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바이러스 코로나와 촛불 하나

신동숙의 글밭(75)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와 촛불 하나

 

2월, 개학과 졸업을 앞두고부터 진풍경이 펼쳐집니다. 핸드폰 문자 메시지로 알림장이 먼저 날아옵니다. 중국 여행을 다녀오신 적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마스크는 필수입니다. 졸업식은 교실에서, 가족과 친지의 초대 없이 진행됩니다. 영세 식당엔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고, 해외 여행 비행기표는 줄줄이 취소가 됩니다. 예정되었던 행사와 공연들이 줄줄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 소식에 예민해진 귀는 언론의 입 하나에도 들썩입니다. 예전에도 신종플루, 사스, 메르스를 우리는 그렇게 지나왔습니다. 하지만, 그전보다는 조금 더 발 빠른 대응을 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원활하던 사회 흐름이 어딘가 매끄럽지 못합니다. 어느 비 오는 날처럼 어딜 가려던 마음은 내려놓고, 발걸음은 집안에 머물게 됩니다. 그렇게 몸은 가지 못하지만, 마음의 온정은 식지를 않고 흐르는 모습을 우리 주변 곳곳에서 보게 됩니다. 개학날 아침 큰딸아이를 학교까지 태워주고 돌아오던 한적한 골목길에서 아들이 혼자서 서성이고 있습니다. 이미 교실에 앉아 있어야 할 시간입니다. 무슨 사연인가 싶어서 창문을 열고 부르니, 마스크를 안가져왔다고 합니다. 집에까지 돌아가기엔 시간이 늦습니다. 바지 주머니에 천원을 만지작거리며 들어선 가게집에도 마스크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또 금방 하얀 마스크를 쓰고 나옵니다. 가게 아주머니께서 그냥 하나 주셨다고 하면서, 바쁜 걸음이 학교로 향합니다.

 

혹시나 싶은 전염을 우려한 마음에 깃든 어둔 그림자도 간혹 보입니다. 일부 한국에선 중국인을 꺼려한다 하고, 서양에선 동양인을 꺼려한다는 미미한 소식도 있습니다. 전세기로 귀국한 우한 교민들 격리 시설을 충북 진천과 충남 아산에 설치하면서는 작은 농성도 있었지만, 받아들임의 따뜻한 촛불 하나를 밝힌 것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스케치북에 손글씨로 적어서 올린 'We are Asan. 편히 쉬었다 무사히 돌아가십시오.' 그렇게 따뜻한 가슴은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고 촛불처럼 파도처럼 전염되어 퍼져가는 모습을 봅니다.

 

 

 

 

작년에 촛불집회에서 보였던, 차분함 속의 열정과 고요 속의 외침을 해처럼 가슴에 떠올려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바이러스는 앞으로도 쉬지 않고 진화를 할 것입니다. 그런 바이러스의 창조성이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의식은 그보다 더 경이로우며, 매 순간 새롭게 창의성을 꽃 피우기에 무한한 자유와 사랑을 지닌 존엄한 존재입니다.

 

바이러스는 기온이 떨어지면 기승을 부립니다. 마음의 온기가 식으면 몸의 온도도 내려갑니다. 어둔 가슴일지라도 촛불 하나 피우는 마음이라면, 그렇게 온기를 살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웃음 바이러스는 암세포도 녹인다는 미국 암병동 의사의 실사례 경험담을 접한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체온을 올리면 면역력도 올라갈 테고요. 백혈구의 먹이는 비타민입니다. 물과 비타민을 음식과 허브차와 영양제로 보충을 하면서 평소 면연력을 기릅니다. 저희 집에선 팔 년 가까이 신종플루와 각종 독감을 비타민과 물로 다스려 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진화할 바이러스와 세상의 변화에 열려 있으면서도, 마음의 중심에는 촛불 하나의 고요와 평화를 한결같이 유지할 수 있기를. 세상의 온갖 파도가 마음의 표면에서 출렁거려도 그 깊은 내면은 그렇게 고요할 수 있다면, 우리의 매 순간마다 행복은 깃들고 사랑은 살아서 숨을 쉴 것입니다. 그 고요하고 따뜻한 평화, 촛불 하나의 마음은 고요한 기도의 마음으로 이어지니까요. 그렇게 오늘도 제 영혼에 촛불 하나 밝힙니다.

 

나 이토록 흔들리는 것은
타오르기 때문입니다
당신 앞에 선 나는
위태로운 촛불입니다
내 눈물의 심지가 되신 예수여

posted by

함께 사는 한

  • 죽음은 관계가 끊어지는 것~! 와, 관계가 끊어진지도 모르고 살아왔었네요.. 하나님과의 관계! 감사합니다.

    이진구 2020.02.11 03:27
    • 죽음에 대한 새로운 정의였습니다.

      한희철 2020.02.14 07:11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95)

 

함께 사는 한
 

생생했다. 꿈을 꾸는 내내 꿈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있었다. 그가 살고 있는 미국이었다. 무슨 급한 일이었는지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한 채 나는 미국에 있었고, 덕분에 친구로부터 도움을 받을 일이 많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친구는 자연스럽고도 넉넉하게 모든 것들을 도와주었다.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든든했고 고마웠고 즐거웠다.

 

 

 

그러다가 깼다. 무엇 그리 급한지 훌쩍 곁을 떠난 친구, 하지만 꿈으로 찾아와선 여전한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이었다. 죽음이란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라 했던 모리 교수의 말을 떠올린다. 함께 사는 한,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죽은 것이 아니다.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을 지키면  (2) 2020.02.11
한우충동  (2) 2020.02.10
함께 사는 한  (2) 2020.02.09
스미다  (4) 2020.02.08
깊은 두레박  (2) 2020.02.06
가로등을 밝히는 것은  (2) 2020.02.05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