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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생각(42)

 

시대의 대장별이 그립다

 

책임의 언저리를 서성이는 이들이 있다.
책임에서 멀리 벗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늘 일정한 거리를 둔다.

 

극동 탐험대의 이야기를 담은 책 <데르수 우잘라>가 있다.
탐험대의 안내를 맡았던 데르수 우잘라가 대장별이라 부르는 별이 있는데, 북극성이다.


북극성을 대장별이라 불렀던 것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나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보면 데르스 우잘라야 말로 대장별이었다.


가장 위험한 자리가 맨 앞일 땐 맨 앞에 섰고,
가장 위험한 자리가 맨 뒤일 땐 맨 뒤에 선다.
한 번도 책임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책임은 말로 지는 것도 아니고 흉내를 내는 것도 아니다.
시대의 대장별이 그립다.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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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생각(43)

 

은혜로운 찬양

 

매달 초하루가 되면 월삭새벽기도회를 드린다. 매일 드리는 새벽기도회지만 그날은 조금 순서가 다르다.


성찬식을 갖고, ‘숨은손 헌금’을 드린다. ‘숨은손 헌금’은 그야말로 숨은손으로 사랑을 전하는 헌금이다. 무명으로 드려 그 때 그 때 어려운 이들에게 전해진다.

 



또 하나, 월삭새벽기도회 시간에는 찬양 순서가 있다. 2월 월삭새벽기도회 찬양은 임마누엘 찬양대가 맡았다. 여성들로 구성된 찬양대다. 새벽에 찬양을 준비한다는 것은 다른 시간대보다도 더 많은 정성이 필요하리라.


찬양후반에 솔로 파트가 합해졌는데 찬양이 참 은혜로웠다. 솔로 파트를 맡은 분은 나이가 지긋한 권사님, 처음에는 솔로 파트가 있는 줄도 모를 만큼 조용히 합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찬양이 더욱 기름지고 옹골차다 싶었을 뿐이었다.


전체에 위축되어 묻히거나, 위축되지 않으려 돌출하지 않았다. 나를 드러내지 않음으로 전체를 드러내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는 듯, 전체를 떠받치기도 했고 감싸기도 했다. 전체에 맞서거나 그러느라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나를 드러내지 않음으로 전체를 드러내는, 그 하나만으로도 찬양은 은혜가 되었다.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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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한 생각(39)

 

사소해도 요긴한

 

세탁을 해 온 가운을 입으려고 비닐 덮개를 벗기는데, 쉽게 벗겨지지가 않았다. 살펴보니 아랫부분을 옷핀으로 꿰매 놓은 것이었다. 소소한 부분까지 챙기는 꼼꼼함이 느껴졌다. 빼낸 옷핀을 버리지 않고 보관해 두기로 했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였다.


지난번 열하루 동안 DMZ를 걸을 때, 어떤 물건을 챙겨야 할지를 정두수 장로님께 물은 적이 있다. 40여 일 산티아고를 다녀온 경험이 있으니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 같았다. 10가지 목록을 적어달라는 부탁을 장로님은 아예 필요한 물건을 전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때 받은 물건 중의 하나가 옷핀이었다. 처음에는 옷핀이 어디에 필요할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옷핀은 먼 길을 걷는 사람에게 요긴했다.

 

 

 

나는 두 가지 용도로 썼다. 하나는 물집을 터뜨릴 때 썼다. 폭우 속 진부령을 오르고 나자 당장 물집이 잡혔다. 물집이 생겼을 때 터뜨려야 하는지, 그냥 가라앉게 해야 하는지, 터뜨린다면 어떻게 터뜨려야 하는지, 언젠가 글을 읽은 기억은 있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 자신이 없었다. 마침 옷핀이 떠올랐고, 옷핀으로 찔러 물집을 터뜨렸다.

 

또 다른 용도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가방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것으로 챙긴 것 중에는 양말도 있었다. 두 켤레만 챙겨 번갈아 신기로 했는데, 두툼한 양말은 아침이 되어도 마르지가 않았다. 그 때 떠오른 것이 옷핀이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며 가방 뒤에 양말을 걸었다. 양말을 건 채 길을 걷다보면 햇볕과 바람이 양말을 잘 말렸다. 가방에 양말을 거는 데는 옷핀보다 좋은 것이 없었다.

 

그렇다, 세상에는 사소해 보이지만 실은 요긴한 것이 있다. 작은 옷핀처럼.
요긴해 보이지만 사소한 존재보다는, 사소해 보이지만 요긴한 존재되기!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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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생각(33)

 

나비

 

가장 가냘팠지만 가장 강했던,

검버섯 번진 얼굴에 눈은 별빛 같았던,

부푼 꿈으로 하루가 짧았을 열네 살 나이에

전쟁터로 끌려가 8년 만에 돌아온,

환향녀 화냥년 아픔의 거죽 강요받은 침묵을 용기로 찢었던,

이 땅에 다시는 같은 고통 남기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양심을 돈과 바꾸지 않았던,

복된 아이(福童)라는 예쁜 이름을 가졌던,

김복동 할머니가 이 땅을 떠났다.

 

 

                                                        류연복 판화

 

할머니는 죽어 나비 되고 싶다 했다 한다.

나비처럼 날고 싶다 했다 한다.

이 땅에서의 걸음이 얼마나 무거우셨으면.
할머니는 이미 나비가 되어 이 땅을 난다.

할머니는 시대의 나비였고,

앞으로도 나비일 것이다.

 

내 히브리어 모르지만 기억하는 단어 하나,
‘나비’(NABI)란 ‘예언자’(預言者)!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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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것을 기다리는 사람

 

“커다란 것을 기다리는 사람은 작은 것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마르케스가 쓴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지금 내가 기다리고 있는
커다란 것은 무엇일까?

 

어서 오지 않는다고
내가 힘들어하는
작은 것은 무엇일까?

 

ㅡ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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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생각(38)

 

동네서점

 

처음으로 참석한 정릉2동 복지혐의체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길, 다들 저녁을 먹으러 간다고 가는 걸 나는 마주보이는 책방을 찾아갔다. 동네 한 구석, 서점이 있는 것이 반가웠다. 몇 번 차를 타고 오가며 보아둔 서점이었다. 동네 끝자락에 자리 잡은 서점,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도 불이 켜져 있는 서점 안에는 여주인 밖에는 없었다. 인사를 나누고 책 구경을 했다. 마침 낮에 종로서적을 들러 봐둔 책이 있었다. <나는 그냥 버스 기사입니다>라는 책이 있는지를 물었더니 컴퓨터로 검색을 한다.


“여기 와서 찾아볼래요?”


책이 있다고는 뜨는데, 어디 있는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책을 찾다가 <한 글자 사전>이라는 책을 보았다. 우리말 중 한 글자로 된 낱말만을 골라 풀이한 책이다.


“오늘은 이 책을 사고, 아까 그 책은 찾아두면 다음에 와서 사지요.”

 

 


 

책을 찾는 시간이 길어져 그렇게 말했을 때, 주인이 씩 웃으며 책을 골라 뺀다. 때마침 책을 찾은 것이다. 책 두 권을 정가대로 산다. 카드 대신 오만 원 권을 내고 거스름돈을 받는다. 그게 별 일일까만, 내 깐에는 작은 위로와 응원이다.


봉투를 사양한 채 책을 들고 밖으로 나오는데 서점 입구에 세워둔 문구가 눈에 띈다.


‘Reading 정릉 Leading 정릉’


서점 주인은 누구도 모를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하나 눈에 들어오는 간판, 삼미여관 후문이었다.
정릉 내부순환도로 아래 삼미여관 후문 께엔 대원서점이 있다.

정릉을 읽고 싶고, 정릉을 이끌고 싶은.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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