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65)

 

빛을 비춘다는 것

 

예루살렘아, 일어나서 빛을 비추어라. 구원의 빛이 너에게 비치었으며, 주님의 영광이 아침 해처럼 너의 위에 떠올랐다. 어둠이 땅을 덮으며, 짙은 어둠이 민족들을 덮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너의 위에는 주님께서 아침 해처럼 떠오르시며, 그의 영광이 너의 위에 나타날 것이다.(이사야 60:1-2)

 

오랜 포로생활 끝에 벅찬 설렘을 안고 예루살렘에 귀환한 이들은 자기들 앞에 전개되는 현실의 어둠 앞에서 깊이 좌절했다. 폐허로 변한 도성을 보며 그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을 느꼈다. 무너진 것은 건물만이 아니었다. 살림살이가 워낙 힘겹다 보니 인심은 흉흉해지고, 서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가파롭기 이를 데 없었다.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 들려온 말씀이 있었다. 

 

“예루살렘아, 일어나서 빛을 비추어라. 구원의 빛이 너에게 비치었으며, 주님의 영광이 아침 해처럼 너의 위에 떠올랐다.”(이사야 60:1) 

 

낙심한 이들에게 들려온 이 두 마디는 강력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일어나라’, ‘빛을 비추어라.’ 이 말은 잊고 있었던 소명을 상기시키는 말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창세기 12:3b)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이들의 소명인 동시에 그들을 절망의 파도에 떠밀리지 않도록 지켜주는 닻이었다. 모두가 어둠에 익숙해져서 사람들이 더 이상 빛을 갈망하지 않을 때, 믿음의 사람들은 어둠을 깨치고 도래하는 빛을 본다. 

 

 

 

 

“어둠이 땅을 덮으며, 짙은 어둠이 민족들을 덮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너의 위에는 주님께서 아침 해처럼 떠오르시며, 그의 영광이 너의 위에 나타날 것이다.”(이사야 60:2)

 

애굽 땅에 내린 아홉 번째 재앙은 ‘흑암’이었다. 사람들은 서로 볼 수도 없었고, 제자리를 뜰 수도 없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이 그 땅을 뒤덮었다. 태양신의 아들을 자처하는 바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는 놀라운 말을 듣는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사는 곳에서는 어디에나 빛이 있었다.”(출애굽기 11:23b) 이 빛은 혼돈과 흑암과 공허를 뚫고 나왔던 태초의 그 빛이다.

 

강상중 교수는 신경증을 앓던 아들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참극과 동일본 대지진으로 한 순간에 2만 명 가까운 이들이 죽은 사건을 연이어 겪으며 “이런 비참을 겪고도, 그래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라는 의문에 사로잡힌다. 깊은 성찰 끝에 그는 독자들에게 이런 마음을 잊지 말자고 제안한다.

 

“좋은 미래를 추구하기보다는 좋은 과거를 축적해 가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기가 죽을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도 괜찮다는 것. 지금이 괴로워 견딜 수 없어도, 시시한 인생이라고 생각되어도, 마침내 인생이 끝나는 1초 전까지 좋은 인생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것. 특별히 적극적인 일을 할 수 없어도, 특별히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없어도, 지금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

 

생명에 대한 이런 검질긴 긍정이야말로 세상을 밝히는 빛이 아닐까? 비록 미광에 지나지 않는다 하여도 그 빛은 어둠의 세월에 지친 이들에게 새벽이 다가오고 있음을 일깨우는 징조가 될 테니까 말이다.

 

*기도*

 

하나님, 매 순간 밝고 명랑하게 살고 싶지만 현실은 우리 얼굴에서 빛을 앗아가곤 합니다. 어둠에 익숙해진 우리 영혼은 점점 파리하게 변하고, 무뚝뚝하고 성마른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곤 합니다. 친절한 사람,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주님이 주신 생명을 헛되이 허비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하늘빛을 바라보게 하시고, 흔들리지 않는 발걸음으로 진리를 향해 나아가게 해주십시오. 그런 우리의 삶이 누군가의 앞길을 밝히는 빛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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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24)

 

사랑 안에 있으면 
   

<바이올린과 순례자>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가문비나무의 노래 두 번째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책이다.

 

마틴 슐레스케가 속 깊은 대화를 나무와 나누며 나무를 깎아 바이올린을 만들다가 자신이 일하는 모습을 눈여겨보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잠깐 손을 멈추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일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성급하거나 서두르지 않는 그의 속도 때문일까, 책도 천천히 읽게 된다.

 

 

 

마음에 닿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데, 또 하나의 줄을 긋고 싶은 문장이 있었다. 마틴 슐레스케가 나무와 연장과 악기와 노동 등 일상의 모든 것들과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


“사랑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말을 걸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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