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생각(22)


한 장의 사진


‘하루 한 생각’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어쩌면 가장 먼 길
한 사람에게 가는 길

어쩌면 가장 험한 길
한 사람에게 닿는 길


그 글은 한 사진 속에 담겼다.
먼 길을 걸어가는 한 사람,

김승범 집사가 찍은 사진이었다.
글과 사진이 너무도 잘 어울렸는데,
자꾸 보다 보니 스멀스멀 송구스럽다.





오직 사진으로만 말해야 하는 사진이었다.
혹시 어울리고 싶다면 사진과는 서너 걸음 떨어진 어디쯤,
머뭇머뭇,
그러면 모를까.

무엇 하나 보태거나 뺄 것 없는,
보탠다는 것은 침묵 속에 소음을 보탤 뿐인,
홀로 가는 호젓함을 방해하지 않도록
어서 뒷걸음쳐 빠져나오고 싶은
사진 속에 담긴 생각,
서툰 걸음.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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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나

 

필리핀 딸락지역을 다녀왔다. 수년 전 정릉감리교회가 창립 60주년을 맞아 예배당 하나를 세운 아스투리아스가 포함된 지역으로, 장로님 내외분은 그 지역에 시니어학교(11~12학년) 건물을 봉헌하기도 했다. 그런 일을 계기로 의료봉사가 시작이 되었는데, 뭔가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해오던 비중 있는 일, 왜 그런 지를 말만 듣고 판단을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싶어 동행을 했다.

 

 

의료선교는 모두 3곳에서 이루어졌다. 허름하고 좁긴 해도 예배당에서 진료가 이루어졌는데 깜짝 놀랐던 것은 그곳을 찾는 수많은 아이들이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표현이 송구하지만 ‘깨알 쏟아지듯’ 몰려왔다. 피난민촌처럼 여겨질 만큼의 허술한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에, 저 많은 아이들이 어디에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헝클어진 머리와 허름한 옷, 새까만 발, 어린 아이임에도 까맣게 변한 치아, 엄마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의 어린 나이에 자식들을 안고 있는 모습, 치과진료를 맡은 이에게 물어보니 첫날에 뽑은 치아만 46개라고 했다.

 

 

길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들이었다. 많은 일 중에서도 유독 마음에 남는 장면이 있다. 창가에 매달린 아이들이었다. 창가에 매달려 예배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진료를 바라보는 눈길들이 있었다. 들어와서 진찰이나 치료를 받으면 치약이나 칫솔 등을 선물로 받을 수 있음에도 그들은 창문을 통해서만 안을 들여다 볼 뿐이었다. 행여나 눈이 마주치면 얼른 숨어버리곤 했다.

 

 

 

그들은 왜 선뜻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을까? 아니면 못했을까? 단순한 부끄러움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경계심이나 두려움일지도 모를 일이고, 어쩌면 자존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창가에 매달린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거리감이 마음 아프게 숙제처럼 남았다. 치료를 받은 후 선물을 받고 돌아섰던 아이들이든, 창가에 매달려 안을 들여다 볼 뿐 끝내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던 아이들이든, 내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 그 모든 아이들의 모습 속에는 내 어릴 적 모습이 담겨 있다는, 우리 어릴 적 모습도 저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그래서 더욱 눈물겨운...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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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한 생각(19)


같은 것은 서로에게


산이든 강이든 바다든 어디를 찾아도,
나무든 꽃이든 구름이든 무엇을 보아도,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든 새소리든 물소리든 어떤 소리를 들어도,
자연 앞에서 우리는 편안함을 느낀다.
어릴 적 어머니 품속 같은 안도감, 혹은 위로를 얻는다.


자연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자연의 품에 들 때마다 우리가 편안해지는 것은 한 가지,
우리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것을
나도 모르게 감지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쇠가 자석에게 끌리듯이
나침반이 방향에 반응하듯이
이 산 소쩍새가 저 산 소쩍새에게 밤새 응답하듯이
사랑하는 이에게 어느새 마음이 가듯이
성질이 같은 것은 서로에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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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생각(18)


간사함



도무지 간사함에 깃들일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믿음,


그런데도 믿는 자들에게서 보게 되는 간사함은 무엇일까?


우리 눈에 그렇다면 주님 눈에야 오죽할까만.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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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생각(17)


울며 씨를


‘눈물을 흘리며 씨 뿌리는 자,
기뻐하며 거두어들이리라.
씨를 담아 들고 울며 나가는 자,
곡식단을 안고서 노랫소리 흥겹게 들어오리라.’

(시편 126:5~6, 공동번역)


시편의 노래는 내 안에서 시 하나와 만난다.


‘거친 들에 씨 뿌린 자는 들을 잊기 어렵나니
어찌 견딜 수 있는 곳을 가려 아직 너의 집이라 하랴‘


황동규의 <悲歌> 중 제5가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울며 씨를 뿌린다니,
씨를 담아 들고 울며 나간다니,
생각만 해도 먹먹해진다.


거친 들에 씨 뿌리는 자는 들을 잊지 못한다.
견딜 수 없는 곳을 오히려 자기 존재의 집으로 삼는다.


세상은 그렇게 뿌린 씨로 밥을 먹고 산다.
누가 씨 뿌렸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관심이 없는 채로.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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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생각(16)


나쁜 놈, 어리석은 놈


그 중 나쁜 놈은,

다른 이의 분노를 자극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는 놈 아닐까.


그 중 어리석은 놈은,

누군가의 자극에

생각없이 분노하는 놈일 터이고.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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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곡이라도


같은 곡, 같은 악기라도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무엇이 그것을 구별하는 것일까?


같은 본문, 같은 내용인데도
누가 전하느냐에 따라
말씀은 다르게 다가온다.


그것을 구별하는 것은 무엇일까?


LP판이라 그럴까,
파블로 데 사라사테가 작곡한 Zigeunerweisen Op.20,
안네 소피 연주로 처음처럼 듣는다.  
울 듯 말 듯 집시가 노래를 한다.


따뜻하고 눈물겹다.

누군가에게 내 말이 그렇게 다가갔으면.


-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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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시인은 제목도 잘 짓는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 시인의 시 제목이자 시집 제목이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짧지만 깊은 기도로 다가온다.


아름답고 쓸모없는 것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구나,
아름다운 것들 죄 쓸모 있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세상에 던지는 나직한 경구(警句).

시집을 열지도 않고 한참 시를 읽는다.


-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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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몸에 상처가 나면 약을 바르거나 병원을 찾는다.
상처가 크고 깊으면 꿰매거나 수술을 받기도 한다.
뼈가 부러지거나 탈골 되었을 때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마음의 상처는 방치를 한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슨 약이 따로 있을까 싶어 그냥 시간에 맡기곤 한다.

 

방치한 상처는 덧이 난다.
나도 모르는 사이 상처가 자란다. 

 

 

방치된 마음의 상처는 결국 마음의 창으로 남는다.

상처를 통해 세상을 본다.
사람과 사물을 비뚤어지게 보는 것은, 상처가 난 창으로 보기 때문이다.

 

상처를 안고 있는 이들은 상처에 익숙하다.
때로는 자신을 자해하기도 하고, 툭하면 남에게 상처를 준다.


상처를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곤 한다.
상처투성이의 상황을 오히려 편안하게 여긴다.
내 안에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철철 피를 흘리는 몸이 아니라
내내 방치하고 있는 마음속 상처를 치유할 일이다.

 

-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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