 멀리하며, 잊었다(19:13-14). 자신의 입김을 아내도 매스꺼워하고 등을 돌린다. 어린애들도 업신여기고 조롱한다(19:18). 마음의 비밀을 나눌 가까운 친구들조차 원수가 된 상황이다(19:19). 뼈는 살가죽에 달라붙고, 겨우 잇몸으로 연명한다(19:20). 자신이 속한 공동체 모든 구성원에게 버림받은 신세다(19:21-22). 욥이 사회적인 지위와 품위를 잃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욥은 자신을 몰아세우는 친구들에게 연민을 구한다. ‘나의 벗들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시게 나를 불쌍히 여기시게’(19:21). 그러나 친구들이 여전히 냉담했던 것일까. 욥은 자신의 말이 전혀 수용되지 않는 절망의 상황에서 오직 한 분, 그의 ‘증인’과 ‘대변인’(16:21)이 되어 줄 하나님을 생각하며 자신의 말이 기록되기를 열망한다.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19:23-24, 개역개정)


욥은 “모든 시간의 횡포와 인간의 필멸성을 넘어 자신의 무죄함에 대해 증거 할 수 있는 기록”(다니엘 에스테스)을 원한다. 그리고서 욥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한다. 이 말은 기독교 공동체에서 죽음 이후 하나님을 만나는 육체적인 부활을 옹호하는 시 본문이다(19:25-27).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19:25-26, 개역개정)


“대속자”를 뜻하는 히브리말 ‘고엘’은 본래 가장 가까운 친족(형제, 삼촌, 조카 등)을 일컫는 용어다. 어떤 사람의 재산을 그 가문의 재산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다시 사는 책임을 가진 ‘기업 무를 자’로서(레위기 25: 25-34), 노예가 된 친족을 도로 사서 노예가 되지 않게 하거나(레위기 25:47-54), 과부와 결혼하여 후사를 잇는 책임과 관계된 말이다(룻기 3:12; 4:1-6). 또는 살해된 친척의 피를 복수하는 ‘피의 보복자’를 뜻한다(민수기 35:12, 19-27; 신명기 19:6, 11-12). 그러니까 ‘몸값을 주고 구출하다,’ ‘다른 힘으로부터 해방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어 친족의 명예를 회복하는 방법이었다.


동시에 ‘고엘’은 법률적인 상황의 은유로서 주님께 적용되곤 한다(잠언 23:10-11; 예레미야 50:34; 애가 3:58; 시편 119:154). 특히 이사야 40-66장에서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자의 ‘고엘’이다. 그러하니 구약의 맥락에서 욥이 말하는 ‘나의 구속자’(19:25)는 하나님이다. 욥은 이미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해줄 친구(6:14), 판결자 혹은 중재자(9:33), 증인과 중보자(16:20)를 기대했지만, 이 땅의 ‘고엘’이 모두 등 돌린 처절한 상황에서 자기를 구출해주실 ‘고엘’을 열망한 것이다. 욥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희망을 안고 확신에 차 있다. 당대에는 도무지 이해 될 수 없었던 욥의 말, 초대 교부들의 해석의 빛 아래 신약의 부활과 맞닿게 되었다. 그때는 욥이 볼 수 없었던 ‘구속자’(‘고엘’) 이름은 메시아 예수. 우리는 마지막 날에, 그가 일어나셔서 우리를 변호하실 것을 믿는다(베드로전서 1:18-19; 요한계시록 1:5; 5:9).


성탄절을 기다리는 대강절이 곧 시작된다. 자기의 말이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지길 열망했던 욥. 그가 남긴 ‘구속자’에 대한 믿음의 고백은 신앙의 후세대를 위한 거룩한 책에 불멸의 기록으로 남았고, 헨델(1686-1759)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3부 부활과 영원한 생명의 첫 곡 아리아로 숭고한 음악이 되었다. 예수의 오심을 경축하기 위한 기다림의 계절, 욥의 고백은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변호와 위로를 가다리는 모든 이들의 불멸의 노래가 되었다.


김순영/ 《어찌하여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저자, 대학원과 아카데미에서 구약 지혜서를 강의하며 신학과 현실의 밀착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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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40)


어머니의 마중


아흐레째 일정은 철원 고석정에서 시작했다. 게르마늄 온천수가 솟는 호텔이 있다고 로드맵에는 적혀 있었지만, 호텔 인근에 있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빨래 말리는 건조대까지 구비가 된 좋은 숙소였다. 입구에 걸려있는 달력을 보고 주인에게 반갑게 인사를 나눴던 것은 성지교회 청년들이 수련회를 다녀오기도 한 구수감리교회 달력이 벽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펜션 주인은 구수교회 권사님이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는 내게 권사님은 작은 플라스틱 병에 담긴 꿀을 전해주었다. “정말로 좋은 꿀이에요. 걸으면서 드세요.” 따뜻하고 진심어린 응원이었다. 권사님이 주신 꿀을 배낭에 넣고 물을 마실 때마다 섞어서 마셨다.


걸음을 서둘렀다. 전날 희준 형(兄)이 전화를 해서는 한 번 찾아오겠다고 한 터였다. 길을 걷는 동생을 위해 점심을 사겠다는 형의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백마고지역에서 점심때쯤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철원으로 들어가는 다리. 옛 다리와 새로 놓은 다리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철원은 곳곳에 아름다움이 숨어 있는 땅이었다. 한탄강을 따라 길을 걷다 보니 숨은 비경들이 한참 이어졌다. 시간만 된다면 천천히 걸으며 곳곳의 경치를 여유 있게 즐기고 싶었다. 가야할 길이 있고 점심 약속도 있는지라, 주마간산(走馬看山)처럼 지나가야 하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도피안사를 거쳐 철원제일교회 앞을 지날 때쯤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쯤 오고 있는지를 물었다. 생각보다 형은 일찍 도착을 했던 것이었다. 열하루 일정의 후반부, 그렇지만 걸음을 재촉했다.


철원이면 그래도 익숙한 지명, DMZ과는 무관하지 않을까 싶은데도 긴 철조망이 도로 양쪽으로 내달리고 있었고, 철조망에는 지뢰가 묻힌 곳임을 알리는 경고판이 일정한 간격으로 매달려 있었다. 이 땅의 아픔은 그렇게도 길고 질긴 것이었다.


철원은 곳곳에 아름다움이 숨어 있는 곳이었다. 

주마간산처럼 지나가는 것이 무척 아쉽게 여겨졌다.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길 저쪽 끝에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가만 보니 형이었다. 백마고지역에서 기다리는 대신 내가 걷는 길을 짐작하여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보니 형은 혼자가 아니었다.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아직 거리가 멀어 누군지를 알 수가 없었다. 형수님이 동행을 했나, 아내가 같이 왔나 짐작이 안 됐다.


거리가 더 가까워지며 보니 어머니였다. 멀리서도 흰 머리가 보였다. 어머니가 형과 동행을 하여 찾아오신 것이었다. 저 앞에 걸어오는 분이 어머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왈칵 눈물이 솟았다. 뜨거운 눈물이 나도 모르게 솟았다. 내일 모레가 아흔인 어머니가 이 뙤약볕 아래를 걸어 마중을 나오실 줄이야.


군에 입대했을 때가 떠올랐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막 자대에 배치를 받은 어느 토요일, 갑자기 내부반장이 내 이름을 불렀다. 면회를 온 사람이 있으니 속히 옷을 갈아입고 위병소로 나가보라는 것이었다. 자대에 배치 받은 것을 아직 누구에게도 알릴 새가 없었는데 누가 면회를 온 곳일까, 떨리는 마음으로 위병소로 갔을 때 저만치 눈에 들어온 사람도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큰 형 가족과 함께 면회를 온 것이었다.


그 때도 왈칵 눈물이 솟았었다. 입대하던 날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이 나도 모르게 터져나왔다. 전라남도 광주, 광주에서 떨어진 송정리, 그곳에서도 한참 떨어진 평동, 어찌 그 외진 곳에 배치 받은 것을 알고 찾아오신 것일까. 더없이 고마우면서도 돌아서는 어머니께 다시는 면회를 오지 마시라 신신당부를 드렸다. 면회를 다녀가기에는 너무도 거리가 먼 곳이기 때문이었다.


1946년 북한정권하에서 지역주민들의 강제 모금과 노력동원으로 지어진 건물.

전쟁 중 내부는 파괴되었지만 그래도 벽체는 남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길을 걷는 내가 어머니께 눈물을 보이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싶었다. 목사의 어머니로서 가뜩이나 아들과 아들의 목회를 걱정하고 계신 어머니께 눈물을 보이는 것은 괜한 걱정만 끼치는 일이다 싶었다. 그래도 거리가 저만큼 떨어져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얼른 눈물을 삼키고 감정을 추슬렀다.


“애도 아닌데 무슨 마중을 나오세요?” 밝은 웃음으로 어머니와 형을 만나 인사를 나눈 뒤 함께 길을 걸었다. 마중이 길었던 만큼 함께 걷는 길도 길었다.


백마고지역까지 걸어가며 젊은 시절 어머니가 남쪽으로 넘어오실 때의 일을 다시 한 번 여쭤 들었다. 새댁 시절, 일 년 전 서울로 먼저 떠난 남편을 만나기 위해 홀로 남쪽으로 내려오셨던 어머니, 내려오면서 겪었던 무용담 같은 일들, 어떻게 그런 결단을 내렸을까, 어떻게 그런 담력과 용기를 가지셨을까,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면서도 다시 한 번 어머니의 용기와 결단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런 경험을 어머니는 손자 손녀들에게 들려주시고는 한다. 군에 가는 손자에게, 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손자 손녀들에게 당신의 젊을 적 이야기를 들려주며 얼마든지 용기를 내라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고 격려를 하시고는 한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를 걸어온 어머니의 마중과, 생각지 않았던 곳에서 만나 어머니와 함께 걷는 길, 어디 그런 시간 그런 길이 흔할까, 그 하나만으로도 그날의 일정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정이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0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 http://fzari.tistory.com/956

0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0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 http://fzari.com/959

04. 배낭 챙기기 http://fzari.com/960

05. 챙기지 않은 것 http://fzari.com/961

06.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http://fzari.com/964

07.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 http://fzari.com/966

08. 가장 좋은 지도 http://fzari.com/967

09. 길을 잘 일러주는 사람 http://fzari.com/969

10. 사람은 가도 남는 것 http://fzari.com/971

11.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http://fzari.com/973

12. 소똥령 마을 http://fzari.com/974

13. 아, 진부령! http://fzari.com/975

14. 행복한 육군 http://fzari.com/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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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할머니 민박 http://fzari.com/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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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작은 표지판 http://fzari.com/982 

20. 도움 받으시다 http://fzari.com/985 

21. 숨겨두고 싶은 길 http://fzari.com/986 

22. 지팡이와 막대기 http://fzari.com/987 

23. 이 땅 기우소서! http://fzari.com/988 

24. 함께 짐을 진다는 것은 http://fzari.com/990

25. 해안(亥安) http://fzari.com/991 

26. '화'와 '소' http://fzari.tistory.com/992  

27. 팔랑미 풍미식당 http://fzari.com/994 

28. 인민군 발싸개 http://fzari.com/997 

29. 산양의 웃음 http://fzari.tistory.com/998 

30. 인간의 어리석음을 하늘의 자비하심으로 http://fzari.com/999

31. 몰랐던 길 하나 http://fzari.com/1000 

32. 물 없이 먼 길을 간다는 것 http://fzari.tistory.com/1007 

33.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http://fzari.com/1008

34.,거미의 유머 http://fzari.com/1010 

35. 혼자 드린 에배 http://fzari.tistory.com/1011 

36.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들 http://fzari.tistory.com/1013 

37. 오르막과 내리막 http://fzari.com/1015 

38. 선입견 하나를 송구함으로 버리다http://fzari.tistory.com/1016 

39. 그날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 http://fzari.com/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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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9)


그날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


“목사님 어디쯤이신가요? 순교하신 한사연 목사님의 손자 한영순 권사님 댁이 김화 사거립니다. 이 폭염에 혹여 잊어버리실까 봐~”


김화를 지나면서는 함광복 장로님이 꼭 찾아가기를 권했던 한 권사님을 뵙고 가기로 했다. 김화에 도착을 했을 때는 점심 무렵,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함 장로님이 권한 찌개 잘한다는 식당이었을까, 눈에 띄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더니 사람들로 가득했다. 원래 그런지 손님이 많아 그런지 혼자 온 손님은 받지를 않는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와 ‘혼자 가도 받아주는 식당’을 찾았고, 마침 보신탕과 삼계탕을 하는 식당을 찾았다. 삼계탕을 먹으며 맞은편에 앉은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분은 식사를 마치고 먼저 일어서며 내 밥값까지 계산을 했다. 당신과 나이차가 많지 않은 사람이 열하루 길을 걷는 모습을 보며 얻게 된 용기에 대한 답례였지 싶다.


찌개 잘하는 곳이지 싶은 식당에 손님이 많아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점심을 먹은 뒤 한 권사님 댁을 찾아보려 한다고 함 장로님께 문자를 드렸더니 이내 답장이 왔다.


“그 집이 소문이 났나 봐요. 저희가 갈 때도 늘 붐볐습니다. 점심 드시고 한 권사님 만나보세요. 봄에 지나갈 때 행정서사 간판은 내려지고 한영순 문패는 있었으니까 생존해 계신다는 뜻일 텐데~. 그새 혹시?”


식당 주인은 물론 거리에서 만난 몇 몇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한 권사님을 아는 이는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화가 박수근 씨의 결혼 주례를 맡아주시기도 했던, 순교자 한사연 목사님의 손자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난감했다. 마침 연세가 지긋한 분이 오래되었지 싶은 가게를 지키고 있어 여쭸더니 다행히도 집의 방향과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어렵게 찾아간 한영순 권사님 댁. 우편함에는 두 분의 이름이 여전히 적혀 있지만 한권사님은 몇 년 전에 돌아가신 뒤였다.


맞았다. 집 앞 벽에 걸린 우편함에 한영순·이종녀 두 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조심스레 벨을 눌렀다. 벨소리는 들리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다시 눌렀지만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그래도 마찬가지, 안에서는 어떤 인기척도 없었다.


그냥 돌아서기에는 영 아쉬운 걸음, 바로 돌아설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출타했다 돌아오시는 건 아닐까 싶어 현관문 위에 흙으로 지은 제비집도 쳐다보고 길가도 바라보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그러기를 참 잘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집에서 조용히 문이 열렸다. 백발의 할머니가 밖을 내다보시면서 어떻게 왔느냐고 물으신다. 이종녀 할머니 되시느냐 여쭸더니 그렇다고 하신다. 찾아온 이유를 말씀 드렸다.


꼭 찾아뵙기를 원했던 함 장로님의 당부는 물론 오래 전에 있었던 일도 말씀을 드렸다. 단강에서 목회하던 시절, 원주지역 젊은 목회자들과 함께 국내 성지순례 길을 나서 철원, 김화 지역을 방문하여 순교하신 분들의 발자취를 돌아본 적이 있었다. 그 일을 제안한 사람도 안내를 맡은 사람도 모두 함 장로님이었다. 그 때 한영순 권사님을 뵙고 권사님을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일이 있노라고 말씀을 드렸다.


이야기를 들으시던 이종녀 권사님은 밖에 서서 이야기를 하지 말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하셨다. 땀과 먼지에 젖은 허름한 행색, 조심스러웠지만 거듭되는 권유에 신을 벗고 거실로 들어갔다. 잠깐 기도를 드리는 사이, 권사님은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가져다 주셨다.


먼저 한영순 권사님의 근황부터 여쭸더니 이미 돌아가셨다고 했다. 2013년 8월, 83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괜한 걸 여쭤서 죄송해요.” 말씀드리자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시는데 목소리가 더없이 낮고 조용하셨다. 이종녀 권사님은 혼자 살고 계셨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약봉지들, 권사님도 건강이 좋아 보이시지가 않았다.


한영순 권사님의 부인 이종녀 권사님. 말씀을 아끼시는 모습이 오히려 많을 것을 생각하게 했다. 낮고 조용한 목소리에는 이미 많은 사연들이 담겨 있다 싶었다.


권사님께 한사연 목사님과 한영순 권사님에 대해서 기억나는 이야기를 들려 달라 했지만, 권사님은 별 말씀을 안 하셨다. 왜 그랬을까, 모두가 지난 일이라는, 더 이상 순교의 의미도 찾지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세상을 향해 그 소중한 이야기를 그냥 마음에만 담아두시겠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이종녀 권사님은 말씀을 아끼시고, 오래 전 한영순 권사님께 들은 이야기는 희미하고, 책에서 읽은 내용도 가물가물하다. 함광복 장로님이 쓴 《할아버지, 연어를 따라오면 한국입니다》라는 책에는 한사연 목사님과 한영순 권사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날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글로, 12명의 순교자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함 장로님의 글을 찾아 읽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순교자들은 무덤을 남기지 않았다. 그들은 교회도 남기지 않았다. 추가령 열곡대의 바이블루트에서는 12명의 기독교 목회자가 순교했지만 그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이 때문에 DMZ 순교사는 '꾸며낸 얘기'란 비아냥이 늘 뒤따르고 있다.


1950년 6월 24일, 전쟁이 일어나기 하루 전 북한엔 기독교 목사들에 대한 마지막 일대 검거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기독교 지도자들은 대부분 교회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아주 위험한 집단이었다. 우선 우익 엘리트들이 다 월남했는데도 그들은 가지 않았다. 그들은 공산정치를 방해하면서도 주민들의 정신적 지도자 노릇을 하는 자가 많았다. 유사시 그들은 반공전선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었다. 북한은 이 '잠재적 적'을 전쟁을 전개하기 전 대청소할 필요를 느꼈던 것 같았다. 연천 철원 김화 금성 일대에서 목사, 전도사 장로들이 줄줄이 묶여갔다. 그리고 대부분 돌아오지 않았다.


이 사건은 38선 이북에서 일어났고, 전쟁은 공교롭게 그 사건 현장에서 끝났다. 그 자리를 밟고 지금 DMZ가 지나가고 있다. 그때 사건 현장에 있었던 증인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으며, 후세 사람들은 그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없다. 순교 사건은 이렇게 DMZ 속에 묻혀버렸다.


DMZ의 그 사건이 들먹여질 때마다 나는 큰 눈에 우람한 몸집의 노인 한영순씨(韓英珣..철원군 김화읍 학사리)를 생각했다. 노인은 학사 4거리에서 그의 고향 금성 가는 길 쪽으로‘한영순 행정서사’ 간판을 내고 20년 째 '반 대서소, 반 농사 일'을 하고 있다. DMZ 넘어 금성까지는 50리. 그곳은 그의 할아버지 한사연(韓士淵)목사의 금성교회와 노목사의 순교사가 묻혀있는 곳이다.


한 목사는 8.15 해방을 71세에 맞았다. 김화 창도 금성 3교회의 감리사를 맡고 있을 때다. 그가 목회인생을 바쳐 온 장단, 평강, 김화, 삭녕, 김화, 금성, 창도, 회양은 공산당의 수중에 들어갔다. 일제 때 그는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그는 ‘짚신을 신고 성경과 찬송가를 등에 진 해괴한 차림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인상착의를 달고 요시찰 인물로 지목됐었다. 공산당의 세상이 되자 목사는 다시‘모두 나눠먹기 패’(공산주의)를 거부했다. 이번엔 ‘이중생활을 하는 자들의 지도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목사는 월남하기를 종용하는 사람들에게 “나만 살겠다고 교인을 버릴 순 없다”고 거부했다. 일제 수난기를 살아 온 목사의 교육관은 특이했다. 어느 시대이든 농사꾼과 의사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뜻대로 맏아들 문옥, 둘째 명옥 씨는 농사꾼이 됐다. 그리고 셋째 상옥, 막내 병옥 씨는 세브란스를 나와 각각 창도와 통구에서 내과의로 개업해 있었다. 그들도 부친의 뜻에 따라 월남하지 않았다.


1950년 6월 24일 늦은 밤, 38선을 향해 탱크와 대포를 싣고 부산히 내려가던 금강산 전철의 수송작전은 이미 끝났다. 전쟁 전야의 금성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누군가 금성교회 목사관을 두드렸다. 그는 “회의가 있다”며 잠자리에 든 한 목사를 깨워 어디론가 데려갔다. 일요일인 이튿날 금성교회의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


영순 씨는 한목사의 둘째아들인 명옥 씨의 아들. 김화고급중학교에 다니던 영순 씨는 그해 7월말쯤 전선에 동원되기 위해 김화인민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으라는 통지를 받아놓고 있었다. 우연히 김화정치보위부 울타리를 지나가다가 할아버지 한 목사를 만났다. 우람한 체격의 백발노인은 스무 명 남짓 되는 사람들과 함께 동아줄에 묶여 끌려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영순아, 네가 증인이다. 증인이 돼야한다!”


한 권사님 댁 마당에 핀 밤꽃. 순교의 향기를 밤꽃에 비길까만 점점 우리는 그 향기를 잊어가고 있지 싶다.


한 목사의 가계는 철저히 유린됐다. 맏아들은 김화 생창굴 속에서 폭사 당했으며, 의사인 셋째 상옥은 원산으로 끌려갔다. 역시 의사인 막내는 김화 쑥고개 칠성정에서 총살당했다. 해주교회 사모로 시집간 외동딸 만옥은 행방불명됐다. 둘째아들 명옥만 월남했다.


전쟁이 끝난 후 금성이 고향인 사람들의 연말모임에서 영순 씨는 할아버지의 소식을 들었다. 신시옥(작고)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한 목사는 원산 앞바다에서 4명씩 철사줄에 묶여 수장됐다”고 일러줬다. 신 씨는 그 때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사람이며 그는 그날을 10월 3일로 기억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지난 94년 여름 북한의 오성산이 내려다보고 있는 구김화읍 읍내리 민통선 북방의 한 벌판에서 들었다. 영순 씨는 “여기가 보위부자리, 저기가 내가 막내 작은아버지 시신을 묻어 놓고 표식으로 구두 두 짝을 올려놓았던 그 밭…” 하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 그는 “‘네가 증인이 되라’고 한 할아버지의 유언이 가슴에 박힌 커다란 가시 같다”고 말했다. “기막힌 이 사연을 글로 옮길 재주도 없고, 이 사연을 귀담아 들어주는 이도 없다”며 그때 노인은 소년처럼 울었다.


6년이 지난 최근 한영순 씨를 다시 만났다. 그는 더 늙어 70세 노인이 돼 있었다. 2년 전 병을 얻어 민통선 출입영농도 일부는 포기하고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는 내게 증인이 되라고 하셨는데, 나는 한 순교자의 유일한 증인이면서도 그 사실을 증거하지 못하고 있다”는 그 말을 그 때처럼 다시 했다.


그의 가슴엔 아직도 그 가시가 박혀 있었다. 변한 건 어눌해진 말투뿐이었다.


12 순교자 가운데 유일하게 서기훈 목사만 순교비가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 장흥교회 뒤뜰에 세워져 그의 순교사가 전해지고 있다. 장흥교회는 1920년 장방산 아래 설립된 이래 80년 째 그 자리에서 서있다. 그리고 이웃 한탄강 언덕의 대한수도원은 장흥교회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낱낱이 지켜봤던 산 증인이다. 그나마 서목사의 순교사가 정리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한사연 목사처럼 나머지 11사람은 지금 어느 후손 또는 어느 성도의 가슴에 묻혀 파낼 수 없는 가시가 된 채 DMZ 벌판을 떠돌고 있을 것이다.


바이블루트의 사건에 대한 유일한 기록은 《감리교회 서부연회 수난사》(윤춘병 저)에 담겨 있다. 그러나 이 기록은 빈칸이 너무 많다. 방승학 목사는 그가 시무했던 교회를 밝히지 못했으며 월정교회에 지석교회에 시무하다 피랍된 김유해 목사와 월정교회 이운성 전도사는 납치일을, 석왕사교회에서 순교한 김축수 목사는 순교일을 적지 못했다. 유득신 장종식 목사는 시무교회도 납치 또는 순교일을 적지 못했다. 이 기록의 내역 란은 더욱 불충분하다. “그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다 순교했느냐?”는 질문에 충분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 기록을 꽤 오래 전에 입수했다. 그리고 원로학자가 못 다 채운 빈칸이 어떻게 채워지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누군가 순교자들의 자취를 찾아 DMZ 벌판을 구도자처럼 걷고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들이 한 발짝, 한 발짝씩 DMZ에 다가서며 십자가를 세우던 젊은 목회자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일에 관심이 없거나 무지했다. 어떤 이는 “내가 맡은 사명이 아니라”고 끝까지 얘기를 듣지 않았으며, 어떤 이는 “함부로 순교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충고했다.


노인들에겐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가는 것 같았다. “기억을 더듬어 한 번 자세히 얘기해 주겠다”고 하던 노 장로가 문득 생각나 그를 찾아갔을 때 이미 그는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또 다른 이는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바이블루트의 그 사건은 이제 더 먼 옛날 얘기가 돼 있었고, 보나마나 "꾸며낸 얘기"라고 비아냥거릴 사람들의 비웃음은 더 커질 것이다.


그런데도 그 '빈칸'을 채울 그를 아직 나는 만나지 못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0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 http://fzari.tistory.com/956

0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0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 http://fzari.com/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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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화'와 '소' http://fzari.tistory.com/992  

27. 팔랑미 풍미식당 http://fzari.com/994 

28. 인민군 발싸개 http://fzari.com/997 

29. 산양의 웃음 http://fzari.tistory.com/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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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영의 구약 지혜서 산책(11)


“모든 책들 가운데 가장 진실한 책”


나는 일찍이 성경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했었다. 성경을 자세히 읽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맛보기 시작할 때에야 비로소 ‘언어로 된 성전’, 곧 성경전서의 ‘아름다움’이 보였다. 기독교인의 삶의 표준인 성경 말씀을 통해 ‘진리’의 참됨(진)과 ‘착함’(선)을 배웠지만, ‘아름다움’(미)은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뒤늦게 깨달은 것 하나, ‘진리’는 아름답다. 서구 철학이 말한 진선미(眞善美)의 구도가 인간의 지성, 의지, 감정(심미성)의 조화를 목표한 것이라서 이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시의 문장으로 지어져 예술성을 확장시키는 구약의 지혜서는 간결미, 상징적인 언어의 모호함과 함축미의 결정체다. 글의 형식적인 아름다움과 현실의 사건들이 어울리는 그곳에 진리의 현실성과 예술성이 교차한다.


《모비딕》의 작가 허멘 멜빌은 전도서를 “모든 책들 가운데 가장 진실한 책”이라고 극찬했다. 세대가 가고 오며 위대한 작가들은 성경의 진리와 그 진리를 담아낸 언어로 지어진 성전의 문학적인 탁월성과 아름다움을 말했지만, 오히려 구도자의 삶을 살아갈 신앙인들은 관심 없다. 무관심이 무지를 낳은 것일까. 필요한 성경구절을 뽑아 ‘주문’처럼 외우며 이용하는 것은 능숙하다. 그러나 총 66권 성경전서의 한권 한권의 영감 받은 말씀이 왜 그 순서에 자리 잡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는 왜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어떤 것은 명확한데, 왜 어떤 것은 모호하여 말의 숲을 헤매게 하는지 질문하지 않았다. 수도 없이 궁금했을 법한 이야기들이 거룩한 말씀 안에 있었지만,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질문은 의심을 만들고, 의심은 불신을 낳을 것이라는 자발적인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신앙공동체가 가하는 무언의 억압 때문이었을까? 각설하고 왜 전도서는 진실하고 아름다운가? 나는 전도서를 대표하는 말, ‘헤벨’(한숨, 호흡, 헛됨, 허무, 덧없음, 무의미, 부조리, 모순)에서 찾았다.



코헬렛(전도자)은 갖가지 인생살이의 현실, 역설과 모순, 온갖 부조리를 한 마디로 발설했다. 모든 것은 ‘헤벨’이다(1:2). 단 한가지로 응축시켜 종합하기 어려운 총천연색의 현실은 어제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어쩌다 코헬렛은 의미 있는 것을 다루지 않고 그 반대의 부조리하고 모순된 현실들을 말해야 했을까. 인생의 변덕스러움과 부조리를 전부 이해할 수 없어서 지혜 선생 코헬렛은(12:9-12) 해 아래 모든 것은 ‘모순덩어리’(1:2; 12:8; “헛되고 헛되다”, 개역개정)라고 했다. 이 때문에 코헬렛의 지혜 말씀은 질문을 반기지 않는 종래의 신학과 신앙에 익숙해진 우리를 낯선 해석의 장으로 데려간다.


우리는 자주 ‘전제된’ 신앙과 신학의 울타리에서 질문하기를 꺼렸지만, 코헬렛은 인생의 너절함과 모순적인 현실을 묻고 발설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서 그는 허점투성이일 수밖에 없는 내 인생에 깊이 들어와 삶은 ‘덧없으니’(헤벨) 먹고, 마시고, 노동하며 즐거워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거듭거듭 당부한다(2:24-26; 3:12-13, 21-22; 5:18-20; 8:15; 9:7-10; 11:7-10). 이것은 삶의 즐거움으로의 부름이요, 때때로 의미 없고 너절한 일상의 반복도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는 역설이다. 코헬렛은 대중에게 환호 받는 위대한 꿈의 성취가 아니라 하루하루 먹고 마시는 일상을 가치 있게 여겼다. 삶의 위대함은 도달하기 어려운 무엇을 성취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소박하고 단순한 삶에 담백하게 찾아든 기쁨 때문이리라.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외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다. 그러나 극도로 심화된 빈부 격차와 특권화 된 계층을 위해 작동하는 사회구조는 많은 이들을 불안과 박탈감으로 밀어 넣는다. 이럴 때 코헬렛이 발설한 모든 것이 ‘모순덩어리’라는 ‘헤벨’판단은 가장 적실성 있는 시대의 외침이다. 이는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그 어떤 책보다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이다. ‘헤벨’이 발설되는 곳에서, 그러면 진짜 의미 있는 삶은 무엇인가를 깊이 성찰하도록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하여 전도서는 모든 것을 다 잃고 폐허가 된 자리에서도 완고한 현실에 직면해야 할 근거와 가치를 마련해 준다.


전도서는 현실의 부조리에 회피와 방관의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서, 지배적 담론에서 벗어나 대안적인 상상을 하도록 끌어들인다. 때문에 자본과 성공을 위대한 성취로 받드는 세상에서 매일매일 사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믿는다면, 거기에 생명이 솟는다. 거기에 설령 슬픔과 비애가 머문다할지라도 삶의 진실을 배울 기회가 허락된다. 성취감 같은 것은 없어도 괜찮다. 욕망의 성취가 행복 자체가 될 수는 없지 않는가. 성취감은 잠깐이다. 도리어 ‘허무’(헤벨)가 엄습해 오기도 하니까. 모순, 허무, 부조리의 세상에서 내 안의 자유와 진실함을 끌어내는 순간 절망은 사라지고 삶의 기쁨이 샘솟는다.


그러하여 세상 모든 것을 ‘모순덩어리’(1:2; 12:8, ‘하벨 하발림’)라고 표현한 한 마디 코헬렛의 말(1:1). 함축의 극치를 보여준 이 말이 가장 아름답고 진실한 언어로 내게 왔다. 지나친 확신과 흥분에 찬 말이 아니어서, 위대함을 자랑하는 말이 아니어서 진실하다. 의심하고 질문하게 하는 말이어서,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아 현재의 ‘순간’을 마음껏 누리라는 말이어서, 그리고 모호해서 아름답다. 해 아래 모든 일은 ‘수수께끼’(헤벨)어서 인간에게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솔직히 말하니 얼마나 진실한가. 이보다 더 진실할 수 있을까.


늦가을, 독서와 사색을 위해 좋은 계절이다. “모든 책들 가운데 가장 진실한 책” 전도서에서 ‘모순덩어리’ 인생의 묵직한 아름다움을 느껴보는 것은 어떤가.


김순영/ 《어찌하여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저자, 대학원과 아카데미에서 구약 지혜서를 강의하며 신학과 현실의 밀착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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