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한희철의 얘기마을(125)


들꽃


단강에 와서 깨닫게 된 것 중 하나가 들꽃의 아름다움입니다. 곳곳에 피어있는 이런저런 들꽃들. 전엔 그렇게 피어있는 들꽃이 당연한 거라 여겼을 뿐 별 생각 없었는데, 요즘 와 바라보는 들꽃은 더 없이 아름답고 귀하게 여겨집니다. 




쑥부쟁이, 달맞이꽃, 달개비, 미역취 등 가을 들꽃이 길가 풀섶에, 언덕에 피어 가을을 노래합니다.

때를 따를 줄 아는 어김없는 모습들이 귀하고, 다른 이의 주목 없이도 자신의 모습 잃지 않는 꿋꿋함이 귀합니다. 제 선 자리 어디건 거기 넉넉히 뿌리를 내리고 꽃으로 피어나는 단순함이 또한 귀합니다. 꾸밈없는 수수함은 또 얼마나 정겨운지요.


필시 우리도 들꽃 같아야 할 것, 지나친 욕심과 바람일랑 버리고 때 되면 제자리에서 피어나 들꽃처럼 세상을 수놓을 것, 주어진 시간을 노래할 것, 들꽃을 바라보며 들꽃 같은 삶을 바래봅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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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찬 온기

신동숙의 글밭(257)


알찬 온기




혼자 앉은 방

어떻게 알았을까


책장을 넘기면서 숨죽여 

맑은 콧물을 훌쩍이고 있는 것을


누군가 속사정을 

귀띔이라도 해주었을까


있으면 먹고 없으면 

저녁밥을 안 먹기로 한 것을


들릴 듯 말 듯 

어렵사리 문 두드리는 소리에

마스크를 쓴 후 방문을 여니


방이 춥지는 않냐며 

내미시는 종이 가방 속에는

노랗게 환한 귤이 수북하다


작동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놓아주시는 난로에 빨간불이 켜지고

방 안에 온기가 감돈다


가을 햇살처럼

알찬 온기에


시간을 잊고서 

밤 늦도록


<무지의 구름>과 <신심명(信心銘)>의 허공 사이를

유유자적(悠悠自適) 헤매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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