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죄송했어요

  • 감사합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조심하세요

    이진구 2020.02.29 09:15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11)

 

그때는 죄송했어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장소에서 한 지인을 만났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내 마음을 무척이나 아프게 했던 사람이었다. 그때의 아픔과 실망은 입때 사라지지 않아 여전히 마음속에 물웅덩이처럼 남아 있다.


불쑥 앞으로 다가온 사람,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를 마주하였을 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했다. 반가운 얼굴로 말이다.

 

 

 

 

혼란스러웠다. 정말로 그는 아무 일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만큼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지난 일을 마음에 두고 있냐고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맞는다면 그는 너그럽고 내가 속 좁은 옹졸한 사람이 되는 것일까, 어색함을 감추며 인사를 하는 짧은 순간에도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덕분에 마음에 새긴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해도 내가 잘못한 것이 있었다면 용서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지나간 시간으로 지난 일을 덮으려 하면 안 된다. 그 한 마디가 왜 그리 어려운 것인지.


“그때는 죄송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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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자는 평범한 약속을 했습니다

신동숙의 글밭(95)

 

밥 먹자는 평범한 약속을 했습니다

 

집 안에서만 생활한 지 6일 째입니다. 올리신 글들을 보다가 점잖거나 믿을만한 분들의 글을 눈 여겨 보기도 하고, 보내오는 정보를 문자로 받기도 합니다. 어제 언론 매체에 올린 기사가 오늘은 사실이 아니라며 정정 기사가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팩트 체크"입니다.

 

제 경우에도 페북에 두 차례 다소 편협된 정보를 올렸다가, 이어서 부족한 부분에 보완이 되거나 서로 상반되는 새로운 정보를 다시 중복해서 올리기도 했습니다. 말에 대한 책임감 때문입니다. 이미 카톡으로 보내드린 경우에도 보완 또는 상반되는 새로운 정보를 일일히 한 분도 빠짐없이 다시 보내드리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한 마음을 먹는 일도 마음 무거운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일은 그보다 더한 책임감이 따르는 일임을 가슴이 선들해질 만큼 느끼는 이틀 간의 시간이었습니다.

 

혹시나 제가 전달한 정보로 인해서 마음에 공포심이나 두려움을 끼쳐서 평정심이 흔들렸다면 이 지면을 통해서 죄송하단 말씀을 드립니다. 악인은 상대의 내면에 두려움을 심어주고, 예수는 사랑을 심어주는 것이 근본적으로 다른 차이점이니까요. 사람을 움직이는 내면의 힘이 두려움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심어주신 것이 아님을 예수의 복음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구원 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으로 순례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걷는 길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잃어버린 어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던', 예수의 그 온전한 사랑의 마음 때문에, 그 빛을 가슴에 품고서 걷는 순례길입니다.

 

하나의 정보를 올린 후 거기에 보완 또는 상반되는 새로운 정보를 올리면서, 귀 얇게 괜한 짓을 해서 사서 고생을 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럴 시간에 책을 한 줄 더 읽거나, 글을 한 줄 더 쓰거나, 기도와 사색을 하거나, 집 청소라도 좀 할 껄.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평소에 소소하게 세워둔 스스로의 작은 원칙들을 허물어 가면서, 내가 왜 이런 괜한 짓을 했는가를 두고 잠시 헤아려 보았습니다. 이유는 혹시나 모르는, 만에 하나입니다. 사소한 정보 하나를 몰라서 어느 누군가 위험에 노출되면 어떡하나, 라는 안쓰러움 때문입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팩트 체크도 하기 전에 부지런히 정보를 나르는 분들의 마음도 제 마음과 조금은 비슷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편협되거나 공포심만을 심어주는 정보는 좋은 정보는 아닌 것입니다.

 

처음 해보는 이런 지난한 과정 중에 작은 배움을 얻기도 했습니다. 정보는 어디까지나 사실에 입각하되 사회 전체의 여러 입장들을 고려한 조화와 균형을 잘 갖춘 정보가 바른 정보의 기본틀이라는 점입니다. 제약협회 측에선 신약개발과 출시와 복용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할 테고요. 정치색을 가진 언론들은 정치색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기도 합니다. 한의사협회 측에선 면역력을 올려주는 한약재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체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각계 각층의 분분한 정보들이 처음엔 작은 사실로부터 태어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하나의 사실은 하나의 씨앗일 뿐. 사회 현상 전체를 아우르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편협성과 상호 모순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좋은 정보란 현실에 대한 경각심은 일으키되,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을 하면서, 최선의 적절한 심리적 물리적 대안까지도 제시하면서, 마음에는 평정심과 씨앗같은 현실적 희망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정보가 사실에 기반한 좋은 정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또는 소식이 뜸했던 지인들께도 안부차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보내드리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이어서 편협된 정보에 대해서, 보완이 되거나 상반된 입장의 정보를 다시 보내드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수차례 오고 간 문자 대화 중에 우리가 나눈 것은 서로 간에 따뜻한 마음들입니다.

 

이 지난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밥 먹자는 약속을 했습니다. 자체 격리에 들어가기 전날 만났던 어린 조카들이 고모가 사다준 쫄면이 맛있었다고 해옵니다. 잠잠해지면 어린 조카들에게 쫄면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언젠가 카페라떼가 맛있는 카페가 있다며 저를 데리고 간 아들의 친구맘과 잠잠해지면 그 카페라떼를 마시러 가자며 서로 약속을 했습니다. 아들은 박 선생님과 양산에서 먹었던 식당 음식이 맛있었다고 합니다. 잠잠해지면 또 그곳으로 밥 먹으러 가자며 박 선생님과 서로 약속을 했습니다. 한참 전부터 싸인 음반을 주시려고 준비하신 선생님과는 북콘서트 차 오시면 주십사 하고 서로 만남의 약속을 했습니다. 1차 원고 교정(의뢰인이 토론토에서 출간하시기로 계획을 변경하셔서 무산된) 후 작은 사례를 하시려는 신부님께는 다시 뵙는 모임날, 새로 출간 예정인 책에 싸인을 해서 주시면 사례로 충분하다며 서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렇게 말에는 언제나 책임감이 따릅니다. 어쩌면 책임감이라는 한 마음먹기는 말하기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의 글 한 줄에 감동이 된다고 해서 쉽게 가져다가 사용하는 일에 대한 무게감이 곧 책임감입니다. 자기 내면에서 길어 올린 한 줄의 말을 글로 적은 이는 상황이 불리하다고 해서 그 말을 버리지는 않으니까요. 책임이 따르지 않는 말은 뿌리 뽑힌 꽃과 다르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무책임하게 옮겨다 놓은 말에는 생명력이 없으니까요. 무책임은 탐욕을 키울 뿐이고, 책임감은 사랑을 키우는 것 같습니다. 약속은 지키려는 마음이 책임감일 테고요. 많은 무거운 약속들을 그렇게 가벼운 말로 씨앗처럼 가슴에 심었습니다.

 

 

 

 

만나서 밥 먹자며, 차 마시자며, 얼굴 보며 얘기하자는 평범한 약속들입니다. 그 약속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집 안에서 자체 격리 중에도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면서 이 시국을 잘 견뎌내야 하는 것입니다. 순간마다 흔들리며 가라앉으려는 스스로를 그렇게라도 추스려봅니다. 첼로의 낮고 느리고 긴 호흡에 가만히 마음을 기대어봅니다. 몸과 마음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평정심이 건강한 상태일 테니까요. 어느 목사님의 한 말씀처럼 이번 코로나19 현상을 계기로 저부터 그리고 모두가 조금은 더 겸손해지는 마음이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대해서 자연과 생명에 대해서 그리고 나와 너와 우리에 대해서. 그렇게 움푹 낮아진 마음 자리에는 감사가 머물고, 행복이 고이고, 따뜻한 사랑과 평화가 담길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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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쑥

신동숙의 글밭(94)

 

어린쑥

 

 

 

지금쯤
강변 둑엔
어린쑥이 올랐을 텐데

 

봄햇살 등지고
쪼그리고 앉아서

 

한참을
손톱으로 뜯어도
겨우 한 줌이던

 

작은 공처럼
주머니에 넣었다가

 

저녁밥 지을 때

된장국에 넣고 끓이면

 

쑥향에

아득해지던
오래된 그리움

 

지금도
그 자리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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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사는 씨앗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10)

 

마음속에 사는 씨앗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시를 쓴다. 세상과 자연과 사물을 유심히 바라본다. 세상이 다 아는 단어와 언어인데도 그들의 마음을 거치면 전혀 다른 언어가 된다. 모국어가 사라지기도 하고, 모두가 모국어가 되기도 한다. 시인의 눈길이 닿으면 세상과 자연과 사물은 비로소 숨을 쉰다. 처음처럼 숨을 쉰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작곡을 한다. 오선지에 악보를 그린다. 가사가 옷을 입는다. 세상에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옷인 양, 어색할 것이 없는 옷이다. 그렇게 옷을 입으면 노랫말은 기지개를 켠다. 맘껏 기지개를 켜며 세상에 갓 태어나는 아기가 된다.

 

 

시인과 곡을 붙이는 이들의 마음속에는 씨앗이 가득하다.
세상 거칠고 메마를수록 씨앗은 간절함으로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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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09)

 

 눈빛
 

거리 풍경이 바뀌었다. 폭풍이 몰려온다는 소문을 듣고 서둘러 새들이 떠난, 동화 ‘소리새’ 속 새터 같다. 차량도 인적도 평소와는 확연히 다르고,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 속에도 생기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느낌을 말하자면 도시 전체가 잿빛 표정이 된 듯하다.


밖에 나가보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게 무슨 변괴인가 싶어 나라도 마스크를 쓰지 말아야지 싶어 길을 나서지만, 오가는 사람들은 그런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지나간다. 교우라도 만나게 되면 펄쩍 뛰며 어찌 마스크를 쓰지 않았냐고, 마스크가 없냐고 걱정스레 묻는다.

 

 


예배에 참석하는 교우들도 마찬가지여서 거의 대부분의 교우가 마스크를 쓰고 오고, 지난 주일에는 마스크를 쓴 채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너희가 아무리 변장을 해도 나는 누가 누군지 다 안다는 마음속 한 음성을 주님의 농처럼 들으며 말이다.

 

이런 와중에 한 가지 새로운 것이 있다. 사람들의 눈매가 눈에 띈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부위는 두 눈뿐, 마스크를 쓰니 오직 눈만을 마주하게 된다. 서로의 눈을, 눈빛이나 눈매를 이렇게 유심히 바라본 적이 있었을까 싶다. 눈만을 보다보니 눈에도, 눈매에도 제각각 표정이 있다. 사람은 얼굴만 다른 것이 아니었다. 눈빛도, 눈매도 자기만의 고유한 표정이 있었다.

 

눈이, 눈빛이, 눈매가 선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또 하나의 표정을 갖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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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함과 따뜻한 시선만이

신동숙의 글밭(93)

진실함과 따뜻한 시선만이

 

집 안에서만 생활한지 벌써 4일째가 되어갑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제가 사는 집 근처의 강변을 산책하기도 했다는 문자 동선 서비스에, 바로 대문 앞에도 안나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 저는 평소에도 누가 만나자고 부르지 않으면 잘 나가지 않는 편이라 불편함을 크게는 못 느끼고 있습니다. 학원과 도서관도 다들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때때로 집 밖으로 나가고 싶다며 떼를 쓰던 아이들도 갑갑해하긴 하지만, 이제는 모두들 똑같이 겪는 상황이라며 체념한 듯 이해를 하는 눈치입니다. 어떻게든 집 안에 함께 있는 식구들 사이에 평화를 유지하는 일만 하루 하루 제게 주어진 숙제입니다. 이 와중에도 바깥에서 생업과 사명감으로 애쓰시는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제 자신이 겸손해집니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제 내면에서는 새로운 일들을 하느라 잠자리에서 조차도 쉼이 없습니다. 이럴 때 첼로의 낮고 느리고 호흡이 긴 음율에 기대어 누리는 고요한 시간이 평화로운 쉼이 됩니다.

 

자녀들 밥을 챙겨 주는 틈틈이 코로나19 관련 뉴스에는 계속해서 귀를 열어놓고 있답니다. 사실 매체와 정보가 너무나 많아서 다 볼 수도 없습니다. 되도록이면 정보를 전달하는 보도자와 그가 속한 조직이 사심을 배제하고 사실에 입각해서 쓴 내용의 기사문들로 선별하려고 합니다. (자본경제사회구조 안에선 사리사욕이 섞이지 않은 기사문과 정보란 참으로 드물고 귀합니다.) 그럼에도 다음날 기사에, 사실인 줄 알았던 전날의 뉴스가 오보였다며 정정한다는 뉴스가 올라오기도 하는 실정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비교적 나라의 피가 건강하게 잘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과거에는 거짓을 또 다른 거짓으로 덮으려고 검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던, 어둡고 눈 먼 시절들도 있었으니까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선별하기란 성경의 비유처럼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는 일과 같을 테고요. 이 많은 낱알 같은 정보들을 언제 다 가려내나 싶지만, 탈곡하는 좋은 방법들은 얼마든지 나와 있으니까요. 저는 가장 먼저 제 마음의 체망부터 스스로 돌아보려고 합니다. 개인과 조직의 사리사욕이라는 체망의 성김은 손바닥처럼 두껍기도 하고 손가락처럼 가늘기도 하고 아예 투명하기까지도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변함없는 것은 진실과 거짓을 분별함에 있어서 조직과 대중, 권위 등 외부의 손에 의지해서 선택하게 될 때는 언제나 오류의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점입니다. 외부의 조직과 대중과 권위에 의존하려는 그 마음이 우상을 만들고, 사이비 교주를 만드는 게 아닌가 하고요. 진리 안에서 이미 내 안에 계신 하나님과 예수와 성령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제 삶은 헛되이 사는 삶은 아닐 테니까요.

 

나부터가 개인의 사리사욕을 내려놓기 전에는, 그 흔한 진실 하나도 참모습을 오롯이 드러내는 일은 어려울 것입니다. 제 눈을 가리는 손바닥 구름은 언제나 제 헛된 욕심이었습니다. 세상의 많고 많은 진실과 거짓도 결국은 나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됨을 봅니다. 내 마음에 사리사욕이 없는 맑고 투명한 시선일 때, 진실은 비로소 맑은 하늘처럼 본모습을 드러내 보인다는 사실을, 역사의 거울들이 그리고 제 자신의 작은 경험들이 모여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한 마음먹기가 얼마나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두고, 신천지 교주와 한기총 회장을 통해서 여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옛선현들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려고 아니,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겼던 게 진실과 사랑과 이 나라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들을 요즘 들어서 더 많이 하게 됩니다. 암흑과 혼돈의 시절에 진실과 진리와 사랑을 가슴에 품고서 살다 가신 겨울나무들. 그렇지만 암흑과 혼돈은 과거에만 있었던 현상만은 아닌 듯합니다. 낮과 밤의 교차처럼 지금 현재에도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거듭 찾아 오고 가는 모습이 자연스런 현상일 테고요. 그래서 선현들은 그토록 매 순간을 깨어 있으라고, 기도하라고 했었던 게 아닌가 하고요.

 

 

 

정보의 홍수 속에 진실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여유 속에서 긴장의 줄을 놓치 않고 깨어 있으려는 일은, 삶 가운데 진리와 사이비를 분별하는 일하고도 다르지 않습니다. 왜 그토록 젊은 기독교 청년들이 신천지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 제가 아는 어느 목회자의 장녀도 얼마전에 수련회를 간다면서 집을 나간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목회자는 입버릇처럼 스스로가 정통 고신 예수교 대한 장로회라며 그가 속한 조직을 자랑스레 얘기하곤 했습니다. 그 무소부재의 권력을 쥔 그 목회자는 진실을 말하는 성도들의 등에 '암적 존재, 이단과 신천지'라는 주홍글씨를 입으로 쓰던 목회자였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3대, 모태신앙인 그 목회자의 장녀가 바라본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무엇이 목회자의 장녀로 하여금 신천지 수련회에 간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서 참석을 하게 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오래 전부터 언론에서 이미 밝혀온 신천지 교주가 그렇게 윤리적으로 모순이 있고, 기독교에서 충분히 경계를 해오던 그 집단을요.

 

매일 세수를 해야하듯, 밥을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듯, 진실과 거짓 또한 시시때때로 일어났다 사라지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습니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바이러스처럼요. 코로나19에 전염되어도 병세가 드러나지 않는 강한 면역력을 갖춘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코로나19 같은 신종 플루를 대하는 기본도 면역력이 됩니다. 신천지와 그릇된 믿음처럼 의식의 바이러스를 대응하는 기본도 개인이 지닌 의식의 면역력이 기본이 됩니다. 저는 그 건강한 면연력의 기준으로 맑은 피, 즉 깨어 있는 맑은 의식과 맑은 시선을 말하고 싶습니다. 진리와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서 깨어 있으려는 한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모든 전염병과 질병과 성인병은 피가 오염되고 탁해진 상태니까요. 살아있는 생명은 흐르는 물처럼 구름처럼 단 한 순간도 제자리에 멈춘 적 없이 흐릅니다. 그 자연의 흐름이 생명력이라면, 매 순간을 깨어서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일이 삶에는 진실이고, 순간을 영원으로 사는 일이고, 지상에서도 천국을 누리는 삶이 아닌가 하고요. 그 흐름의 순간마다 깃드는 것은 영혼까지도 충만한 행복감일 테고요.

 

이번 코로나19 현상처럼 뉴스 매체에 귀를 바짝 기울인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만큼 생명과 직결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일상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거품 같은 만남과 유희들을 조금씩 줄이고, 생존 뉴스에 귀를 기울이듯 이 만큼만 자연과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고요한 기도의 시간을 틈틈이 갖는다면 세상은 얼마나 평화로워질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도 50대 여성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대구의 첫번째 코로나 확진자가 신천지 교인이었듯,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확진자들이 대부분 신천지 교인이거나, 관련 장소를 다녀온 사람들인 것처럼, 저희 동네에 확진자도 신천지 교회에 다녀온 사실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이참에 신천지에 대한 공부도 겸하게 되었습니다. 20~30대의 젊은 청년층의 비율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젊은 집단인 사실에 놀랐습니다. 한국 개신교 교회들이 점점 고령화 되어 가는 것과 상반된 모습입니다. 그들의 복장도 블랙 앤 화이트의 일명 모나미룩이라는 점에서 결기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평소에 즐겨 입는 옷차림이기도 합니다. 제 이유는 교복처럼 고민하지 않고 입을 수 있는 옷차림이고 불필요한 낭비와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에 저는 책을 읽거나 차라리 단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거나 사색을 하는 편이니까요. 신천지 그들에게선 자본경제사회의 달콤함과 안락을 취하려는 교회의 탐욕보다는 물질에 대한 무욕의 모습으로 저는 읽었습니다. 비록 교주는 탐욕적이만요. 그 젊은 청년들을 세뇌 시킨 논리가 인격체인 그들의 의식을 지배해서, 로봇처럼 입력된 말만 되풀이 하듯 따르는 모습 앞에서 무력감을 느낄 정도입니다. 그들을 조종하는 게 예수의 사랑이 아니라, 구원에 대한 욕심과 두려움이라면 진리와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그런 신천지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체망으로 각계 각층이 얽혀 있음이 드러난 현상이 오늘날의 진실들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그 체망은 탐욕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진실을 덮어버리려고 하는 그 구름은 투박한 탐욕의 손바닥입니다. 숨어서 움직이는 그들의 모든 활동 가운데 맑은 하늘을 느끼려 칮아보지만, 잘 느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고구마 순처럼 잡아당길 수록 줄줄이 뽑히며 얽히고 섥혀서 세상으로 드러나는 그들과 관련된 실상들을 바라보면서 이 '진실의 보물들'을 어떻게 다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를 두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진실과 쭉정이를 가려내는 숙제가 또한 제 자신에게 있음을 먼저 자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숨겨졌던 진실이 드러나는 현상들을 바라보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더욱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드러난 '진실의 보물들'을 감당할 수 있는 책임감 있는 권리와 의무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이번 코로나19 현상으로 드러난 소중한 진실들이 단지 이슈로만 흘려 보낼 것이 아니라, 그동안 숨겨졌다가 세상에 나온 소중한 '진실의 보물들'을 함께 보고 있는 저에게도, 감당 할만한 책임감 있는 마음과 행동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행사 해야 하는 권리와 의무가 때마다 수시로 우리에게 주어지니까요. 스스로가 맑게 깨어 있지 않으면, 겨우 세상으로 드러난 진실들이 또 뭍히고 말테니까요. 어려움 속에서 힘겹게 진실을 캐내고 있는 숨은 노력들이 헛되이 돌아가지 않기를 빕니다. 그러려면, 저 개인 한 사람부터 시작입니다. 사리사욕으로 구름처럼 덮힌 시선을 조금은 맑고 투명하게 씻기려는 한 마음이 소중하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윤동주가 본 맑은 하늘이 늘 그립습니다.

 

코로나가 한국에서 발견되었을 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육체의 질병과 죽음보다 더 우려했던 점이 있었습니다. 중국 우한의 코로나 대응 현상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우였음을 이제는 더 여실히 느낍니다. 저는 얼마전까지 6.25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젬마라는 할머니의 자서전 원고를 교정하는 중이었습니다. 함경남도 출신의 18세, 고2 여학생이 1.4 후퇴로 부산까지 피난을 내려오면서 60세를 넘기며 세상을 떠나시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할머니에게 피난민 시절의 부산은 내 그리운 정든 고향이었습니다. 동시대의 소설인 권정생 선생님의 <몽실언니>에도 나오는 우리네 누이들은 참 선하고 착했습니다. 그리고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포노사피엔스족과 함께 살아가는 지금 이때에도 저는 그 선하고 어진 마음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이 참 감사하고 제게는 이 땅이 소중합니다. 하얀 반투명의 플라스틱 통에 담긴 흰우유를 마시면서도, 보탬이 되기보다는  지구를 오염 시키고 있는 제 생활 방식(소비적인 도시인의 삶)으로인해 늘 이 땅의 생명들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코로나19가 한국에 첫발을 디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을 수차례 먹고 또 먹었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타인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말자는 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한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아직 코로나가 끝난 것은 아니니까요. 나와 내 가족이 소중한 만큼 이웃집의 자녀와 이웃도 그 만큼 소중하다는 처음 시선이, 제겐 이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을 이해하는 기본 공식이 됩니다. 그 기본 공식으로 저는 참 좋은 분들을 많이도 알아보고 만나게 되었습니다. 만일 내 눈이 어두워 바로 내 눈 앞에 있는 진실 또는 예수를 못 알아보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이 제겐 가장 끔찍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 따뜻한 시선이 아름다운 삶으로 이어짐을 봅니다.

 

집에 있은지 4일째가 되어 가지만, 사실적으로 집이 사회로부터 폐쇄가 된 건 아닙니다. 마음만 먹으면 마스크를 끼고 차를 몰고 나가서 동네 마트도 갈 수 있고, 가고자 하는 곳을 얼마든지 타지역을 다녀올 수도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제 이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공권력의 힘을 가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단지 제 자신과 가족과 나라 전체의 안전을 위해서 스스로가 선택한 최선의 안전한 방법이기에 집에만 있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골목과 마을은 조용하기만 합니다. 아무도 싸우거나 언성을 높이거나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단지 아이들에게 잔소리가 강물처럼 흐르다가 수시로 제 목소리가 원치 않게 조금씩 높아지는 것 외에는요.

 

코로나 확진자는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지만, 대부분이 신천지 교인들의 동선과 일치가 되고 있습니다. 또는 모르고서 같은 장소를 방문한 분들 외에는요. 신천지가 정부의 정책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투명하게 개방하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촉구하는 바입니다. 한산한 거리를 보면, 대부분의 국민들 개개인이 우리집처럼 스스로를 단도리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코로나19 예방과 안전 수칙을 잘 지키고 계신 듯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는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최선의 노력은 코로나19에 되도록 일찍 전염되지 않아서 확진자 수가 짧은 시간 동안 늘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시간을 버는 일 같습니다. 그래서 국가 위기 극복을 위해서 밤낮 없이 애쓰시는 질병 관리 본부와 솔선 수범하고 계신 의료진들과 소방 당국과 정부와 각 시도별 정책자들이 최선의 대응과 대안들을 내놓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벌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저희는 집 안에서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서로 다투지 않으며, 장소 이동과 인권의 자유를 누리는 속에서 스스로만 조심하면 된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도 대문 앞으로 평소처럼 택배 차량과 기사님들이 종종 다녀가십니다.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잊지 않습니다. 그리고 힘겹게 세상으로 고개를 내밀며 밝혀진 진실들이 손바닥 구름의 욕심으로 가려지지 않도록, 매 순간 맑게 깨어서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일상 속에서 때때로 멈추어, 고요한 시간 속의 시간 속에서 구름 같은 탐욕을 씻긴 맑은 눈으로 문득 드러나는 맑은 하늘을 보기를 원합니다. 그 진리 안에서만 영혼이 비로소 맑은 숨을 쉴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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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함과 너그러움

  • 거의 모든 교회가 집에서 가정예배를 하는 것 같습니다. 한숨만 나옵니다.

    이진구 2020.02.27 08:55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08)

 

단호함과 너그러움
 


단호함과 너그러움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 간의 일도 그렇거니와 목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너그러움만 앞세우면 길에서 벗어나기가 쉽고, 단호함만 앞세우면 생명을 잃기가 쉽다.

 

 

지난 주일만 해도 그랬다. 신천지에 속한 사람들의 지역교회 출입이 현실적인 염려로 전해졌고, 정릉교회도 나름대로의 처방을 강구했다. 여러 개 되는 출입문을 하나로 단일화 했고, 교우가 아닌 이들에게는 카드를 작성하게 했다. 카드에 적은 전화번호가 맞는지를 확인하고 예배에 참석하도록 했다. 이야기를 들은 2명은 카드를 작성하지 않은 채 돌아섰고, 10명은 카드를 쓰고 예배에 참석을 했다.


평소 같았으면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교회가 예배 시간에 사람을 선별하여 받다니 말이다. 내 스스로에게도 영 어색하고 불편한 일이다. 그렇다고 아무 방비책도 없이 예배를 드리다가 염려했던 일들이 일어나면 걷잡을 수가 없는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혹시라도 좋은 마음으로 예배하러 왔다가 자신이 불신 받고 있다는 서운함이나 상처를 안고 돌아서는 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 앞에서는 너그러움을 생각하게 되고, 잘못된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찾아온 이를 너무 쉽게 받아들여 교회가 치명적인 피해를 보면 안 된다는 마음 앞에서는 단호함을 생각하게 된다.

 

주중의 모든 예배를 가정예배로 대체하는 결정을 어렵게 내렸으면서도, 당분간 교인이 아닌 사람은 아예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과, 주일낮예배까지도 중단하고 영상으로 예배를 대신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 앞에서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이 어려울 때 너그러움과 단호함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인지, 하나하나의 결정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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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들이 갑니다

신동숙의 글밭(92)

 

봄나들이 갑니다

 

 

 

 

봄나들이 갑니다
아이들과 함께
거실로 주방으로
자기 방으로

 

색색깔 봄꽃 잔치
밥상 위에 활짝 꽃 피우기
달래, 당근, 양배추, 다시마, 햄, 김, 김치
끓이고 볶고 삶아서
한바탕 잔치 밥상꽃, 삼 세 번

 

아들은 라면땅 만들어 먹고
딸은 기름떡볶이 만들어 먹고
설거지산은 누가 누가
기분 좋게
가위바위보, 삼 세 번

 

엄마는 다정한 선생님
엄마는 핸드폰 방해꾼
목소리는 올라서 산으로
잔소리는 길어져 강으로

 

고독과 침묵과 평온은
깊이 숨겨둔 보물찾기
하루종일 아이들과 함께
잠들기 전까지 안끝나는

 

새로운 세상의 코로나 덕에
난생 처음 봄나들이
거실에서 주방으로
자기 방으로

 

내일은 봄나들이 길에
무엇으로 잔치 밥상꽃 피우나
슬픈 순간엔 눈물웃음꽃으로
기쁜 순간엔 햇살웃음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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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나의 가족이라면

신동숙의 글밭(91)

 

그 사람이, 나의 가족이라면

 

흔들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의 흔들리는 마음의 중심을 다잡아 주는 말이 있다. 예수의 말씀처럼 하나님과 이웃을 내 목숨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하지만, 가끔 이 말씀이 추상적으로 들려올 때면, 좀 더 구체적으로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비슷한 말. 옛 어르신들의 말씀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나의 가족이라면', 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라면, 나의 부모라면, 나의 누이라면, 나의 형제라면, 나의 어린 자녀라면. 때론 가족이 아픈 것보다 내가 아픈 게 낫겠다고 여길 만큼 가족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존재가 되기에. 만일 말 못할 사정으로 가족이 없으신 분들에겐 마음을 나누는 누군가가 될 수도 있겠다.

 

'그 사람이, 나의 가족이라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어려운 세상을 이해하는 기본 공식이자 늘 첫걸음이 된다. 나로부터 시작되면서도, 가족은 피부로 바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이기에 또 다른 나의 몸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공식을 내 주변의 가까운 곳에 있는 생명부터 먼 곳까지 적용을 하고는 한다.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는 영화, 예술, 이단 종교, 직업 윤리, 사회 현상 등에도 그대로 적용을 하게 되면, 바른 안목과 바른 이해와 바른 선택을 하는데 크게 어긋나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 사람이, 나의 가족이라면', 이 하나의 시선이 마음의 온기와 평정을 다잡아 주는 것이다.

 

 

 

어젯밤부터 아침까지 조용하던 아이들 학원으로부터 줄줄이 휴원 문자가 왔다. 교육청의 권고에 의해서 일주일간의 휴원에 들어가고, 이후에는 상황에 따라서 다시 안내를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영어와 수학 학원과 운동 학원 등 모두가 휴원에 들어간 것이다. 아이들도 이제는 마음 편히 집에서 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학부모님들이 학교와 학원의 휴원을 두고 당장에 자녀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서 많이들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도서관까지도 다 문을 닫게 된 상황이다. 그런데, 아침에 모 학습지 관할 센터로부터 온 문자에는 한 줄의 안내 문장이 더 붙어 있었다. 학습지를 집에까지 안전하게 배달을 해드릴 테니, 자녀들이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지도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학습지를 누가 배달을 해준단 말인가 싶었다. 오후가 되니까  학습지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집 근처까지 왔는데, 집을 못찾겠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위치를 설명 해드리면서 선생님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드는 생각이, 우리 작은 동네에도 신천지 교회를 다녀온 50대 여성의 확진자가 있어서, 어제와 오늘에 이어서 확진자의 동선까지 문자 안내를 계속 받고 있던 중이라는 생각에 닿았다. 코로나 확진자가 사는 아파트 이름과 들른 식당까지 내게는 다 익숙한 이름들이다. 물론, 신천지 코로나 확진자도 내 가족이라면 하는 마음이다. 가족 중에도 좀 괘씸해서 혼을 내주고 싶은 그런 가족이 있으니까.

 

마당에 나와서 얼마 남지 않은 홍삼 한 포를 손에 들고서 선생님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선생님의 안전이었다. 선생님은 계속 우리집을 못찾고 계시는지 시간이 지체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휴원 안내 문자를 보내온 관할 센터 측으로 전화를 걸었다. 학습지 가가호호 배달은 본사 측에서 결의한 사안이었다. 확진자가 나온 동네에서 선생님이 온 동네를 돌면서 학습지를 배달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니까, 그러지 마시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때까지도 선생님은 우리집을 못 찾고 계셨다. 내가 먼저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서 여쭈었더니, 두 시간이 넘도록 학습지 배달을 하고 계신 중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확진자가 사는 아파트에 들어갈 때는 솔찍히 걱정도 되었다는 말씀을 해오신다. 혹시나 몰라서 차 안에서 학습지에 소독약을 막 뿌려 가면서, 배달하는 마지막 집이 우리집인데, 그러는 동안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학부모님들이 단 한 명도 안계셨다면서. 내심 미안해 하시면서도 고마워하셨다. 선생님의 남편도 걱정이 되는지 전화가 와서는 아직도 집에 안들어갔냐고 하더라면서.

 

선생님께, 우리집은 학습지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말씀드렸다. 그렇게 누군가 잘못된 줄을 살짝 끊어야만 할 것 같았다. 선생님이 집 근처까지 오신 것 같았지만,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내 아이의 학습을 챙길 수도 있었지만, '그 사람이, 내 가족이라면', 이 말이 나를, 내 욕심을 멈추게 했다. "선생님도 집에선 소중한 가족이신데,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리고, 지령을 내린 학습지 본사 측에는 학부모가 학습지 수령 거부를 해서 배달하지 못했다는 내용을 전달해 달라고 말씀을 드렸다.

 

개인 병원이 문을 닫기 전에 친정 엄마의 당뇨약을 타러 가기로 했다. 우리 동네 도로를 운전하면서 스쳐 지나는 인도에는 가끔 드물게 행인이 보이지만, 거리가 전체적으로 휑하다. 반대편에 폐지를 주으시는 할아버지가 보인다. 어제 뵌 분은 아닌데, 역시나 마스크를 끼지 않으신 모습이다. 당장에 필요한 몇 분께 손에 잡히는데로 마스크를 드리다 보니, 우리 가족이 쓸 일회용 마스크가 서너 장 뿐이다. 아차 싶어서 약국에서 천으로 된 마스크를 여러 장 샀다. 남편이 나무란다. 아무 생각 없이 다 줘버리면 어쩌냐고 한 소리 들었다. 그리고 무슨 천 마스크를 이렇게나 많이 샀느냐고.(다 나름의 뜻이 있는데.)

 

속상해서 쇼파에 앉았다가 안보던 텔레비젼을 봤다. EBS에서 방영하는 한국 기행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한국의 자연은 참 아름답다. 산도 바다도,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골진 주름살까지도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앉은채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프로그램이 바뀌고 잠이 깨어서 사온 상비약을 약통에 넣고 있으려니, 남편이 도둑놈들, 한다. 업체에서 그동안 일회용 마스크 50개에 오천원을 주고 샀는데, 오만원으로 올렸다는 내용이다. 시국이 시국이긴 하지만, 당장에 기분이 상한 듯했다. 그러면서 중국에서 직구를 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들여오는 일회용 마스크 한 개 가격은 20원이라고 한다. 대신 택배비는 비싸지만, 비행기로 한 달 정도 뒤에 도착 예정이라고 한다.

 

그때까지 천 마스크를 부지런히 빨아서 햇살에 널어서 뽀송하게 써야겠다. 남편한테 한 마디는 들었지만, 마음에는 그늘이 지지 않는다. 봄햇살처럼 마음은 따뜻하다. 그 사람들도 내 가족과 같으니까. 천 마스크는 충분히 준비했으니, 가족들이 두 개씩 번갈아 가면서 쓸 수도 있고, 서너 장은 어느 누군가에게 나눠 줄 것도 있어서 넉넉하다. 이렇게 오늘도 마음은 또 부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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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지피는, 마음의 온기

신동숙의 글밭(90)

 

코로나가 지피는, 마음의 온기

 

대문 밖 돌담 밑으로 어제 내놓은 폐지가 그대로 있다. 십 년이 넘도록 이 마을에 살아오면서 이런 적은 거의 없다. 언제나 내놓기가 바쁘게 사라지곤 하던, 마을의 어르신들에겐 인기 만점의 폐지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외출을 자제하고 있는 도심의 분위기에선 이상할 것도 없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언제나 낡고 녹이 슬은 자전거 뒷자리에, 노랗고 커다란 플라스틱 빈 바케스를 벗처럼 태우고서, 휘적휘적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시던 키가 크고 삐쩍 마르신 할아버지는 괜찮으실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강 건너에 살고 계시는 친정 엄마께는 주일날 교회에 가시지 않도록 단단히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잖아도 토요일날 오후 늦게 같은 목장의 목녀님으로부터 먼저 전화가 걸려왔었다고 한다. "자녀분들이 걱정하셔서 교회를 못 가게 하시죠. 기도할 테니 집에서 예배드리셔도 됩니다." 낮엔 강변 산책을 막 나서려던 참에, 마침 내가 전화를 드렸던지. 하루도 빠짐없던 산책도 망설임 없이 포기하셨다. 부지런히 다니시는 노인이 온종일 집 안에 갇혀서 얼마나 갑갑하실까 싶어서 오랜만에 말벗이라도 되어 드리려고 나서려는 참이다. 나도 그동안 괜히 바쁘다는 핑계로 친정 엄마를 교회와 어르신들 학교에만 맡겨두고는 거의 신경을 거두고 살았었다.

 

저녁 무렵이 되니 강변으로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평소보다는 드물지만 산책을 나온 모습들이 더러 보인다. 차로 이동을 하려다가 잠시 걸어서 친정 엄마댁에 가보려고 나서던 참에, 골목 저 멀리서 할아버지의 자전거가 보인다. 뒷좌석엔 플라스틱 바케스가 실려 있고 폐지도 반 이상 차 있다. 얼른 도로 집으로 들어가서 폐지를 더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마스크를 끼지 않고 계신다. 상대적으로 정보에 취약한 노인분들이 아닌가 싶다. 다시 들어가서 일회용 마스크 몇 개를 담은 비닐과 작은 홍삼 박스 하나를 챙겨 나왔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자전거 앞쪽 바구니에 작은 선물을 담아 드리니, 약간 놀라신 눈으로 보신다. 처음 뵙는 얼굴이시다. 평소에 우리 마을을 다니시던 할아버지는 아니시지만, 마스크를 꼭 끼셔야 한다면서 그 자리에서 하나를 건네 드리니까. 고맙다고 하시면서 바로 마스크를 착용하신다. 그리고 홍삼은 우리 가족들이 먹는 거라서, 같이 드셔도 된다고 했더니, 들릴락말락하는 목소리로 고맙다고 하신다. 그러면서도 연신 허리를 굽히셨다가 일으키시며 폐지를 차곡히 자전거 뒤 바케스에 세워 담으신다. 나도 "고맙습니다"는 인사를 드리고 친정 엄마댁으로 걸음을 향했다.

 

어르신들은 뉴스를 보셔도, 대응력이 느리시고 꼼꼼하지 못하신 점이 마음에 걸린다. 다리를 건너면서, 엄마의 당뇨약이 얼마나 남았을까? 병원 방문도 최대한 자제를 해야 하는 분위기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뭔지, 새로운 숙제들이 징검돌처럼 하나씩 주어지는 것 같다. 강물엔 오리 가족들이 얼마 남지 않은 햇살을 쬐는지, 저녁밥거리를 찾는지 모여 앉아 있다. 시장을 가실 때 버스를 타고 가시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고민해 본 적 없는 신종 숙제들. 아이들의 입학이 일주일 연기가 되었다는 안내 문자가 온다. 학원이 문제다. 모든 학교의 방과후 수업이 휴강에 들어간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학원에선 여태껏 아무런 소식이 없다. 딸아이는 친구들과 시내 나들이 약속도 취소하고 하루 종일 집 안에 있으면서도 틈틈이 친구들과 문자 대화를 나누는 모양이다.

 

학생들도 당장 내일 학원을 가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서로 나누는 눈치다. 저들 사이에서도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딸아이는 누군가 간다면 저도 가고, 안간다면 덩달아 안가겠다는 말을 해온다. 사설 학원은 법적 통제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영업종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럴 땐 대신 엄마가 결정을 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당분간 모든 학원은 가지 않는 것으로. 아들은 괜히 신났다. 내일은 아침 6시에 일어나겠다며 엄마 앞에서 선언까지 하면서 잠자리에 든다.

 

현재로선 한 개인이 최대한 외출로 인한 접촉을 줄이는 것이, 사회 전체에 도움을 주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명의 확진자 수가 이틀만에 600명을 넘어서는 현상을 보면서,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 속도를 나부터가 최대한 늦추는 것이 최선일 듯하다. 그렇게 시간을 버는 동안에 질병 관리 본부와 코로나 대책 본부와 의료 기관 등이 적절한 대응과 대책을 세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건강한 사람의 몸에선 코로나 숙주가 아무런 증상으로 나타나지 않기도 한단다. 그 자신도 모르기 때문에 이동에 상대적으로 제약을 두지 않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그 숙주가 취약한 사람과 접촉시에는 증상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한다. 아무리 머리를 사방으로 굴리고 마음을 모아도, 현재로선 친정 엄마께 최대한 외출을 하지 마시고, 운동과 산책은 집 안에서, 거실과 이 방 저 방을 왔다갔다 하는 것으로 대신하자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뇨약과 천식약은 병원 방문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겠노라고. 그래서 약들을 사진 찍어 두었다. 간단한 장보기는 마스크를 끼고서 가까운 슈퍼마켓을 이용하고, 외부 운동 기구나 의자에도 앉지 마시고, 문 손잡이 등의 외부 물건에는 최대한 신체 접촉을 피하시는 걸로, 그리고 집에 오시자마자 바로 손씻기를 하시는 동선을 거듭 말씀 드렸다.

 

평소 아들은, 밥을 두 그릇 이상 먹고 나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귤 한 소쿠리를 다 까먹을 정도로 식욕이 왕성하다. 아침에는 아들에게 이제는 장보기가 쉽지 않으니까, 조금씩 나눠서 아껴 먹어야 한다고 했더니, 한라봉 두 개를 다 깠다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나는 락앤락통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스스로 음식을 조절하려는 눈치를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고 귀엽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이렇게 일상 생활 깊숙히 소소하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가족들 간의 대화와 정이 더욱 돈독해지는 느낌이다. 한적한 거리를 지나다가 폐지를 주우시는 고마우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게 되면, 마스크를 꼈는지부터 확인을 해야겠다. 혹시 마스크를 끼지 않고 계신다면 일회용 마스크를 몇 개라도 챙겨 드려야겠다. 폐지를 주으시는 분들에겐 마스크값과 목장갑값이 부담이 될 때가 있다. 간혹 폐지로 번 푼돈으로 생활을 하시는지도 모르기에, 선뜻 밖에 나오시면 안된다는 말씀을 차마 못 드린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새롭게 올라오는 코로나 바이러스 소식으로 마음은 무겁지만, 한 편으로는 마음에 온기를 더 지피는 것 같다. 저녁답 강변길에 친정 엄마가, 저기 좀 보라고 하신다. 엄마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나직한 덩굴 나무 가지숲 아래로 누군가 고양이 사료와 물을 갖다 두었다. 스티로폼 박스를 옆으로 뉘어서 작은 사료집이 되었다. 뚜껑으로 처마를 만들어 혹시나 올지도 모를 봄비를 대비한 모습이다. 위에는 가벼운 스티로폼 사료집이 날아가지 않도록 무거운 넙적돌 세 개를 얹어 놓았다. 두 개의 넙적한 플라스틱 통엔 아직 사료가 수북하다. 투병한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물이 참 맑다. 얼굴을 본 적도 없는, 내게 해준 것도 아닌, 길고양이를 위한 어느 모르는 사람의 숨은 손길에 덩달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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