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손님

  • 감동입니다

    정석중 2020.06.23 05:06
  • 지난사역현장 따스한 이야기
    감동입니다

    정석중 2020.06.23 05:07

한희철의 얘기마을(6)


뜻밖의 손님


‘어렵게 준비된 잔치일수록 아름다운 법’이라던 생텍쥐페리의 말은 살아가며 늘 새롭게 다가온다. 1989년 부활절은 생텍쥐페리의 말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하는 날이었다.


오토바이 뒤에 아내와 딸 소리를 태우고 부활란이 든 봉투를 한 손에 잡고선 강가로 갔다. 부활절 낮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을 때, 강가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이 생각났던 것이다.  팀스피리트 훈련을 끝내고 철수를 기다리고 있는 군인들이 조귀농으로 가는 강가에 주둔하고 있었다. 혹 그들 중 오늘이 부활절임을 기억하면서도 여건상 예배에 참석치 못한 이가 없을까 싶어 부활란 얼마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당신 영어 할 자신 있어요?” 


강가로 나가자는 말에 웃으며 묻는 아내 말에 “까짓것 그거 못 하려고? 그냥 주면 되지 뭐.” 쉽게 대답했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짐짓 걱정이 되었다.


강가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미식축구를 하고 있었다. 따뜻한 봄볕, 모두들 웃옷을 벗곤 허리에 노란 띠와 빨간 띠를 둘러 편을 나눠 가지곤 달걀 모양의 공을 던지며 신나게 뛰고 있었다.


동네 꼬마들이 나란히 언덕에 앉아 그들이 뛰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보초는 흑인 병사였다. 둥근 타래로 된 철조망으로 빙 진지를 둘러치고선 입구엔 보초가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전도사란 직책을 나는 단어를 몰라, 보초서는 미군은 뜻을 모르지 싶어 단강감리교회 목사로 나를 소개한 뒤, 오늘이 부활절이라 부활란을 전하러 왔노라고 짧은 영어로 말을 건넸다. 그렇게 전하는 계란을 받아도 되는 건지, 얼마 되지 않는 계란을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그는 의아했나 보다. 뭐라고 열심히 이야기를 했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보초는 지나가는 동료를 불러 무엇인가를 부탁했고, 잠시 뒤 한국군 한 명이 다가왔다. 카투사 군인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그는 중대장도 좋아할 거라며 계란을 받았다. 저녁예배가 8시에 있음을 알려주고 돌아왔다. 




저녁예배 재종을 치고선 복음성가를 부르고 있는데, 밖에서 군인들이 날 찾는다고 한다. 나가보니 차를 타고 온 군인들이 교회 마당을 서성이고 있었다. 두 명의 미군 외엔 모두가 한국 군인이었다. 두 명의 미군이 소대장과 주임상사라고 선임자가 소개를 한다. 그들을 위해 자리 한 쪽을 마련하고 성경 찬송을 모아 전했다. 뜻하지 않은 군인들의 방문에 한편은 놀라면서도 반가워하는 교우들.


부활절이었으면서도 아침에 일들 나가느라 예배 못 드린 교우들이 봄볕에 그을린 모습으로 참석하여 방문한 군인들과 함께 저녁예배를 드리는 예배당이 모처럼 꽉 찼다. 예배를 마치고는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그냥 헤어지기엔 아쉬운 만남, 급히 준비한 커피를 마시며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잠깐 단강교회를 소개한 뒤, 군인들이 돌아가며 자기의 계급과 이름 고향 등을 소개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다함께 ‘고향의 봄’ 노래를 불렀다. 얼마 전 아들을 군에 보낸 지집사님은 모두들 내 자식 같다며 연신 군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76세 된 김천복 할머니가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라는 노래를 옛 가락으로 몇 절인지 모르게 길게 불렀고, 교우들은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이라는 복음성가를 율동까지 곁들여 불렀다.


교인을 대표해서 유보미 보건소장님이 인사를 했다. “하루빨리 남북통일이 되어서 다시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훈련 안 해도 좋은 그날이 오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미군 소대장의 인사에 이어 군인들은 멋진 반동과 함께 군가 두 곡을 힘차게 불렀다. 김치 생각이 간절하다는 말에 한 양동이의 김치를 전했고, 지집사님은 다음날 저녁식사에 그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웃음 속 많은 시간이 지났다. 모두들 일어서서 돌아가며 인사를 나눴다. 짧은 시간 함께 했으면서도 마주잡는 손엔 아쉬움이 가득 담겼다. 현관에 나와서도 한참을 인사해야 했다. 돌아서기도, 보내기도 아쉬운 사람들.


그때 주임상사가 교회를 위해 써 달라며 1달러짜리 네 장, 4달러를 전했다. 받은 우리도 우리려니와, 이국땅에서의 훈련 중 한 시골 교회에서 저녁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드린 오늘의 기억은 그에게도 오래 가리라.


아쉽게 서로가 인사를 나누곤 그들은 트럭에 올라 진지로 돌아갔다. 모퉁이를 돌도록 내내 손을 흔들며. 부활절이자 단강교회의 두 번째 생일, 뜻밖의 손님들의 방문으로 89년 부활절과 교회 생일은 뜻 깊은 날이 되었다.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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