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처럼 바람처럼

  •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용기라는 것이 내안에 심령으로 내가 가진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무엇에 홀린다는 말이 있는데...홀려야 될 것 같아요.^.^

    이진구 2019.09.05 08:54
  •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한희철 2019.09.06 06:46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8)

 

바위처럼 바람처럼

 

송기득 교수님이 이 땅을 떠났다. 냉천동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시절, 송 교수님으로부터 <인간학>을 배웠다. 신학을 공부하며 함께 배우는 과목 중에 <인간학>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안도감을 주었고,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교수님께 들었던 강의내용을 지금껏 기억하는 건 무리지만 인간답게 사는 것이 신앙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인간다움이 신앙을 담아내는 온전한 그릇임을 진득하게 배운 시간이었다. 얼굴의 이목구비가 뚜렷했던 만큼 선이 굵은 삶을 살았던 교수님으로 남아 있다.

 

 

 

 

 

강의 중에 들은 이야기가 있다. 교수님의 젊은 시절 추운 겨울 무일푼으로 무작정 길을 떠난 일이 있고, 거지꼴을 하고 떠돌다가 비구니들만 거하는 사찰에서 머문 적이 있는데, 하룻밤을 묵고 떠나려는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을 하느냐며 자기도 데리고 가 달라고 청한 비구니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야기에 흠뻑 빠진 우리들은 혹시 그 비구니가 지금의 사모님이 아닌지 짓궂은 질문을 하며 이어질 이야기를 궁금해 했는데 때마침 강의를 마치는 시간, 당신에게 커피를 사는 학생에게 다음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강의를 마쳤다. 하지만 나는 커피를 살 돈보다도 교수님과 마주앉을 용기가 없어 묻지를 못했다. 왜 그런 용기가 없었을까,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아있는 일이다.

 

교리의 틀을 깨고 나온 민낯의 예수, 많은 경우 우리는 그 예수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할지 몰라 두려워 또 다시 예수를 교리 속에 가두고는 한다. 교수님이 전해준 가르침을 생각하며 얼마 전에 구한 <탈신학 에세이>를 정독해야겠다. 바위처럼 바람처럼 묵묵히 자유롭게 인간다움의 길을 걸어간 한 사람의 뒷모습에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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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를 청하다

  • 생기, 용기, 원기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겠죠.!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09.05 09:06

김기석의 새로봄(178)

 

생기를 청하다

 

그때에 그가 내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생기에게 대언하여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렇게 일러라. ‘나 주 하나님이 너에게 말한다. 너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불어와서 이 살해당한 사람들에게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 그래서 내가 명을 받은 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 속으로 들어갔고, 그래서 그들이 곧 살아나 제 발로 일어나서 서는데, 엄청나게 큰 군대였다.(에스겔 37:9-10)

 

“고마운 사랑아, 샘솟아 올라라/이 가슴 터지며 넘쳐나 흘러라.”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할 때면 가끔 떠오르는 노래이다. 늦봄 문익환 목사님이 가사를 쓴 이 노래는 이렇게 계속된다. “뜨거운 사랑아 치솟아 올라라 누더기 인생을 불질러 버려라/바람아 바람아 불어 오너라 난 너울너울 춤추네 이 얼음 녹이며//사랑은 고마워 사랑은 뜨거워 쓰리고 아파라 피멍든 사랑아/살갗이 찢기어 뼈마디 부서져 이 땅을 물들인 물들인 사랑아.”

 

우리는 이 마음을 잃어버렸다. 자기 이익에 발밭은 사람들로 인해 이 땅이 보이지 않는 전쟁터로 변하고, 황폐하게 변하고, 음란하게 변하고, 이웃들의 피울음소리가 들려와도, 내 한 몸 간수하기도 어렵다며 나 몰라라 하고 살아간다. 영혼을 잃어버린 좀비처럼 세상을 떠돈다. 행복을 구하지만 늘 불만족을 수확하며 산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에스겔이 보았던 해골의 골짜기와 다를 바 없다. 풍요를 약속하는 거짓 신들을 따라가느라 하나님을 배신하고, 자기의 사적인 욕망을 이루기 위해 마땅히 돌보아야 할 이웃들을 외면했던 이스라엘은 결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말았다. 일부는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일부는 전란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하고, 일부는 옛 땅에 남아 있었다. 그들은 멸망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사분오열되었다. 야훼 하나님이 바벨론의 신인 마르둑에게 패배한 것처럼 보였기에 희망도 잃어버렸다. 절망이란 전망이 없는 것(신영복)이라지 않던가.

 

 

 

 

 

모두가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할 때 예언자 에스겔은 놀라운 비전을 본다. 주님의 영이 그를 데려간 골짜기에는 메마른 뼈들만 가득했다. 참담한 광경에 말문이 막힌 그에게 하나님이 물으셨다. “사람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에스겔은 “주 하나님,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하고 대답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다시 살아나게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에스겔의 가슴에 전율이 흘렀을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사로잡힌 그가 목이 터져라 외치는 외침이 마른 뼈들 위에 이슬처럼 내려앉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다시 한 번 살아보자고, 죽음의 그늘을 떨치고 한 번 살아보자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뼈들이 서로 이어지고, 뼈들 위에 힘줄이 뻗치고, 살이 오르고, 그 위에 살갗이 덮였다.

 

하지만 아직 그들은 온전히 일어서지 못했다. 그때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생기에게 대언하라고 명하셨다. 그가 “너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불어와서 이 살해당한 사람들에게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 하고 외치자 그들이 살아나 제 발로 일어나서 엄청나게 큰 군대를 이루었다. 아담의 코에 불어넣어졌던 그 바람, 낙심했던 제자들을 휘감았던 그 바람이 불어오자 모든 것이 변했다. 그들은 더 이상 무덤 속에 갇힌 무기력한 시체가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꿈에 사로잡힌 하늘 군대였다. 이 바람이 이 각박한 세상에 불어오기를 고대한다.

 

*기도

 

하나님, 바람 빠진 타이어로는 먼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맥이 빠진 채 욕망의 저잣거리를 방황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마른 뼈들만 버성기는 것 같은 현실이기에 우리는 외로움의 수인이 되었습니다. 다른 이들과 함께 멋진 꿈을 꾸는 일에 무능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해골 골짜기에 불어왔던 생기를 오늘 우리에게도 보내주십시오. 생기 충만한 이들이 어깨를 겯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한 걸음씩 전진하게 해주십시오. 그 목표에 이를 때까지 지치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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