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눈물

조진호와 함께 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순례(24)

 

BWV 244 Matthäus-Passion / 마태수난곡

No. 24 베드로의 눈물


마태수난곡 245~46

마태복음 26:69~73

음악듣기 : https://youtu.be/YAD8bJc5SPw

45(38)

내러티브

에반겔리스트

69.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69. Petrus aber saß draußen im Palast; und es trat zu ihm eine Magd, und sprach:

대사

여종1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Und du warest auch mit dem Jesu aus GaIilaa.

내러티브

에반겔리스트

70.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70. Er leugnete aber vor ihnen allen, und sprach:

대사

베드로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Ich weiß nicht, was du sagest.

내러티브

에반겔리스트

71.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71. Als er aber zur Tür hinausging, sahe ihn eine andere, und sprach zu denen, die da waren:

대사

여종2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Dieser war auch mit dem Jesu von Nazareth.

내러티브

에반겔리스트

72.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72. Und er leugnete abermal und schwur dazu:

대사

베드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Ich kenne des Menschen nicht.

내러티브

에반겔리스트

73.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73. Und über eine kleine Weile traten hinzu, die da stunden, und sprachen zu Petro :

46

대사

곁에 섰던 사람들

(합창)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Wahrlich, du bist auch einer von denen, denn deine Sprache verrät dich.

코멘트

에반겔리스트

 

74.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74. Da hub er an sich zu verfluchen und schwören:

대사

베드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Ich kenne des Menschen nicht.

내러티브

에반겔리스트

곧 닭이 울더라 75.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Und alsbald krähete der Hahn. 75. Da dachte Petrus an die Worte Jesu, da er zu ihm sagte: ehe der Hahn krähen wird, wirst du mich dreimal verleugnen. Und ging heraus, und weinete bitterlich.

 


에반겔리스트의 숨 고르기

 

장면이 바깥뜰로 바뀝니다. 오페라와 달리 오라토리오나 수난곡은 무대배경이나 분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수난곡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장면 변화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귀가 민감하신 분들은 오늘의 부분에서부터 에반겔리스트가 잠시 텀을 둔 후에 한 걸음 뒤로 물러나 힘을 빼고 가볍게 노래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노련한 에반겔리스트인 에른스트 헤플리거는 여기서부터 이전보다 매우 차분한 어조로 노래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앞서 말씀 드린 장면의 변화를 암시하기 위함입니다.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멀리뛰기 선수가 출발 전에 힘을 빼듯 가장 중요한 도약을 앞두고 숨고르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태수난곡 전체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하고 심이 통곡하는 장면을 그는 그렇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종들과 아랫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바깥 뜰 중앙에는 불이 피워져 있는데 불 주변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지금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 틈바구니 속에 오늘 장면의 주인공 베드로가 앉아 있습니다.

 

디테일의 장인, 누가복음

 

네 개의 복음서 모두 이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누가복음의 문학적 묘사가 놀랍기만 합니다. 누가복음 2255절과 56절입니다.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누가복음은 단 하나의 문장을 가지고 이 장면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예수의 제자임을 숨기기 위해 몸을 최대한 움츠리면서도 너무 튀어 보이지 않도록 사람들의 이야기에 적당히 맞장구를 치면서 무리 속에 섞여서 불을 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든 생각과 감각의 촉수는 건물 안의 상황과 그들 앞에 홀로 서 있는 한 사람, 예수와 연결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그 찰나의 빈틈을 알아챈 눈치 빠른 여인이 하나 있었습니다.

 

누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지금 이러고 있는 이유가 쌀쌀한 새벽공기 때문이라고 말하듯 베드로는 불 앞에서 연신 손을 비벼가며 움츠리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일행의 말에 때때로 반응하며 간간히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데 메인 콘셉트는 원래 별 생각 없는 아랫사람입니다. 뜰 안쪽에서 돌아가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이 새벽에 주인을 모시고 나온 상황이 짜증스럽고 피곤하기만한 아랫사람인 척을 하는 게 더 편하고 위험부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있다 보니 정말로 피곤이 밀려옵니다. 힘든 하루였습니다. 배도 고픕니다. 스승 예수와의 마지막 저녁식사가 벌써 오랜 옛일처럼 느껴집니다. 예수께서 여러 번 깨우시는 바람에 겟세마네에서도 숙면을 하지 못했고 예수를 잡으러 온 무리들과 칼을 들고 대치하느라 몸도 천근만근입니다. 따스한 모닥불 앞에서 몸이 노곤해지니 이내 잠이 몰려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타다닥! 장작이 무너지며 불꽃이 타오릅니다. 꿈을 꾸었던 건지 갑작스레 타오르는 모닥불 빛이 화들짝 놀라 깨어난 베드로의 원래의 얼굴을 스칩니다. 순간, 불빛을 사이에 두고 베드로 건너편에 있던 한 여종의 표정이 갑자기 멈춥니다.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22:56’


갈릴리 사람의 낯익은 얼굴과 불안한 눈동자가 그 여종의 눈에 포착되었습니다. 시골에서 온 사람은 어떻게 자신을 꾸미거나 숨겨도 서울사람의 눈에 시골사람으로 보이는 법이지요. 베드로가 방심한 것도 있지만 중요한 사람들이 오가고 온갖 정치적인 모략이 일어나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의 종답게 그 여인의 눈썰미도 대단했습니다.


베드로와 우리들

 

여종의 말은 영어의 ‘And’와 같은 접속사 ‘Und’로 시작합니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모닥불 주변의 사람들이 그 때 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하나님의 인류 구원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했던 그 순간에도 세상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이런 저런 말과 생각으로 그 흐름에 동참하며 그 일부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순간 예수의 제자 베드로의 마음과 영혼은 한 가닥의 가녀린 줄로 예수를 붙들고 망망대해 위에서 흔들리는 부표처럼 위태롭게 버티고 있습니다. 지금 그가 홀로 떠 있는 세상은 그 흐름이 너무나 거칠고 빠르며 그 깊이의 어두움도 까마득해 보이는 상황입니다. 그 와중에서도 베드로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아무 일 없는 척, 그들 중의 하나인 척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은 그를 더 깊은 자괴감으로 이끌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고맙게도 그 이름 없는 여종이 베드로를 그 막막함 가운데서 깨워 준 것일지도 모릅니다. 베드로는 얼른 그 자리에서 도망치기로 합니다.

 

70.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71.앞문까지 나아가니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종종 세상 속에서 이와 같은 경험을 합니다. 태연한 척 무리들에 섞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별생각 없는 아랫사람처럼 살기도 하지만 내면은 외롭고 불안하기만합니다. 하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베드로와 같은 상황을 겪어 보고 받아들이고 이겨낼 수 있어야만 합니다. 지금 주님께서도 우리로 하여금 그와 같은 상황을 대면하고 이겨 내도록 이 수난의 길을 담대히 마주하고 계십니다.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그 과정을 건너 뛴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 합니다. 현대의 신앙인들이 크고 번듯한 교회를 선호하는 이유는 신앙생활에서의 안정감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속에서는 최대한 세상 사람처럼 살면 되고 교회에서는 그 나름대로 버젓한 건물 속에서 수많은 비슷한 사람들의 틈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안정감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교회의 대형화는 현대인의 신앙에 특화 된 현상일 뿐 결코 교회의 성숙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라는 공동체가 신앙의 필수인 것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은 본질적으로 세상 속에 홀로 서 있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기독교, 특히 한국교회에서 교회가 필요 이상으로 강조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교회가 중요한 것인 맞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코람데오, 즉 하나님 앞에서의 단독자로 서야 하며, 예수와의 일대 일의 인격적인 만남과 교제를 나누어야합니다. 또한 어떤 모양으로든지 자기만의 성령의 은사를 받아 세상 속에서 외로이 자신의 사명을 감당해 나가야 합니다.

 

신천지나 북한 등 이단성이 강한 집단일수록 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를 자주 여는 특성이 있습니다. 2008년에는 한국에서 유명한 큰 목사님의 생일파티가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리기도 했었지요.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를 진정 만나지 못함으로 진정한 영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그로 인해 존재적 기반이 취약한 상태로 머물러 있기 때문에 때마다 그런 일들을 도모해서 안정감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진정 예수의 길을 따르고 진정한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뜰 안쪽 공간에서 완전히 홀로 서 있는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예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당당히 서 있는 그를 만나야합니다. 그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 예수의 길을 따르고 진정한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또한 뜰 바깥쪽의 베드로가 되어 봐야 합니다.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망망대해 가운데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존재적 불안을 견뎌 내고, 예수의 사랑을 붙들지 않고는 도무지 이 신앙을 지켜 낼 수 없음을 아는 것, 때때로 예수를 부인하고 배신하는 나약한 자신을 발견하며 통곡할 때 비로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목소리, 막스 프룁스틀

 

일전에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듣고 있는 리히터 58년 음반에서는 한 명의 성악가가 예수와 아리아를 제외한 모든 남성 역할(유다, 베드로, 빌라도, 대제사장)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막스 프룁스틀(Max Proebstl)이라는 성악가입니다. 그 많은 역할 중에서 그의 목소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바로 베드로입니다. 특히 오늘의 장면에서 그는 당황한 갈릴리 시골 어부, 겉모습은 거칠지만 속은 여리고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성질 급한 베드로를 잘 그려 내고 있습니다.

 

막스 프룁스틀(Max Proebstl)이 역할을 맡은 베드로의 음성은 매우 사실적이고 극적입니다. 녹음 당시 프룁스틀의 나이는 45세였는데 이미 결혼한 베드로의 나이와도 잘 맞는 목소리입니다(8:14). 그의 대사는 투박한 갈릴리의 어부였던 베드로가 당황하여 변명하는 모습이 그대로 표현됩니다. 그가 세 번 부인한 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70.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70. Ich weiß nicht, was du sagest.

72.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72. Ich kenne des Menschen nicht.

74.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74. Ich kenne des Menschen nicht.

 

  

한 여종이 모닥불 건너편에서 그를 알아보고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라고 말하자 당황한 베드로는 우선 그 질문 자체에 대해 모른 척을 합니다. “Ich weiß nicht, was du sagest/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이 말을 하고 얼른 자리를 피하려 나가려는데 다른 여종이 또다시 그를 알아봅니다. 처음 대답이 매끄럽지 못했음을 반성했는지 이번에는 훨씬 더 강한 어조로 화를 내듯 ‘Ich kenne des Menschen nicht/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라고 두 번째 부인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더 추궁하자 그는 세 번째 예수를 부인합니다.

 

이 세 번째 대사를 유심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Ich kenne des Menschen nicht!” 두 번째 부인할 때와 같은 대사지만 막스 프룁스틀은 끝까지 부인을 하기는 하는데 내면적으로 자포자기하는 마음과 스스로에게 절망하는 듯한 표현까지 섞어 넣으며 이 대사를 완벽하게 구현해냅니다. 작은 역할이지만 그는 이 음반이 명반으로 길이 남는데 큰 기여를 합니다.

 

바로 이 세 번째 대사를 하는 도중에 닭이 우는 소리가 들렸을 것입니다. 다른 작곡가라면 어떤 식으로든 이 장면에 닭이 우는 소리를 집어넣었을 것이지만 바흐는 역시 대가였습니다. 닭소리가 들어가는 순간 전체 작품은 싸구려 뮤지컬이 되었을 것입니다. 바흐는 그가 의도한 바로 그 순간에 닭이 우는 소리가 듣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울릴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역사상 최고의 에벤겔리스트, 에른스트 헤플리거

 

베드로의 세 번째 부인 후에 이어지는 에반겔리스트의 내러티브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74절 마지막 부분과 75절의 에반겔리스트의 내러티브를 듣고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이야기에 빠져들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에른스트 헤플리거는 이 부분에서 전무후무한 노래를 들려줍니다. 이 부분은 바흐의 마태수난곡 중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이기도합니다.

 

곧 닭이 울더라 75.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Und alsbald krähete der Hahn. 75. Da dachte Petrus an die Worte Jesu, da er zu ihm sagte: ehe der Hahn krähen wird, wirst du mich dreimal verleugnen. Und ging heraus, und weinete bitterlich.

 


특히 마지막 분분, ‘Und ging heraus, und weinete bitterlich/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라고 노래하는 부분은 세상의 모든 극음악의 역사에서 최고 수준의 집중도를 보여 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고 들으시면 더 경탄하시게 될 것입니다. 헤플리거는 바로 이 부분을 노래하기 위해서 숨고르기를 하고 힘을 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부분은 그 유명한 아리아 ‘Erbarme dich, Mein Gott/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의 하나님이여를 앞두고 우리의 마음을 눈물이 터져버리기 일보 직전까지 끌고 가 줍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의 음악 듣기는 다음 곡의 도입부분까지 연결해 보았습니다. 아리아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는 워낙 아름다운 곡이기에 독창회에서 이 곡만 따로 발췌하여 부르기도 하고 바이올린이나 첼로나 피아노 솔로를 위한 곡으로 편곡되어 연주되기도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원곡 전체의 흐름 가운데에서 듣는 것이 가장 감동적입니다. 마태수난곡의 일부로서 베드로의 눈물 장면에 이어지는 기도로서 들을 때 이 노래를 가장 깊이 있게 만날 수 있습니다.



                               엘 그레코 성 베드로의 눈물’ (c.1587~1596)

멕시코시티 소우마야 미술관 소장




엘 그레코의 베드로의 눈물

 

엘 그레코(1541년경~1614)의 그림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의 다른 작품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 크레타섬 출신이라 그레코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는 그만의 독특한 신비적인 종교화들을 남겼습니다. 인물을 세로로 길게 표현하고 과감한 구도를 사용한 그의 그림은 삼 백 년 뒤에서야 등장하는 모딜리아니나 피카소를 연상케 할 정도로 파격적이고 강렬합니다. 종교개혁의 소용돌이가 전 유럽을 뒤 감고 있을 때, 스페인 톨레도에서 활동했던 그는 스페인으로 넘어오기 전에 머물렀던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유행하였던 당대의 매너리즘(Mannerism)화풍과 맥을 같이 하면서도 그리스 출신이라는 독특한 배경을 핑계 삼아 그만의 개성을 고집스레 표현했고 르네상스의 변방이었던 스페인에 아직 남아있던 중세적 신비의 영성을 그만의 화폭에 담았습니다. 당시 스페인은 반종교개혁 진영에 속한 국가로서 종교개혁의 흐름에 저항하며 가톨릭교회 수호를 위한 작품 의뢰가 많았고 개인적이고 신비적인 신앙과 종교적 거룩함을 강조했는데 이러한 풍토가 엘 그레코의 독특한 작품세계와 어우러져 많은 대작을 남겼습니다.

 

모딜리아니의 세로형 인물구도가 디자인적인 미와 작가만의 의도적 차별성을 지향하고 있다면 엘그레코의 세로형 인물구도는 그만의 영성의 자연스러운 발로로서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느껴집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저는 영적이다라는 의미를 육체적 감각을 포함하여 전존재로서 하나님을 인식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시공간인 하늘과 영원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버티컬적인 연결! 엘 그레코의 그림에서는 인간이 하늘과 영원을 향해 영적으로 연결된 존재로서 세로로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엘 그레코의 그림 속의 인물들은 영적인 불꽃처럼 보입니다. 불꽃이기에 경계가 불분명하고 질감도 매우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엘그레코는 그 표현을 하기 위해 소위 잘 그린 그림이기를 포기 했습니다. 톨레도에 정착한 얼마 뒤 그의 실력을 보여 주기 위해 그린 모피를 걸친 여인의 초상화나 베네치아에 머물던 시절에 그린 그림을 보면 그가 결코 그림을 못 그리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티치아노나 틴토레토와 같은 동시대 베네치아의 천재들과 같은 매끄러운 그림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의 인기와 부와 명예를 누리진 못했지만 20세기 이후 그의 그림에 대한 재평가가 일어났고 지금까지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독특하고 강렬한 작품을 남긴 화가로서 평가 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도 스페인 중부의 고도인 톨레도를 방문하면 여기저기에서 그의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원작자의 모사품

 

엘 그레코의 작품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성 베드로의 눈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톨레도 대성당이나 타베라 미술관(Hospital de Tavera)에 있는 작품만을 알고 있는데 같은 이름의 동일한 작품이 톨레도에만 세 점이 전시되어 있고 미국 워싱턴의 필립스 컬렉션, 영국 버나드 캐슬의 보우즈 뮤지엄, 노르웨이 오슬로의 국립미술관에도 같은 그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 작가의 같은 작품이 이렇게 많으니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습니다. 한 점 외에는 모사품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았지만 세계적인 미술관들이 모사품을 버젓이 전시할 이유는 없을 것이고 만일 모사품이라면 최대한 진품과 똑같이 그리려고 했을 텐데 저마다의 작품들이 제각각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토록 과감한 모사품을 그릴 수 있는 것은 원작자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엘 그레코의 일반적인 종교화에 비해서 그렇게 큰 크기가 아니고 작품 자체가 뛰어났기에 이 작품을 본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그림을 주문했고 자존심이 누구보다 강했던 화가는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르게 여러 점의 그림을 그렸던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 관점으로 볼 때 그 중에서 가장 걸작은 멕시코시티 소우마야 미술관에 전시된 것입니다. 대서양을 건너고 그 오랜 시간을 견뎌내는 가운데 그 그림 주변에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떤 사람들이 머물렀던 것일까 궁금해집니다. 소우마야 미술관의 그림을 가장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림의 제목대로 베드로의 눈물때문입니다. 어떤 그림 보다 소우마야 미술관 그림속의 눈물이 가장 아름답게 글썽이고 있습니다.

 

그림 속의 베드로는 오늘 본문의 시점에 있는 베드로가 아니라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흐른 노년의 베드로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는 그 사건 이후로 닭이 울 때 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눈물은 더 이상 그날 밤 가야바의 집에서 뛰쳐나와서 흘린 그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림 속 베드로의 눈가를 적시고 있는 눈물 속에는 십자가의 예수, 부활의 예수께서 보여 주신 용서와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들이 맺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만나 주었던 한 사람, 갈릴리 예수를 향한 그리움이 맺혀 있습니다.





 

posted by

다석, 도올, 머튼, <시편 사색>을 주워서 소꿉놀이

신동숙의 글밭(168)


다석, 도올, 머튼, <시편 사색>을 주워서 소꿉놀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심심해진다. 한때 바깥 일도 해보았지만, 제 스스로가 이 사회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한 사람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자본과 경제 논리로 형성된 이 사회구조 안에선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 나인 것이다. 물론 스스로도 어려서부터 이 사회 안에서 있음직한 성공에 대한 꿈을 꾸어본 적 없이, 몸만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그러니 서로가 아쉬울 것도 없는 사이인 것이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혼자 놀기로 했다. 


설거지를 하다가 종종 쪽창으로 창밖을 본다. 마당 위에 하늘을 보고, 나무도 보고, 풀꽃도 보고, 새소리에 귀가 맑아지기도 하면서, 그렇게 가만히 바라본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이 세상은, 자연은 참! 신기하고 아름다운 곳이라는 마음이 든다. 그렇게 바라보며 숨을 쉬며 사색을 한다. 사색을 하듯이, 몸을 움직여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일상을 살아간다.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틈틈이 찾아오는 심심한 마음이 내겐 가장 반갑고 정겨운 벗이다. 어려서부터 늘 바라본 빈 하늘을 닮은 심심한 마음. 이 심심한 마음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했고, 늘 아쉬웠다. 예전엔 문득문득 찾아오는 심심한 마음이 불청객 같았고, 가슴 쓸쓸한 고통으로 느껴졌지만, 이제는 오히려 찾아와주기를 고대하기도 하고, 늘 먼저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평소에도 누군가와의 약속 시간에 상대방이 늦어서 생기는 공백의 시간을 스스로가 즐기기도 한다. 내 천가방 안에는 언제나 책 한 권이 들어 있으니까. 그러니 어느 누구든 나와의 약속 장소에 다소 늦더래도 너무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미리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거꾸로 입장이 바뀐 경우도 생각해본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나와 같지는 않기에 약속 시간보다는 일 분이래도 먼저 도착하려고 노력하지만 가끔 늦을 때도 있다.


하지만 심심한 마음은 시도 때도 없다. 자유다. 그렇게 놀러오는 반갑고 정겨운 벗인 심심한 마음과 같이 놀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자면,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것이다. 이 심심한 마음과 같이 놀기 위해선, 어릴 적 소꿉놀이처럼 뭔가 손에 만지작거릴만한 것이 필요했다. 땅에 뒹구는 돌멩이도 줍고, 내 몸 둘레에 흙도 슬어 모으고, 발길에 채이는 나뭇가지도 줍고, 찌그러진 깡통에 고인 빗물도 고이 받아서, 소꿉 살림을 모은 후 가만히 앉아서 심심한 마음과 같이 놀기로 하는 것이다. 




그동안 혼자인 줄 알았던 호젓한 산책길에 주워 모아둔 소꿉 살림으로는 성경, 불경, 논어, 중용 등이 있다. 그냥 바람에 스치듯 겉만 스쳐왔다. 동양의 경전은 암호처럼 쓰인 한자에서 길이 막힌 것이다. 이제 막내까지 학교와 학원에 가고, 나는 이 경제사회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앞으로 몇 십 년을 더 살아도 경제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스스로가 잘 알기에, 이왕 앉아서 놀기로 한 김에 소꿉 동무도 여럿 두었다. 다석 류영모, 도올 김용옥, 토머스 머튼, <시편 사색>과 좋은 책들, 그리고 언제나 자연이 매일 만나는 소꿉 동무다.


이렇게 혼자인 듯 심심한 마음과 놀다 보면, 때가 되어 어느 지기가 함께 놀자고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마음 한 구석에 씨앗처럼 품고서, 안으로만 향하려는 양쪽 귀를 바깥으로도 간간히 열어두기로 한다.


참! 재밌다. 가장 기뻐하는 건 심령이다.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심층수처럼 한 줄기의 기쁨이 소롯이 올라온다. 배우는 기쁨, 알아가는 기쁨, 깨치는 기쁨이 빈 하늘을 채운다. 산동네 마을의 작은 모래 놀이터와 학교 운동장 옆 좁은 풀숲 사이로 작은 몸집이 쪼그리고 기어 들어가 헤매이며 주운 돌멩이와 흙과 나뭇가지를 주워서 놀던 어린 날의 소꿉놀이처럼, 아무것도 없는 성공이랄 것도 이룰 것도 없는 소꿉놀이라 자유롭고 홀가분하다. 


자유로워서 어디로든 깊이 궁리해서 들어갈 수 있는 자유로운 여행길이다. 그 길엔 언제나 좋은 거울과 등불이 되어 주는 길벗이 있기에. 어느 날엔 길을 잃어도 좋은 것이다. 어둠에 갇힌다 해도 나쁘지 않은 것이다. 혼돈과 어둠의 밤을 지나서 아침이 오면 언제나 새로운 길과 빛이 나타남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소꿉놀이는 햇살이 찬란히 비추는 인생에서 가장 창의적인 놀이였다. 엄마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손으로 돌멩이를 줍고, 흙을 조물거려서 매일 흙구슬을 만들어도 지겹지 않고, 흙을 돋우어 새로운 길을 내고, 한 줌의 물까지 흘려 보내면, 마른 길이 냇물이 되던 소꿉놀이. 자연스러운 놀이가 되고 깨우침의 공부로 저절로 나아가는 신나는 놀이, 매번 새로운 길이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걸어가는 길. 뚜벅이 걸음이다. 아무리 갈 길이 멀어도 지금은 뛰어서 가지는 않으려 한다. 매 순간이, 매 순간의 들숨날숨이, 매 순간의 마음이, 그렇게 깨어 있는 매 순간이 오롯이 살아 있는 소중한 순간인 것이다. 어차피 북극성에 닿을 수 없지만, 북극성이 거기 있기에 북극성을 바라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수 있는 더디지만 꾸준하기를 바라는 글숲 산책길이다. 


쪼그리고 앉아서 놀다가 쉬엄쉬엄 걷다가 허물고 다시 짓는 모래성이다. 느리고 더딘 필사는 걸어가는 도보 여행, 지구별 산책길이다. 배움이 놀이가 되고, 재미가 그림자처럼 저절로 따라오는 의미의 길, 의미를 따르는 인생의 즐거운 놀이다. 의미를 채우는 일은 영혼이 좋아하는 일이라는 선현의 말이 달빛같다.


아침 설거지를 일찍 끝내기도 하고, 어느 날은 미루기도 하면서, <도올의 대학>을 들으며 받아쓰기를 한다. 아침 겸 점심밥을 라면과 먹다 남은 오이와 수박과 식은밥으로 간단히 떼우기도 한다. 얼마전까지 정독한 다석 류영모의 <다석 전기>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무척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필사를 해오고 있다. 


오늘도 오른쪽 어깨 속에 작은 돌멩이가 생겼다. 평소 글을 쓸 때 손에 불필요한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습관이 있는가 싶어서, 필사하는 내내 어깨와 팔과 손과 손가락과 팬의 힘을 요리조리 조율하며 지켜보면서 적는다. 아무리 글을 적어도 팔과 어깨가 아프지 않은 비결을 아는 분이 있다면 가르쳐 주시면 참 좋겠다. 


하지만 제 아무리 재미가 있어도, 그 재미마저도 움켜 잡으려는 순간의 욕심이 들면, 마음이 금새 돌처럼 단단해질까봐. 이해인 수녀님의 시 대여섯 편을 필사하면서 마음을 구름처럼 순하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틈틈이 크게 누워서 기지개도 시원하게 켠다. 눈은 벌써 창가에 가 있다. 눈을 감아도 빈 하늘이다. 


하루해는 짧아서, 박꽃이 하얗게 꽃을 피우는 저녁답이면,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오른쪽 어깨를 작은 돌덩이처럼 만들어 놓은 하루치의 소꿉놀이성도 저녁이면 허물어진다. 밤이면 달이 이지러지듯 스스로가 그렇게 허물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틈틈이 앉아서 침묵으로, 관상 기도의 진짜 성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언제나 심심한 빈 하늘 뿐이다. 그래도 내일이면 또 소꿉 동무들을 모아서 소꿉놀이를 해야지 하는 기대감을 품고서 잠에 든다. 다음 날 다시 놀아도 언제나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심심한 마음 뿐이겠지만.



posted by

삶을 모르고서야

한희철의 얘기마을(3)


삶을 모르고서야




“제가 열 살 때 샘골로 글을 가르치러 댕겼어요. 국문이죠. 그때 칠판이 있었겠어요? 그런데 샘골 노인들이 참 지혜로웠어요. 어떻게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면서 쟁반에다 좁쌀을 담아 준비를 해 둔 거예요. 손가락으로 좁쌀 위에 글을 썼다가 흔들면 지워지니 아, 그 얼마나 편하고 좋아요.”


“요샌 큰일이에요, 시골에도 도둑이 많으니. 며칠 전엔 성희 네도 도둑을 맞을 뻔 했대요. 자가용 타고 온 웬 남자들이 서성거려 그 집에 온 손님인 줄로 알았지 도둑인 줄 생각이나 했겠어요.”


“바로 그날 부놋골에서 도둑을 맞았데요. 금반지 다섯 개와 쌀 두가마를 잃어버렸대요.”


“흥호리에선 경운기 앞대가리만 빼갔대요. 값나가는 쪽이 앞쪽이니까 대가리만 빼서 차에 싣고 갔나 봐요.”


“노림에서는 교대로 당번을 선대요. 마을에 차가 들어오면 무조건 차번호를 적어 둔다는 거죠. 도둑을 막으려고 그렇게 한대요.”


“고추씨는 잘 나왔어요?”


“아뇨, 잘 안 나와서 다섯 봉 더 사왔어요.”


“작년에 그 고생을 하고서도 고추를 또 심어요?”


“그래도 고추가 제일 나은 걸요 뭐.”


이런 저런 오가는 이야기들, 속회모임을 마치고 나면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목사님은 그런 자리에선 은혜로운 간증이나 성경 이야기만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는 그렇게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들뿐이다. 이야기로 나눌 만큼 은혜를 체험한 것도, 성경을 아는 것도 없는 빈약한 믿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살아가는 이야기 또한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난 삶을 배운다. 삶을 모르고서야 말씀이 뭔 소용 있을까, 때마다 그런 마음으로. 


(얘기마을, 1989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뜻밖의 손님  (2) 2020.06.22
뜻밖의 소풍  (0) 2020.06.21
자조  (0) 2020.06.20
삶을 모르고서야  (0) 2020.06.19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0) 2020.06.18
그것밖엔 될 게 없어서  (0) 2020.06.17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