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150)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이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신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이 내 생명의 피난처이신데,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랴? 나의 대적자들, 나의 원수들, 저 악한 자들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다가왔다가 비틀거리며 넘어졌구나. 군대가 나를 치려고 에워싸도, 나는 무섭지 않네. 용사들이 나를 공격하려고 일어날지라도, 나는 하나님만 의지하려네. 주님, 나에게 단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나는 오직 그 하나만 구하겠습니다. 그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면서 주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는 것과, 성전에서 주님과 의논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시편 27:1-4)

 

목숨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어려움을 겪는다. 잘 해결해 나갈 때도 있지만 어려움에 치여 헐떡일 때도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스멀스멀 우리 마음에 기어들 때도 있고, 구체적인 공포가 우리를 사로잡을 때도 있다. 어떤 경우든 두려움은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고 이성적 사유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흔들리는 우리 마음을 어떻게 붙들어야 할까? 음악을 듣거나, 운동을 하거나, 잠을 청하거나, 왁자지껄한 소음 속에 자기를 던지거나, 술의 힘을 빌리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시인은 그 마음을 하나님 앞으로 데려간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신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이 내 생명의 피난처이신데,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랴?”(시편 27:1)

 

시인은 두려움으로 무거워진 마음을 하나님께 들어 올린다. 그러자 은총의 날개 아래서 살아온 지난날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주님은 인생의 어둔 밤을 만난 시인의 등불이셨다. 그의 생명이 경각에 달했을 때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피난처였다. 잡아먹을 듯 달려들던 적들은 마치 제 발에 걸린 듯 비틀거리다 넘어졌다. 여전히 어려운 현실은 남아 있지만, 회복된 기억은 시인의 가슴에 든든함을 심어준다.

 

 

 

 

절망의 어둠이 우리를 사로잡으려 할 때 하나님은 우리 속에 숨결을 불어넣어 절망과 무기력을 극복하게 하신다. 이런 놀라운 일을 경험했기에 시인은 노래한다.

 

“군대가 나를 치려고 에워싸도, 나는 무섭지 않네. 용사들이 나를 공격하려고 일어날지라도, 나는 하나님만 의지하려네.”(시편 27:3)

 

하나님의 은총에 자기를 온전히 맡긴 사람의 고백이다.

 

길들인 독수리와 함께 패러글라이딩(paragliding)을 하는 사람을 보았다. 날개를 편 채 유영하는 독수리와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이 똑같은 바람을 타고 날았다. 그 모습이 경이로웠다. 신앙인이란 하나님의 바람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 바람은 지친 나그네의 시린 마음을 어루만지는 산들바람일 때도 있지만, 장애물을 다 날려버리는 회오리바람일 때도 있다. 하나님의 영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새로운 희망의 싹을 일깨우는 봄바람일 때도 있지만, 불의한 세상과 권력을 날려버리는 태풍일 때도 있다.

 

시인은 자기에게 단 하나의 소원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의 소원이란 그 소원 이루고 나면 죽어도 좋은 것일 것이다.

 

“그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면서 주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는 것과, 성전에서 주님과 의논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시편 27:4)

 

하나님이라는 중심에 자신을 비끄러맨 채 살고 싶은 것이다. 마음의 중심이 하나인 삶은 직립한 삶이다. 그는 허둥거리지 않는다.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당당한 이 한 마디가 우리를 붙들어준다.

 

*기도*

하나님, 힘들 때나 순탄할 때나 주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사는 새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주님의 뜻에 기꺼이 순복할 마음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무지의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우리를 붙드시고, 하늘빛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시오. 흐르는 모래에 갇히듯 세상일에 속절없이 빠져들 때 우리의 손을 잡아 건져주십시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두려워하는 영을 거두시고, 당당하게 주님의 뜻을 받드는 담대한 믿음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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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10)

 

 꽃의 주인

 

주인집의 정원을 돌보는 정원사가 있었다. 그는 많은 나무와 꽃을 가꾸었는데, 그 중에서도  유난히 그가 아끼는 꽃이 있었다. 얼마나 꽃이 아름다운지 일을 하다가도 그 꽃을 바라보면 피곤이 사라지곤 했다.

 

 


 

 

어느 날 정원을 돌보던 그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누가 꺾었는지 아끼던 꽃이 보이지를 않았던 것이었다. 꺾인 꽃은 주인집 거실 꽃병에 꽂혀 있었다.


정원사는 화가 났다. 왜 꽃을 꺾었느냐며 주인에게 화를 냈다. 그러자 주인은 이상하다는 듯이 정원사에게 말했다.


“내가 정원을 돌아보다보니 눈에 띄게 아름다운 꽃이 있어 꺾어왔네. 뭐가 잘못됐나?”

 

정원사는 꽃을 사랑했지만, 꽃의 주인은 아니었다. 우리 가진 모든 것이 무엇 다를까, 다만 사랑할 뿐 주인은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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