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꽃자리> 출간 책 서평77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처럼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처럼 대만신학자 송천성은 어머니를 가리켜 ‘하나님의 공동 창조자’라 말했다. 생명을 낳아 기르는 행위의 소중함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날이 갈수록 그 말이 실감난다. 현대문명은 끝없이 욕망을 부추기고, 그 욕망의 폐쇄회로에 갇힌 이들은, 기쁨을 누릴 줄 모른다. 이웃은 신이 보내주신 선물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합리성과 효율이 최상의 가치로 대접받는 세상에서 삶은 부박하고 공허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마음 내려놓을 곳을 몰라 방황한다. 고향 상실, 안식 없음이 지금 우리 삶의 실상이다. 괴테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세상을 구한다”고 말했다. 여성이 아니라 여성적인 것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여성적인 것이 대체 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긴 하지만, 생명.. 2018. 4. 20.
말씀은 다시 한 번 사람의 몸을 입고 말씀은 다시 한 번 사람의 몸을 입고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1978년 서울 냉천동 감신대에 입학하여 신학의 걸음마를 배울 무렵, 저는 선생님께 구약을 배웠습니다. 과목의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몇 과목이나 되었는지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저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선생님께 배운 가장 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목회의 길을 걸으며 내내 마음에 두고 있는 가르침입니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수도원을 연상시킬 만큼 강의실 분위기는 진지했는데, 말씀 한 구절을 읽는 모습을 통해서도 말씀을 허투루가 아니라 공손하게 대하시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말씀을 대하는 가장 마땅한 자세가 경외심이라는 것을 저는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얼마 전 이야기입니다.두어 해.. 2018. 4. 19.
엿듣다 보면, 어느새 내 바구니에 풍요로운 결실이 가득하다 엿듣다 보면, 어느새내 바구니에 풍요로운 결실이 가득하다 - 김기석의 를 읽고 믿음 김기석의 를 읽으면서 나는 내가 오랫동안 묻기만 해온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를 찾는다. 이 책의 저자에게서 대화의 상대가 되어, 혹은 편지의 수신자가 되어 해묵은 문제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찾을 수가 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혹은 ”믿는 사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눅 18:8) 예수께서 그의 청중에게 던진 질문이다. 그리스어 본문은 두 가지 번역이 다 가능하다. 당신이 올 때 이 세상에 과연 “믿는 사람” “믿음을 가진 사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나, 당신이 세상에 오실 때 이 세상에서 진정한 “믿음”을 보실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나 다 같은 말이다. 예수 당시는 이미 그가 살던 땅.. 2018. 2. 26.
DMZ를 홀로 걷는 한 마리 벌레에게 DMZ를 홀로 걷는 한 마리 벌레에게 벌레 한 마리,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걷는다. 강원도 고성에서 임진각까지 약 380km의 길을 열하루 동안 걷는다. 병상에 눕는 대신 걷는 것을 택한다. 걸어야 그 상처가 아물고 새로운 지혜를 얻겠기에…. 길거리와 광장에서 사람을 부르던 그 “지혜”(호크모트, 잠언 1:20)가 이번에는 잘린 허리 상처 난 길에서 그를 부른다. 최선을 다하고도 배신과 절망과 좌절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영혼을 지혜는 인적 드문 비무장지대로 불러낸다. 지혜는 하나님의 현신이다(욥기 28:27). 성지교회에서 가까운 인천에도 불러낼 곳이 많은데, 가까이 서울에도, 경기도 인근에 도 불러낼 곳이 없지 않은데, 지혜는 행정구역이 아닌, 여전히 긴장이 감도는 분단을 실감하게 하는 현장으로 그를 불.. 2018. 2. 9.
외발로 선 시간의 은총 외발로 선 시간의 은총 한희철 목사가 DMZ 380km를 열하루 동안 걸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얼마나 괴로웠으면…’이었다. 그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주일까지도 길 위에 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심증이 확증이 되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구나. 글의 도입부를 읽으면서 가슴이 저릿해졌다. ‘이 착한 사람이 견디기 어려웠구나.’ 다른 이들의 아픔과 고통은 그 너른 가슴으로 덥석 품어 안더니, 벽 같은 현실 앞에서 얼마나 괴로웠으면 이런 무모한 여정에 나선 것일까. 그것도 사람들이 선호하는 올레길이나 순례길이 아니라 분단의 상흔이 고스란히 새겨진 접경 지역을 말이다. 왠지 그 아픔을 알 것도 같기에 선뜻 그 글을 읽어나갈 수가 없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글을 읽기 시작했.. 2018. 2. 2.
김기석을 계속 읽어야 할 이유 김기석을 계속 읽어야 할 이유 19권의 저서와 10권의 번역서를 낸 김기석 목사가 스무 번째 책을 출간했습니다. “무심한 듯 지나치는 것 같으면서도 깊숙이 응시 하는 성찰의 힘”에서 나오는 문장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기에 가능한 일이지 싶습니다. ‘김기석 표 문장의 아름다움’을 생략한 서평이나 독후감을 아직 보지 못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최근에 나온 《인생은 살만한가》에서 김기석 목사는 “바늘로 우물 파는 행위에 빗대 설명했”던 오르한 파묵의 목소리를 빌려, ‘무모한 열정의 글쓰기’와 그것이 가져다 줄 ‘바위에서 솟아오를 샘물에 대한 기대’를 말했습니다. 그렇게 글을 써왔으니 아름답지 않을 도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모두가 김기석의 문장을 이야기하다보니 이젠 그런 찬사가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 2018. 1. 24.
아낌과 허비의 사이, 영혼이 따라올 시간 아낌과 허비의 사이, 영혼이 따라올 시간- 김기석 목사님 신간 《인생은 살만한가》를 읽고 - 서평을 부탁 받고 책을 읽기 전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저자의 글쓰기였다. 김 목사님을 생각할 때면 늘 떠올라 내게 반성과 분발로 겸손히 허리를 굽히게 하는 그분의 일상적 성실성(誠實性). 그것은 사실상 글쓰기에 앞선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 일관된 절제의 태도다. 차라리 10년이 지나도 못 쫓아오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우스개가 들어맞지 그분을 가외(可畏)케 할 후생(後生)이 있을까. 가끔 만나 뵈면 이렇게 함께 쉬어 가는가 모종의 안심이 될듯 싶은데, 보이지도 않는 말(馬)과 능히 경주라도 하는 듯 또 저만치 앞서 달음질을 놓으신다. 날짜와 시간과 날씨와 컨디션을 망라한 일체의 핑계가 소용에 닿지 않는 이 가.. 2018. 1. 16.
“한국은 왕조사회다” “한국은 왕조사회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갑질의 향연만 반복된다. 갑질…, 결국 그건 ‘왕질’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지적하는 저자는 우리 사회의 왕조적인 모습을 이렇게 풀어간다. “우리의 공화정 도입이 시민들의 주체적이고 자발적 행위와 자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순식간에 이식되었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의 특징을 잘 설명해 주기도 한다. 서구 사회가 프랑스 혁명(1789~1794)이라는, 시민의 힘으로 왕정을 종식시킨, 역사적 경험을 소유한 것에 반해, 우리는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강대국이 주도한 세계 체제 재편 과정의 하나로 타력에 의해 공화제가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여전히 우리 사회 대부분의 마인드와 에토스는 임금을 모시던 때의 역사적 경험과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2017. 7. 22.
여성들의 소리가 내 속에서 고동쳤다 여성들의 소리가 내 속에서 고동쳤다 이 책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여성들 중에서 30여 명을 불러내어 오늘의 독자와 다시 대면시킨다. 초고를 보고 반가웠다. 퍽 오래 전이긴 했지만,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기는 하는데 말이 없는 한 여성” 호세아의 아내 고멜을 변호하고 그의 남편 호세아를 호되게 나무란 적이 있었다. 그 후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변호했던 성서의 여성들이 김순영 박사에게 새롭게 초대받아 새 변호인의 변호를 받으며 다시 활기차게 살아나고 있고, 성경 독자들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러시아의 여성 시인 안나 아흐마또바(1889-1966)의 라는 시가 있다. 고향 소돔을 떠나게 하는 천사의 강제이주 명령은 잔인하다. 도시를 떠나는 자가 뒤를 돌아보았다가는 죽고 만단다. 그러나 천사의 말에, 그.. 2017.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