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생각(34)

 

손수 심으신

 

‘주님께서 손수 심으신 나무들’


정릉교회 제단에 걸려 있는 교회 표어이다.

 

 

문득 표어를 보며 눈물겨울 때가 있다.


우리가 하찮은 존재라 여겨질 때,
버려진 존재라 생각될 때,
모두에게 잊힌 존재다 싶을 때,


그게 아니라고,
여전히 거룩하신 분의 눈길과 손길이 닿고 있다고
짤막한 한 문장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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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생각(35)

 

누군가 악보를 읽어


‘페친’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다.
SNS에 서툰 내게는 ‘폐를 끼치는 친구’라는 느낌도 있었던, 낯선 말이었다.
우연히 페친이 올린 사진을 보았다.


미국에 사는 분인데, 2015년 일리노이 어느 공원에서 찍은 사진이라 했다.
마른 수초가 호수에 비친 모습이겠다 싶다.

 

 

그런데 사진을 보며 대번 수초라 말하는 것은 도무지 도리가 아니다 싶다.

이응로 화백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을, 자연이 그려낸 추상화다.

놀라운 연주이기도 하다.


시간과 바람을 저보다 잘 표현한 악보가 어디에 있을까.
누군가 마음으로 악보를 읽을 사람이 있어
피아노를 치거나 교향곡으로 연주한다면
세상은 깊은 고요 속에 잠기리라.
사방 눈 내리듯 하늘 평화 임하리라.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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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생각(31)


나무를 심은 사람


금요심야기도회, 교우들과 함께 영화를 보았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둔다는 말씀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마침 필리핀 단기선교를 다녀온 뒤이기도 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린 것보다도, 앙드레 말로가 20세기의 프랑스 작가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았다는 것보다도, 장 지오노라는 이름은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한 작품만으로도 기억할 만한 이름이다 싶다.


장 지오노는 1895년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에서 구두를 수선하는 집의 아들로 태어났다. 워낙 집이 가난하여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는데, 17살 때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5년 동안 전쟁터에 나가 싸우기도 했다. 그런 경험들이 모두 ‘나무를 심은 사람’에 녹아 있다. 평소 지오노는 자신의 작품이 설교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했지만, ‘나무를 심은 사람’은 설교 이상의 의미를 전해준다.





영화를 본 뒤에 몇 가지 생각을 나눴다.


-제목은 ‘나무를 심은 사람‘이지만, 실제로 심은 것은 도토리다. 집을 그리라 하면 대개가 지붕부터 그리지만, 집은 터를 다지는 일부터 시작한다.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씨앗부터 심어야 한다.


-아무 것이나 심으면 안 된다. 좋은 도토리를 골라내야 한다. 그래야 좋은 나무가 선다. 좋은 씨를 고르기 위해서는 나쁜 씨를 가려내야 한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말을 잊는다. 굳이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때로는 말로 씨앗을 대신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내 땅 남의 땅을 가리지 않는다. 셈을 버린다. 황량한 땅, 버려진 땅이 있다면 그곳이 나무를 심을 곳이다.


-모래바람이 불던 황량한 땅을 계곡물이 흐르는 녹색의 숲으로 변하게 한 것은 씨앗을 심은 한 사람이다. 그는 누군가의 갈채를 기대하지 않았다. 씨를 심되 나머지를 잊는,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는 말했다. “주님은 내가 전에 없었던 바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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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늘 앉는 책상 위 모니터 앞에는 서너 개 소품이 자리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는 딸이 선물한 것인데, 다음과 같은 글이 담겨 있다.


“Some people make the world more special just by being in it.”


‘어떤 이들은 단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더욱 특별한 곳으로 만든다.’는 뜻이겠다.



 

맞다, 둘러보면 그런 이들이 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이들이 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추하게 만드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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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생각((28)

 

봄꽃

 

교우 한 분이 화분을 전해주었다.

 

볕 잘 드는 창가에 두었더니

어느 날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개나리를 닮은 노란 영춘화가 먼저 꽃을 피웠고,

이어 매화 꽃봉오리가 간지럼을 탄다.

 

꽃을 먼저 보는 즐거움을 누린다.
먼저 피었다고 으쓱대지 않는 꽃을.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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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생각(27)

 

제단 촛대

 

예배당 제단 위 두 개의 촛대엔 예배 시간이 되면 촛불을 밝힌다.
불을 밝혀 예배하는 자리와 시간을 구별한다.

 

녹은 만큼 타오르는 촛불은
때마다 우리의 믿음과 삶을 돌아보게 한다.

 

 

 

촛대 아래 기도문을 적어두었다.
앞으로는 누가 불을 켜고 끄든지 짧은 기도를 바치기로 한다.

 

빛으로 오셔서, 우리를 고치고 살리소서.”
“우리가 잠들 때에도, 주님은 빛이십니다.”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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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생각(25)


말하는 방식


<논어> 한 구절에 밑줄을 친다.


‘군자이행언, 소인이설언’(君子以行言, 小人以舌言)


군자는 행동으로 말하고, 소인은 혀로 말한다는 뜻이다.


‘행’(行)과 ‘설’(舌)이 선명하게 대비가 된다.

맞다, 말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삶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고, 혀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말없이 말하는 사람이 있고, 말로만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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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생각(24)


곤달걀


시간이나 세대를 나눌 수 있는 기준은 많은 경우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나 세대를 어디 눈금 재듯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뭔가 정서가 다를 때, 사물이나 사람을 바라보는 인식이 다를 때,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푸는 방식이 다를 때, 당혹감으로 느끼고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 확연하게 눈에 띄는 기준도 있다. 필리핀 선교를 갔을 때였다. 첫날 진료를 마치고 일과를 마감할 때였다. 서로가 도무지 헤어질 줄을 몰랐다.


이러다간 날 새겠다며 우리가 먼저 떠나자고 했을 때, 셋이었는지 넷이었는지 많은 자녀들과 함께 진료를 받으러 왔던 한 젊은 엄마가 들고 있던 바구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보니 달걀이었다. 선교사님 이야기를 들으니 그건 그냥 달걀이 아니었다. 곤달걀이었다.


어릴 적 곤달걀을 먹은 적이 있다. 병아리가 되다가 알 속에서 깨어나지 못한, 알 속에 갇힌 채 죽은 병아리, 그 알을 삶아 얼마 되지 않는 살을 발라먹은 기억이 있다. 단백질이 부족하던 시절, 맛있고도 요긴한 영양보충의 기회였다.


“그게 뭐에요?”


신기해하며 묻는 일행 앞에서 선교사님과 노장로님이 계란을 까서 한 입에 먹어버렸다. 얘길 듣고는 까무러칠 듯이 놀라 뒤로 물러서는 이들.


그렇게 세대가 구별되었다. 곤달걀을 아는 세대와 상상조차도 못하는 세대로!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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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죽


어렵게 말씀을 준비하고 나면 공감이 되는 심정이 있다.
밥상을 차리고 식구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심정이다.


그날 설교로 죽을 쒔는지 밥을 지었는지는
어렵지 않게 안다.


헤아릴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예배 후 나누는 인사다.

과한 표현이나 감정보다는
마음이 담긴 웃음이나 고마움이 담긴 악수,
오히려 그것이 밥에 가깝다.


어디 말씀을 사람들의 반응으로 잴까마는.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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