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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32

겹벚꽃 할머니 신동숙의 글밭(135) 겹벚꽃 할머니 오일 장날에 참기름집 앞에 서 있는데 앉으신 할머니가 몸을 틀어서 내 있는 쪽으로 손만 뻗고 계신다 할머니의 손이 향한 곳을 보니까 딸기 바구니에 담긴 푸른 엉개잎 바로 지척인데 강 건너 쯤 보일까 싶어 나도 모르게 "갖다 드릴까요?" 여쭈니 할머니는 눈으로 살풋 미소만 지으신다 참기름병을 가방에 넣고 돌아서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를 헤아리다가 선뜻 몸을 일으키시지도 고맙단 말도 또롯이 못하시면서 할머니는 그 몸으로 장사를 하시네 차가운 바닥에 종일 앉아서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갈 일이 까마득해서 해가 뜨면 몸 일으킬 일이 무거워서 나무처럼 할머니의 몸도 입도 무거워서 주름진 얼굴에 핀 수줍은 미소가 겹벚꽃 같아 2020. 4. 23.
갈망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64) 갈망 한 지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벽에 걸려 있는 옛 시 하나가 눈에 띄었다. 竹影掃階塵不動 月輪穿沼水無痕 ‘죽영소계진부동 월륜천소수무흔’, 더듬더듬 뜻을 헤아리니 ‘대나무 그림자가 계단을 쓸어도 먼지 하나 일어나지 않고, 둥근 달이 연못을 뚫어도 무엇 하나 흔적 남지 않네.’ 쯤이 될 것 같았다. 문득 대나무 그림자 앞에 선 듯, 호수를 비추는 달빛 아래 선 듯 마음이 차분해진다. 대나무 그림자 출렁이듯, 순한 달빛 일렁이듯 마음으로 찾아드는 갈망이라니. 먼지 하나 없이 마음 하나 쓸고 싶은. 물결 하나 없이 마음 하나 닿고 싶은. 2020.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