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세번

  • 통곡할 수 있음이,
    자신을 돌아보며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속울음을 우는 것 말고는, 사실은 그것 말고는 이 세대를 지나갈 수 없다는 걸. 오늘도 그런 무력감에 감싸인 채 도심 숲을 걸었답니다.

    신동숙 2020.01.12 03:16
    • 그래도 그 눈물이 베드로를 살렸다 싶습니다.
      우리는 그 눈물을 잃어버린 것이고요.

      한희철 2020.01.12 19:18 DEL
  • 읽고보니 그렇네요. 참말로
    감사합니다

    이진구 2020.01.12 06:55
    • 한결같은 걸음,
      반갑습니다.

      한희철 2020.01.12 19:18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74)

 

삼세번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다고 장담을 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는 더욱 놀랄 만한 말을 덧붙인다.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마가복음 14:30)


구체적인 숫자까지를 밝히신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 부인한다. 마태복음에 따르면(26:69~75) 베드로는 그냥 세 번을 부인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예수와 함께 있었다는 여종의 말 앞에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부인을 한다. 표정관리를 하며 시치미를 뚝 떼는 정도였다.

 

그러나 두 번째는 달랐다. 두 번째 부인을 할 때는 맹세를 하고 부인을 한다. 우리식으로 하면 이랬을까? 만약 그 말이 맞는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내 성을 간다고 말이다. 자기 말이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하여 맹세까지 했다.

 

세 번째는 더하다. 이번에는 저주하며 맹세를 한다. 저주 속에는 예수를 향한 욕이 담기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했던 그 입으로(마태복음 16:16) 더러운 욕을 쏟아놓지 않았을까? 내가 정말로 예수를 안다면 천벌을 받아도 좋다고 하지 않았을까?

 

‘3’은 단순히 숫자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성경에서는 ‘완전’을 의미하는 수다. 세 번 부인한다는 것은 부인하는 횟수가 세 번이라는 뜻만은 아니었다. 너는 나를 확실하게 부인할 것이다, 어쩌다가 실수로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부인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었고, 설마 그럴 일은 없을 거라 했던 장담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정말로 완전하게 부인을 한 것이었다.

 

 

 

베드로는 제대로 넘어졌다. 때마침 울어대는 새벽닭의 울음소리, 순간 자신의 장담이 아무짝에도 소용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베드로는 너무나도 뻔한 자신의 초라함과 알량함을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 통곡을 한다.

 

우리는 그런 베드로를 안쓰럽게 여긴다. 혀를 차며 동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베드로와 다를 것이 없다. 베드로도 그랬는데, 하물며 우리들일까! 베드로와 우리가 다른 점이 있다면 삼세번의 부인이 아니다. 맹세와 저주를 동반한 부인이 아니다. 그런 일은 피차 다를 것이 없다.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통곡이다. 그래도 베드로는 새벽닭울음소리를 들었고, 그 소리를 듣고는 밖으로 나가 심히 통곡을 했다. 그 점에서 우리는 베드로와 다르다. 새벽이 되어 닭이 우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 아니냐며 새벽닭 울음소리를 무시하기도 하고, 요즘 새벽에 우는 닭이 어디 있느냐며 아예 새벽닭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기도 한다. 베드로와 우리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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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다, 다

  • 참으로 몰랐던 부분을 콕 알려주시네요.. 무심코 넘겼던 단어 '다'
    감사합니다.

    이진구 2020.01.08 15:22
    • 그랬다면 저도 좋습니다.

      한희철 2020.01.09 09:12 DEL
  • 아멘. "결국 이루어지는 것은 주의 말씀이다."
    태양처럼 환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신동숙 2020.01.09 08:00
    • 그 부분 앞에서 저도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한희철 2020.01.09 09:13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73)

 

 다, 다, 다

 

베드로의 부인과 예수의 붙잡힘이 함께 기록되어 있는 마가복음 14장 27~50절 안에는 같은 단어 하나가 반복된다. ‘다’라는 말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27절)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한다.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29절)


닭 두 번 울기 전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말 앞에 베드로는 힘있게 말한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31절)
그러자 다른 제자들도 같은 말을 한다. 모든 제자들이.

 

 

 

굳이 택하라면 베드로와 제자들의 말을 인정하고 싶다. 그래도 명색이 제자인데, 어찌 스승을 버리겠는가? 다른 이들은 다 버려도 어떻게 주님을 버릴 수가 있겠는가? 설령 주와 함께 죽으면 죽었지 주를 부인하지는 않겠다는 말은 결코 허언이나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진심이었고, 확신에 찬 말이었을 것이다. 마음은 안 그런데 말만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찌 주님을 버릴 수 있을까, 믿음이 약한 우리라도 얼마든지 그랬을 것이다. 아무래도 예수님이 제자들을 너무 못 믿고 있거나, 십자가를 앞두고는 마음이 약해지신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잠시 뒤, 또 한 번 ‘다’라는 말이 등장한다. 제자 중 하나인 유다의 배반으로 예수께서 붙잡히신 뒤의 일이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50절)

 

버리지 않겠다고 다 말했지만, 결국은 다 버리고 도망쳤다. 복음서 저자는 이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장면을 외면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하고 있다. 다 장담했는데, 다 도망쳤다고.

 

제자들은 자신의 마음만 믿었다. 하지만 예수는 말씀을 통해 상황을 바라본다.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했던 스가랴13:7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다, 다, 다라는 말이 전해주는 가르침은 자명하다. 아무리 확신에 찬 말이라 할지라도 이루어지는 것은 내 말이 아니다. 아무리 믿어지지 않는다 하여도 결국 이루어지는 것은 주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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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가장 많은 곳

  • ^^ 교회를 다니는 분들에겐 교회가 되지만,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그런 것 같습니다. 침묵을 미덕으로 삼고 수행 정진하는 수도처가 아니고서는요.

    "말 대신 삶으로 우리의 믿음을 살아낼 수 있다면."
    이 말 앞에 작아지고 부끄러워집니다.

    신동숙 2020.01.07 09:10
    • 사람들의 모임에 말이 없을 순 없지만, 그래도 신앙공동체는 뭔가 구별되야 하지 않을까 싶어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한희철 2020.01.09 09:11 DEL
  • 감사합니다.

    이진구 2020.01.07 10:25
    • 반갑습니다.

      한희철 2020.01.09 09:11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72)

 

말이 가장 많은 곳

 

말에 관한 글을 쓰다가 문득 지난 시간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우리말에 말은 ‘말’(言)이라는 뜻도 있고, 말(馬)이라는 뜻도 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은 그래서 더욱 재미를 더한다. ‘말’(言)은 말(馬)처럼 발이 없지만 천리를 가니, 애써 달려야 하는 말(馬)로서는 부러워할 일일지도 모른다.

 

발 없는 말(言)인데도 속도가 있다. 어떤 말은 빠르고 어떤 말은 느리다. ‘나쁜 소문은 날아가고, 좋은 소문은 기어간다.’는 속담이 괜히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래된 경험이 쌓이고 쌓였을 것이다.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나쁜 소문은 더 빨리 번지고 좋은 소문은 더디 번진다니, 그 또한 신기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이태 전 켄터키 주 렉싱턴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토머스 머튼이 수도자로 지냈던 겟세마네 수도원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사방으로 광활한 들이 펼쳐져 있었고, 들판에서는 많은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말이 참 많다고 하자 운전하는 목사님이 말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국왕실의 말들도 대개는 켄터키 주에서 돌보고 공급한다고 했다. 이야기 끝에 덧붙인 말이 있었다.


“아마도 세상에서 말들이 가장 많은 곳이 켄터키 주일 거예요.”

 

가까운 지인들, 그래서 가볍게 농을 했다.


“그보다 더 말이 많은 곳이 있어요.”


차에 탔던 이들이 관심을 보이며 어디냐고 물었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교회요.”


모두가 유쾌하게 웃었지만, 마음까지 유쾌했던 것이 아니었다. 우린 언제나 말 대신 삶으로 우리의 믿음을 살아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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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족지유(吾足知唯)

  • 많은 사색을 불러 일으키는 글그림, 그림글입니다.

    신동숙 2020.01.06 08:48
    • 그렇지요,
      글과 그림의 재미난 만남이다 싶습니다.

      한희철 2020.01.09 09:07 DEL
  • 감사합니다.

    저도 아버지께 써달라고 해야겠는데요.

    이진구 2020.01.06 09:50
  • 목사님 오족지유라고 하나요? 오유지족이라고 읽나요? 인터넷에서는 오유지족이라고 나오는데...

    이진구 2020.01.06 15:37
    • 당연히 오족지유가 맞겠다 싶습니다.
      '오직 유'가 말이지요.

      한희철 2020.01.09 09:09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71)

 

오족지유(吾足知唯)

 

지난번 말씀축제에 강사로 다녀간 송대선 목사가 본인이 쓴 글씨를 보내왔다. ‘吾足知唯’라는 글도 그 중 하나였다. 대화중 나눴던 말을 기억하고 직접 글씨를 써서 보내준 것이니, 따뜻한 기억이 고마웠다.

 

 

 

가만 보니 글씨가 재미있다. 가운데에 네모 형태를 두고, 4글자가 모두 그 네모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족지유, ‘나는 다만 만족한 줄을 안다’라고 풀면 될까? ‘나에게는 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로 받으면 너무 벗어난 것일까. 좀 더 시적이고 의미가 선명한 풀이가 있을 텐데, 고민해봐야지 싶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 더 높은 곳에 오르려 욕심을 부리며 뒤뚱거리며 기웃거리며 살지 말고 바람처럼 홀가분하게 살라는 뜻으로 받는다. 세월이 갈수록 그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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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기대어

신동숙의 글밭(51)

 

하늘에 기대어

 

               
강아지풀은
하늘에 기대어

 

꾸벅꾸벅
기도합니다

 

마른잎은
하늘에 기대어

 

흔들흔들
기도합니다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다 맞으시고

 

눈이 내리면
그 눈을
다 맞으시고

 

하늘에 기대어
기도합니다

 

감자를 먹으며
감사합니다

 

고구마를 먹으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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