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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자리> 출간 책 서평75

강고한 성벽의 균열과 고요한 호수의 파문 강고한 성벽의 균열과 고요한 호수의 파문 『일그러진 영웅 vs 만들어진 영웅』은 한신대와 클레어몬트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현재 LA 향린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곽건용 목사가 쓴 사울·다윗 평전이다. 저자는 이미 다윗과 사울에 대한 수많은 책들이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책을 더한 이유가 이 주제에 대한 최근의 학문적 성과를 반영하면서 일반 독자들도 읽을 수 있는 우리말 책을 써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다윗 편향적인 사무엘서의 시각에서 벗어나, 그간 홀대받고 왜곡되었던 사울의 본모습을 발견하고 성경 최고의 영웅인 다윗의 어두운 뒷모습에도 주목하게 되길 기대한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내려놓기 힘들 정도로 흥미진진한 이 책은 탁월한 이야기꾼이자 성실한 학자인 .. 2019. 10. 30.
다윗을 찬란한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서 사울을 일그러뜨려야 만 했을까? 다윗을 찬란한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서 사울을 일그러뜨려야 만 했을까? 사울은 오랫동안 잊혔던 인물이다. 그의 이름과 생애를 대충 아는 사람에게조차 잊혀왔다. 반면 다윗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추앙받아왔다. 무엇이 사울을 잊힌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다윗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추앙받아왔을까? 우리가 갖고 있는 사울의 초상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 반면 다윗은 아름답게 만들어져 있다. 누가 사울을 이토록 일그러뜨렸을까? 무엇이 다윗을 이처럼 화려하게 꾸몄을까? 사울은 이스라엘의 사사들이 다스렸던 지파공동체시대에서 왕이 통치했던 군주제시대로 넘어가는 이행기의 첫 왕이었다. 당시 고대 중동지역의 거대 문화권인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는 물론이고 가나안의 작은 종족들도 모두 왕이 다스렸다. 이스라엘에도 왕정이 낯선 제.. 2019. 10. 11.
구도와 순례로서의 독서를 실천한 옛사람의 숨결 구도와 순례로서의 독서를 실천한 옛사람의 숨결 1.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의 한두 편을 외우거나 아니면 몇 구절이라도 암송하는 구절이 있을 듯합니다. 저도 어린 시절 교회에서 시편 1편과 23편을 외우곤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시편󰡕은 제게 어떤 불편함과 곤혹감을 안겨주는 책이 되었고, 그래서 멀리한 적도 있습니다. 까닭은 시인의 탄식과 원망 속에 선인/악인,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타인을 향한 분노와 상대방을 적대하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기 때문입니다.(의 표층만을 본 사람의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2. 그러나 어느 날, 을 한 편 한 편 다시 읽어나갔습니다. 무겁고 지친 마음 때문일까, 󰡔시편󰡕이 제 마음을 그대로 대신 말해주고 있는 듯했습니다. 에 이끌리어 책을 찾다 C.S. 루이스의 󰡔.. 2019. 7. 23.
‘새파랗게 질린’시대에, ‘하나님조차 안쓰러워 보이는’ 시절에 ‘새파랗게 질린’시대에 ‘하나님조차 안쓰러워 보이는’ 시절에 부제(副題)는 다. 읽으니 우선 글이 저자의 인품처럼 잔잔하고 진진하다. 묵직한 중량감이 독서를 차분하게 한다. 인용된 예레미야 시대의 정세와 동요는 화염과 폭풍 같을지라도 그 숨 가쁜 현실을 행간에 묻어둔 채 담백하게 기록된 문장들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어 내려가는 저자의 말씀을 대하는 진중한 숨결이 느껴진다. 실존이 놓인 현실과 더불어 가는 슬픔 그것은 우선 겸손한 자세다. 어떤 겸손인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복중(腹中)에 짓기 전에 내가 너를 알았고, 네가 태(胎)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 1:4,5)”,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나는 아니라.. 2018. 11. 22.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가야 할 길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가야 할 길 르네상스인 미켈란젤로는 율리오 2세의 요청으로 시스트나 성당 천장에 ‘천지창조’ 대작을 그렸다. 그는 천장을 9개의 틀로 나누고 그것을 다시 34개 면으로 분할하여 작업했다. 이미 ‘피에타’와 ‘다비드 상’을 통해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그가 프레스코화를 그린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교황과의 계약 때문에 마지못해 감당한 일이었다. 1508년에 시작하여 완성하기까지 했으니 무려 4년의 시간이 걸렸다. 위태로운 비계 위에 올라가서 거의 누운 자세로 그림을 그리느라 그는 건강이 크게 악화되기도 했다. 아직 종교개혁이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돈과 권세를 탐닉하는 타락한 교권에 대한 저항은 저 기층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그런 상황을 잘 알고 .. 2018. 10. 11.
해현경장(解弦更張) 해현경장(解弦更張) 굳이 프랙탈 이론을 들지 않더라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는 우리의 일생을 닮게 마련이다. 인생은 오늘의 점철이라지 않던가? “이 세상 뭘 하러 왔던고?/얼굴 하나 보러 왔지,/참 얼굴 하나 보고 가잠이/우리 삶이지.” 요즘 들어 함석헌 선생의 시 ‘얼굴’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그만큼 삶이 부박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가만히 앉아 살아오는 동안 마주쳤던 그 많은 얼굴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맑고 고운 얼굴, 따뜻하고 고요한 얼굴, 수심 가득한 얼굴, 비굴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 독기 어린 얼굴…. 그러다가 문득 다른 이들의 눈에 비친 ‘내 얼굴은?’ 하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이 아뜩해진다. 누구나 한번쯤은 길을 걷다가 창문에 얼비친 자기 모습이 낯설다고 생각했던 경.. 2018. 4. 23.
“다른 사람들은 우리 둘을 무슨 관계로 볼까?” “다른 사람들은 우리 둘을 무슨 관계로 볼까?” 1968년에 결혼한 후 50주년을 맞이한 지금까지도 우리 부부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둘만 있어도 깔깔대며 잘 웃는다. 우리 부부의 웃음 묻은 이야기를 가끔씩 이야기하면 재미있다고 글로 써서 책을 내라는 사람도 있고 나를 오랜만에 만난 사람은 그동안 『민영진 어록』을 발표하라고 한다. 이것이 언제 책이 출간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우리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어 독자 여러분에게 웃음을 드리고 싶다. 우리의 이런 꾸밈없는 적나라한 이야기들이 흠이 될지 욕이 될지도 모를 것 같아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나의 삶이요 나의 사랑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냥 웃음을 선사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44년생이고 그이는 40년생이니 나는 그이보다 네 .. 2018. 4. 21.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처럼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처럼 대만신학자 송천성은 어머니를 가리켜 ‘하나님의 공동 창조자’라 말했다. 생명을 낳아 기르는 행위의 소중함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날이 갈수록 그 말이 실감난다. 현대문명은 끝없이 욕망을 부추기고, 그 욕망의 폐쇄회로에 갇힌 이들은, 기쁨을 누릴 줄 모른다. 이웃은 신이 보내주신 선물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합리성과 효율이 최상의 가치로 대접받는 세상에서 삶은 부박하고 공허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마음 내려놓을 곳을 몰라 방황한다. 고향 상실, 안식 없음이 지금 우리 삶의 실상이다. 괴테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세상을 구한다”고 말했다. 여성이 아니라 여성적인 것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여성적인 것이 대체 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긴 하지만, 생명.. 2018. 4. 20.
말씀은 다시 한 번 사람의 몸을 입고 말씀은 다시 한 번 사람의 몸을 입고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1978년 서울 냉천동 감신대에 입학하여 신학의 걸음마를 배울 무렵, 저는 선생님께 구약을 배웠습니다. 과목의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몇 과목이나 되었는지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저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선생님께 배운 가장 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목회의 길을 걸으며 내내 마음에 두고 있는 가르침입니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수도원을 연상시킬 만큼 강의실 분위기는 진지했는데, 말씀 한 구절을 읽는 모습을 통해서도 말씀을 허투루가 아니라 공손하게 대하시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말씀을 대하는 가장 마땅한 자세가 경외심이라는 것을 저는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얼마 전 이야기입니다.두어 해.. 2018.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