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밝히는 한 줄기 빛 되어



“참으로 주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요새이시며, 곤경에 빠진 불쌍한 사람들의 요새이시며, 폭풍우를 피할 피난처이시며, 뙤약볕을 막는 그늘이십니다.”(사 25:4)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소서 절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전통적인 전례를 중시하는 교회는 지난 주일을 맥추감사주일로 지켰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탈출공동체가 땅에 파종하여 거둔 첫 번째 열매를 하나님께 바친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여름에 수확하는 곡물이 보리라 하여 맥추절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래저래 7월은 농부들에게 분주하고 힘든 달입니다. 보리, 밀, 귀리를 베어내고, 가을 농사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농가월령가는 이맘 때의 풍경을 이렇게 그립니다. “大雨도 時行하고 더위도 극심하다. 초목이 무성하니, 파리, 모기 모여들고, 평지에 물이 괴니 악머구리(참개구리) 소리로다.”

남부 지방에는 벌써 큰 비가 내려 많은 피해가 났다고 합니다. 망연자실 하늘만 바라볼 사람들의 마음을 떠올리니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서울에도 많은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가 있었습니다. 화단을 관리하는 권사님은 아끼는 백합꽃이 세찬 비에 스러질까봐 지지대에 우산을 묶어 꽃 위에 씌워 주었습니다. 우산을 쓰고 있는 백합화를 보며 저는 빙그레 웃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최영철 시인의 ‘우짜노’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어, 비 오네/자꾸 비 오면/꽃들은 우째 숨쉬노/젖은 눈 말리지 못해/퉁퉁 부어오른 잎/자꾸 천둥 번개 치면/새들은 우째 날겠노/노점 무 당근 팔던 자리/흥건히 고인 흙탕물/몸 간지러운 햇빛/우째 기지개 펴겠노/공차기하던 아이들 숨고/골대만 꿋꿋이 선 운동장/바람은 저 빗줄기 뚫고/우째 먼길 가겠노”

시인의 오지랖이 넓습니다.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꽃과 잎들의 안부를 걱정하고, 새들이 젖은 깃으로 날 수 있을까 걱정합니다. 흙탕물을 슬쩍슬쩍 어루만지던 햇빛이 기지개를 펼 수 있을지 걱정하고, 먼 길 가야 하는 바람까지 염려합니다. 시인 반칠환은 이 시에 대한 감상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세상사람 모두가 저런 ‘우짜노’를 연발했으면 좋겠다. 창문 밖 장맛비를 내다보며 정치인이, 군인이, 장사꾼이, 도둑놈이, 시인이 모두 손을 놓고 꽃잎 걱정, 풀잎에 매달려 빗방울 뭇매를 맞을 왕아치, 풀무치, 때까사리, 소금쟁이 걱정을 하다가 제가 정치인인지 사기꾼인지 도둑놈인지 시인인지 몰라 잠시 멍청해지는 그런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덕분에 전쟁광이 좀 손해보고, 무기상이 셈하다 갸우뚱하고, 도둑놈 장물 수입이 줄고, 히히- 시인은 시 한 편 더 건지는 그런 시간이 많이많이 늘었으면 좋겠다.”(반칠환, ‘이 아침에 만나는 시’, 동아일보, 2003/08/22 자)

이악스러운 마음들이 빚어내는 살풍경 속에 살다보니 이 마음이 더 없이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가끔 산책길에서 만나는 민달팽이나 지렁이를 풀 속으로 슬쩍 던져주는 것도 이 시가 떠올라서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우산을 쓴 백합화 이야기의 후일담입니다. 하룻밤 지나고 나자 우산 하나가 없어졌습니다. 어느 취객이 우산이 필요했던지 화단의 꽃을 밟으며 기어코 그 우산을 뽑아 가져갔던 것입니다. 몇 해 전에는 활짝 핀 해바라기를 댕강 꺾어간 분도 있습니다. 화단에 심긴 화초를 뽑아가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사소해 보이는 그런 도둑질이 밉게 여겨집니다. 염치와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은 선의를 품고 사는 이들의 마음에 어두운 그늘을 만듭니다. 영혼의 빈곤은 물질의 빈곤보다 심각합니다. 물질의 빈곤은 채울 수 있지만 영혼의 빈곤은 치유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너무 낙심하거나 세상을 어둡게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은 좋은 마음으로 사는 이들이 더 많으니 말입니다. 그들은 마치 공기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눈에 띄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있음 그 자체로 우리 삶이 허무의 벼랑으로 곤두박질치지 않도록 지켜주는 이들입니다. 사는 동안 우리는 누군가의 호의를 입을 때가 많습니다.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것이 부정적 기억일 수도 있지만 긍정적 기억일 때도 많습니다. 탄식시편의 시인들을 떠올려 보면 됩니다. 그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세태에 멀미를 느낍니다.

“내가 사람을 잡아먹는 사자들 한가운데 누워 있어 보니, 그들의 이는 창끝과 같고, 화살촉과도 같고,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과도 같았습니다.”(시 57:4)

“그런데 나를 비난하는 자가 바로 너라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바로 내 동료, 내 친구, 내 가까운 벗이라니! … 그의 입은 엉긴 젖보다 더 부드러우나, 그의 마음은 다툼으로 가득 차 있구나. 그의 말은 기름보다 더 매끄러우나, 사실은 뽑아 든 비수로구나.”(시 55:13, 21)

이 시편 기자들의 마음을 실감하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탄식이 절로 쏟아져 나올 때 우리 영혼은 황무지로 변하고 맙니다. 그러나 시인들은 자기들의 그런 마음을 속에 쌓아두지 않습니다. 그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가 정직하게 마음을 드러냅니다. 그 순간 그를 확고하게 사로잡고 있던 무거움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중첩된 어둠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던 그에게 한 줄기 빛이 비쳐듭니다. 그 빛은 기억을 통해 다가옵니다. 생의 고빗길에 처할 때마다, 곤경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허둥거릴 때마다, 우리를 찾아오셔서 힘이 되어주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떠올리는 순간 비애는 줄어들고, 넘어진 자리를 딛고 일어설 힘이 스며듭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계 1:8)께 소망을 둔 사람은 생의 시련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 시련에 압도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는 그런 근원적인 희망을 붙들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진/김승범

 

지난 화요일에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부산 YWCA 창립 75주년 감사예배에 초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가는 길에 부산 인문학 아카데미 회원들과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부산이 아주 먼 곳처럼 여겨졌지만 고속열차가 생긴 이후에는 그 거리가 큰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기차에서 읽으려고 제가 선택한 책은 통일 부총리와 교육 부총리를 역임하셨던 사회학자 한완상 박사님의 회고록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였습니다. 책 제목이 이사야의 비전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성경을 조금이라도 아는 분들은 다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오가는 기차 안에서 그 책을 다 읽은 후 든 생각은 하나님의 꿈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현실 정치에도 참여했던 지식인인 그는 자신의 사상의 근저에 기독교 신앙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습니다. 난폭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세상을 평화로운 세상으로 바꾸려는 열망을 그의 속에 심어준 것은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금도 이사야 11장 6절부터 9절에 이르는 역사의 비전을 실현하려는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교육 부총리 시절에 그는 교육이 비정하고 잔인한 승자만을 축복해 주는 기능으로 전락한다면 짐승의 세상보다 못한 세상이 될 수도 있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짐승은 배가 부르면 맛있는 사슴이 지나가도 잡아먹지 않지만, 인간 정글의 강자들은 아무리 배가 불러도 계속 약자들을 착취하고 약탈하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욕구는 생물학적으로 자동 조절되지만 인간의 탐욕은 그렇게 조절되기 힘듭니다. 가질수록 더 가지려하기 때문입니다.”(한완상,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후마니타스, 2017, p.302)

한완상 박사님은 진정한 평화의 세상은 갑이 을의 입장에서 상황을 생각하고 해석하는 단계인 역지사지(易地思之)나, 갑이 을의 가슴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단계인 역지감지(易地感之)를 지나 갑이 을의 주식을 먹으며 자기의 체질을 을의 체질로 바꿀 때 열린다고 말했습니다(한완상, 앞의 책, p.340-341). 사석에서 만났을 때 한 박사님은 그것을 일러 역지식지(易地食之)라 명명한 바 있습니다. 험하고 난폭한 세상이지만 한 번 품은 그런 꿈을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는 것처럼, 우리 속에도 이런 신앙의 불꽃이 타오르면 좋겠습니다.

7월을 맞이하며 품었던 우리의 기대는 점점 탄식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점점 나아져서 곧 일상이 회복될 것 같은 기대를 품었지만,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확진자가 아주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경각심이 다소 흐트러진 데다가, 전염력이 강한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활동적인 젊은이들의 감염이 늘고 있는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입니다. 정부와 방역 당국은 수도권 상황이 매우 위급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어렵게 열었던 예배당 문을 다시 닫아야 할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습니다. 저도 긴장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도 정말 조심스럽게 이 상황을 이겨내시기를 빕니다. 병과 사고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계십니다. 어디에 부딪쳐서 다치고, 넘어져서 골절상을 입고, 뜻밖의 질병이 찾아와 혼란을 느끼는 모든 분들에게, 그리고 조심스럽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모두 이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평화.

2021년 7월 8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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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제비



이속장님이 갖다 준 고추모종을 심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집에 놀러 온 종순, 은옥이와 함께 교회 뒤에 있는 작은 밭으로 올랐다. 


전에 살던 반장님 댁이 담배모종을 위해 뒷산 한쪽을 깎아 만든 비닐하우스가 있던 자리이다. 언덕으로 오르는 곳에 S자 모양의 계단을 만들고선 그 밭에다 토마토, 빨간 호박, 참외, 도라지 등을 조금씩 심었다. 마른날이 계속되면 물도 주고 가끔씩 풀을 뽑기도 한다. 우리끼리 아기 이름을 따서 ‘소리농원’이란 이름을 붙였다. 

밭으로 오르는데 보니 제비 한 마리가 땅에 떨어져 죽어 있었다. 어디 잘못 벽에 부딪쳤지 싶다. 작은 몸뚱이, 저 작은 몸뚱이에서 그 힘찬 날개 짓이 나오다니.


언제 죽었는지 한쪽 날개를 집어 드니 등짝엔 벌써 개미들이 제법 꼬여있었다. 죽은 제비를 들자 종순이와 은옥이가 “엄마!” 하며 뒷걸음으로 도망을 친다. 삶의 여정이 짧았기에 아이들일수록 죽음에 익숙한 건 아닐까 싶었지만, 죽음이라는 의미보다는 그 모양이, 축 늘어진 날개의 흉한 모습이 그들에겐 무섭게 보였나 보다.

“이리와 봐”


양지 바른 언덕에 부삽으로 작은 구덩이를 팠다. 구덩이 안에 죽은 제비를 똑바로 눕혔다. 마음껏 날던 푸른 하늘을 바라보도록. 그리고는 조금씩 흙으로 덮는다.


“전도사님, 뭐하는 거예요?” 


쪼그려 앉으며 종순이가 묻는다.


“응, 제비가 죽었잖니. 제비가 하나님 나라로 갔으니까 우리가 묻어줘야지.”

아이들은 눈을 깜박 거릴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죽음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작은 나뭇가지 두 개를 철사 줄로 묶어 십자가를 만들었다. 방금 제비 묻은 곳에 작은 돌멩이로 두들겨 십자가를 세웠다.


“그건 뭐예요?”


종순이가 또 묻는다.


“십자가야. 그래야 여기 제비가 묻혔다는 걸 알지, 그래야 발로 밟지 않고 제비를 위해서 기도도 해주고.”


신기하고 생소할 뿐 아이들은 모른다. 죽은 제비를 왜 굳이 땅속에 묻는지. 죽은 그 자리에 왜 나무막대 십자가 꽂는지를. 

그러나 아이들아, 혹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너희 거친 삶에서 죽음의 기운을 느낄 때, 한없이 마음이 아래로만 꺼져들 때, 죽은 제비 땅에 묻고 십자가 세웠던 오늘 기억 떠올리며, 죽음가까이 십자가가 서 있는 것, 그게 얼마만한 위로인지 너희가 알았음 싶구나. 어렴풋한 기억으로라도.

-<얘기마을>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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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을 달리는

 



저녁밥을 시켰다
빗속에 망설임도 잠시

배고프다 보채는
아들의 성화를 못 이긴다

음식을 내려놓으신 후
달아나시려는 기사님에게

시원한 거 한 잔 드릴까요? 했더니
살풋 웃으시면서 마음만 받겠다고 하신다

다른 기사님들은 테이프를 붙여서라도 
음료를 가져가신다고 했더니

그러면 시원한 거 말고
따뜻한 물 한 잔만 주세요, 하신다

온종일 비 맞고...
말씀이 뚝뚝 끊겨도 더 묻지 않는다

얼른 뜨거운 물 반 찬물 반 담아서 
커피와 설탕을 조금만 탔다

잠시라도 나무 의자에 앉아서 드시고 가시랬더니
고맙다고 하시며 문을 나가신다

온종일 그칠 줄 모르는 늦은 장맛비가 
어스름 저녁 하늘을 짙게 물들이는데

비옷 안으로 삐쩍 마른 나무처럼
오토바이 옆에 서서 떨리던 몸을 녹이는지

걷기에도 미끄러운 빗길을
또 달려야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빗속을 달리는
우리의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기다림

짬뽕 면줄기가 빗줄기처럼 눈물처럼 
배고픈 아들 입에서 뚝뚝 끊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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