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가는 자녀에게 진리를 얘기하려고

신동숙의 글밭(146)


학원 가는 자녀에게 진리를 얘기하려고


딸아이가 영어학원에 간다며 엄마 방으로 들어옵니다. 현관문 앞에서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할 때가 많은데, 구석진 방에까지 온 이유는 알고보니 용돈입니다. 읽고 있던 다석 류영모 선생의 <다석 전기> 내용 중에서 한 단락을 들려주어야겠단 마음이 실바람처럼 불었습니다. 


중 3 딸아이에게 '성서조선'과 '조선어학회 사건'이라고 들어봤느냐 물으니, "어, 조선어학회는 들어봤어." 합니다. 그리고 읽고 있던 내용 중에 재미난 이야기가 있어서 들려주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서대문 형무소에 잡혀 들어간 한국인이 일본인 간수에게 개인 교사가 되어 공부를 가르쳐줘서 승진 시험을 치르게 해준 이야기입니다. 얘기를 들려주며 지갑에서 이천 원을 꺼내 건네주는데 딸아이의 눈이 번쩍하는가 싶더니, 이미 바람처럼 가고 없습니다. 딸아이에게 들려주려던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 '1942년 3월 30일, 류영모가 아침에 일어나니 무엇인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류영모와 입씨름을 해서는 혐의를 잡을 수 없자, 일제 형사는 류영모를 2층에 있는 고문실에 데리고 가서 그곳에 있는 여러 가지 고문 기구를 보이며 사용 방법을 설명하였다... 그곳에서 수많은 애국지사 우국 동포들이 일제 경찰의 혹독한 고문을 견디다 못하여 불구의 몸이 되기도 하고 원귀의 객이 되기도 하였다. 류영모는 "이 겨레가 언제까지 이렇게 시련을 겪어야 합니까?"라고 하느님께 기도를 올렸다.


일제 경찰은 류영모에게 바라던 대답을 얻지 못하자 올가미를 씌울 유도신문을 하였다. "너는 한국의 독립을 바라는가?"라고 물었다. 류영모가 한국의 독립을 바라기만 했겠는가? 독립할 날이 곧 다가온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란다고 대답을 하였다가는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닌가 하고 나올 것이 뻔하였다.  그렇다고 독립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일이기에 설사 무죄가 된다 하여도 말 할 수 없었다. 류영모는 솔로몬의 지혜를 빌려서라도 이 올가미를 피해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류영모는 대답하였다. "어찌 한국 사람이 되어 한국의 독립을 바라지 않겠는가? 조선의 공중변소가 일본의 공중변소 만큼 깨끗하게 되는 날 독립할 자격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기묘한 대답에 일제 경찰은 더는 유도신문을 하지 못했다.


김교신은 자로처럼 성격 그대로 순국하겠다는 의지를 품었기에 직설적인 대답을 거침없이 하였다. 그리하여 취조하던 경찰이 말하기를 "김교신이란 사나이는 참 대담하기 짝이 없거든. 취조 경관인 내가 다 아찔아찔 할 때가 있단 말이야."라고 하였다.'( <다석 전기>, 박영호, 교양인, 385~386쪽 )


'성서조선 사건'으로 연루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잡혀간 류영모·김교신·함석헌·송두용·류달영 이분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치 암흑 속에서 별빛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화로와 아궁이에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던 선조들의 빛난 정신이 일제강점기에도 유유히 이어져 오고 있었다는 사실에 감격스럽고 고마운 마음이 그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그리하여 비록 검사와 죄수의 자리에서 만났지만 후지키 검사는 류영모·김교신·함석헌을 포함하여 '성서조선 사건'에 연루된 여러 인물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는 이 사람들을 풀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후지키 검사가 증거물로 제시된 <성서조선>을 일일이 읽었다는 점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만한 인물들은 일본인 중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훌륭한 사람들인 것을 후지키 검사는 알았던 것이다. 


김교신은 후지키 검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검사국에 넘어가서는 담당(후지키) 검사가 유리하게 조서를 꾸며주었고, 그뿐 아니라 '이번에 당신들 덕분에 공부 많이 하였소.'라고 말하였다. 종로 경찰서 형사들도 '기독교에 대해서는 김교신과 함석헌에게 물어보면 제일 잘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면서 기독교가 이토록 좋은 종교인 줄 처음 알았다고 하였다."

......

'성서조선 사건'의 류영모·김교신·함석헌·송두용·류달영 등은 간수들에게도 존경을 받았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든 것이 모범적이니 간수들이 이들의 범상한 인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간수들이 "당신들은 사회에 나가면 훌륭한 인물이 되어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겠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자탄의 말을 하기도 하였다. 류달영은 감방 안에서 일본인 간수의 개인 교사가 되어 공부를 가르쳐주어 승진 시험을 치르게 해주었다.


마음에 하느님의 진리를 품고 있는 참사람들은 그 어느 곳에 가든지 진리의 빛을 비추어준다. 마하트마 간디의 제자 비노바 바베는 감옥 안에서 죄수와 간수들에게 <바가바드기타> 강의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속기까지 하여 출판하였다. 감옥에서 명상 기도를 하기도 했는데 간수들도 참여하였다.

......

김교신을 비롯한 <성서조선> 집필자들을 칭송하는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당시의 일본 경찰이 했던 말이다. "너희놈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잡은 조선놈들 가운데 가장 악질이다. 너희들은 종교의 허울을 쓰고 한국의 민족 정신을 깊이깊이 심어서 100년 뒤, 아니 500년 뒤에라도 독립을 이룩할 터전을 마련해 두려는 고약한 놈들이다." 김교신·함석헌·송두용 등은 1년 만에 풀려났고, 류달영과 박동호는 10개월 만에 풀려났다.'( <다석 전기>, 박영호, 교양인, 387~389쪽 )


조금 있으니 이번에는 아들이 복싱 학원에 간다고 합니다. 덩치가 커지면서 아들에게선 폭력성도 자라는 걸 보게 됩니다. 복싱 학원에 보내달라며 조르는 걸, 그동안 엄마는 들어도 못 들은 척 최근까지도 결사반대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아빠까지 가세를 하게 되면서 엄마의 고집이 꺾이고 만 것입니다. 아무리 운동이라고 해도 주먹을 휘두르는 폭력적인 방법이 싫은 것입니다. 간디의 비폭력 평화가 늘 맴도니까요. 수영이나 줄넘기 등 다른 운동도 얼마든지 많으니까요.


아들은 몸집은 뚱뚱해도 줄넘기 할 때 보면 동작이 참새 같습니다. 갑자기 더워진 오월의 날씨에 반팔 티셔츠를 찾느라 엄마 방으로 온 것입니다. 제 방으로 왔다갔다 하는가 싶더니 현관문 앞에서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해옵니다. 신발 신는 시간을 놓칠세라. 알든가 모르든가 몇 마디 당부의 말을 씨앗처럼 던졌습니다. 


"복싱은 왜 하지? 내 몸을 지키려고,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하거라. 예수님 이름으로 하나님한테 기도하면서"


진리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자녀들에게 심어주는 일이 늘 하늘을 대하듯 막연하기만 합니다. 저녁밥을  준비하고 있는데 복싱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이 인사를 하는가 싶더니 안보입니다. 나중에 인조 카네이션 네 개를 들고서 짜잔 나타납니다. 엄마 아빠한테 각각 두 개씩 주며, 하나는 가슴에 달고 하나는 손에 들고 다녀야 한다며 줍니다. 선물도 줍니다. 아빠에겐 샤프와 샤프심을 엄마에겐 연필과 지우개를. 하나씩 줘도 충분한 걸 누굴 닮아서 통이 큰지 모릅니다. 


농담 삼아서 "몸은 엄마 아빠가 낳아줬지만, 마음은 하나님이 낳아주셨는데, 하나님한테는 카네이션 안드리나?" 하고 물으니, 아들이 "하나님은 마음으로" 합니다.


순간의 재치에 웃음이 나서 한 마디 더 해주었습니다. "그러면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해 드려라." 했더니, 말없이 웃기만 합니다. 말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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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하지 않아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79)


말로 하지 않아도


비가 오는 토요일, 교우와 점심을 먹고 예배당으로 돌아올 때였다. 예배당 초입 담장을 따라 줄을 맞춰 걸어둔 화분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하얀 비닐 우비를 입고 있어 누군지를 알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사무실 간사인 장 집사님이었다. 





비를 맞으며 무슨 일을 하는지를 물었더니, 화분 아래에 구멍을 뚫어주고 있다고 했다. 비가 오자 화분마다 물이 차는데, 그러면 꽃의 뿌리가 썩어 죽는다는 것이다. 화분에는 물구멍이 두 개가 나 있지만 화분의 흙이 구멍을 막아 물이 제대로 빠지지를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침 화분에는 구멍을 뚫을 자리가 몇 개 더 있다면서 일일이 송곳으로 화분 아래에 구멍을 내고 있는 중이었다. 


“손이 많이 갈 텐데요.”


우비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빗속에 혼자 일하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여 인사를 했더니 집사님이 밝게 웃으며 대답을 한다.


“마침 시간이 한가해서요.”  


젊은 사람이 한가하다고 해서 비를 맞으며 화분 아래 구멍을 내는 것이 당연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말이다. 말로 떡을 쑤면 온 백성이 먹고도 남는다고 한다.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을 말로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비오는 날 비를 맞으며 화분에 구멍을 뚫는 것이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충분히 드러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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