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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22

당신이 중단시키기 전까지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93) 당신이 중단시키기 전까지는 뛰어난 이야기꾼 엔소니 드 멜로가 들려주는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어느 신부가 한 부인이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빈 성당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한 시간이 가고 두 시간이 가도 부인은 아직도 거기 그대로 앉아 있었다. 신부는 그 부인이 절망에 빠진 영혼이라고 판단하고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다가가서 말했다. 사진/송진규 “제가 어떻게든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오, 감사합니다, 신부님.” 하고 부인은 말했다. “필요한 도움을 모두 받고 있었어요.” 그 말 아래, 두어 줄 떨어진 곳에, 부인이 한 한 마디 말이 더 적혀 있었다. “당신이 중단시키기 전까지는!” 목사인 내가 하는 일이, 목사인 내가 하는 설교가 제발 그런 것이 아니기를! 2019. 4. 2.
거기와 여기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92) 거기와 여기 참 멀리 갔구나 싶어도 거기 있고 참 멀리 왔구나 싶어도 여기 있다 시인 이대흠의 ‘천관’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강으로 간 새들이 강을 물고 돌아오는 저물녘에 차를 마시며, 막 돋아난 개밥바라기를 보며 별의 뒤편 그늘을 생각하는 동안, 노을은 바위에 들고 바위는 노을을 새기고, 오랜만에 바위와 놀빛처럼 마주 앉은 그대와 나는 말이 없고, 먼 데 갔다 온 새들이 어둠에 덧칠될 때, 시인은 문득 거기와 여기를 생각한다. 멀리 갔구나 싶어도 거기 있고, 멀리 왔구나 싶어도 여기 있는, 그 무엇으로도 지워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거리와 경계가 우리에겐 있다. 2019.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