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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103

가면과 맨 얼굴 김기석의 톺아보기(31) 가면과 맨 얼굴 ● 하나님을 배반하는 역사 “난 점점 기독교가 싫어져요.” “난데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선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이라면서요?” “그렇다고 하더라.” “그래서 행복하세요?” “뭐야? 내가 왜 행복해?” “기독교인들의 뜻대로 되었으니 말이에요.” “얘가 노골적으로 비꼬네. 트럼프를 당선시킨 그 세력이 기독교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려니와, 기독교인들의 뜻이 곧 하나님의 뜻과 늘 일치하는 것도 아니야.” “그래도 미국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의 생각이 승리주의와 편협한 도덕주의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참 유감스러워요. 트럼프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타겟으로 삼아 동성간의 결혼과 낙태에 반대한다는 도덕주의적 캠.. 2017. 4. 11.
영성의 깊이란 무엇일까 김기석의 톺아보기(30) 영성의 깊이란 무엇일까 ● 반환점을 돌고 나서 “이렇게 민박집에 머물고, 버너와 코펠로 밥을 해먹어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그 동안 너무 여백 없이 살았지?” “그래, 벽에 가득한 낙서를 보니까 우리 신학교 때 입석으로 퇴수회를 갔을 때가 생각나네. 생각나? 누군가가 베니어판 벽면에 매직으로 써놓았던 낙서. ‘신은 죽었다’―니체. 누군가가 그 밑에 이렇게 써놓았지? ‘니체는 죽었다’―신. 그땐 그래도 그게 꽤 신선하게 읽혀졌었는데.” “저기 저 낙서 좀 봐. ‘A man without a pot belly is a man without an appetite for life ―Salman Rushdi, 『The Moor's Last Sigh』. 누가 써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2017. 3. 1.
슬픈 몸, 고마운 몸 김기석의 톺아보기(29) 슬픈 몸, 고마운 몸 ● 몸의 말을 들으라 “오랜만이야. 얼굴 잊어버리겠네 이 사람아.” “죄송해요. 잠 못 이루는 토요일 밤 때문에….” “뭐야? 그러게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려면 토요일을 잘 보내야 한다니까.” “건강은 좀 어떠세요? 얼굴빛은 좋아지신 것 같은 데요.” “그래? 좋아져야지. 안 그래도 여러 사람한테 미안한데.” “일 좀 줄이세요. 그 동안 몸을 너무 학대하셨어요.” “그랬나? 어쩌면 성실함에 대한 과도한 집착 때문이었는지도 몰라. 나는 일을 적당히, 얼렁뚱땅 하는 걸 싫어하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 만든 내 이미지에 자승자박 당한 꼴이었던 것 같아. 성실한 건 좋은데 그게 고스란히 스트레스로 바뀐 게 문제지. 나는 스스로 그런 문제를 잘 풀어가고 있다고 생각.. 2017. 2. 16.
우정을 이용하지 말라 김기석의 톺아보기(28) 우정을 이용하지 말라 인맥 만들기 문화 “직장이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면서?” “예, 차 타고 한 30분쯤 가야 하지만 오히려 좋아요. 차를 타고 다니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있고, 주변에 맛있는 음식 먹을 곳도 있고, 직장 옥상에 소박하지만 정원도 있고 해서, 짬짬이 쉴 수도 있고요.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져요.” “생명이 갖는 친화력 때문일 거야. 목적 지향적인 일직선의 시간 속에서 사는 사람들일수록 자연과 교감하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 할거야.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고 있는 시간은 사실은 순환하는 시간이거든. 노아의 홍수 이후에 하나님은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약속하셨어. 사람은 이 순환 속에 .. 2017. 2. 7.
에덴의 동쪽에서 살아가기 김기석의 톺아보기(27) 에덴의 동쪽에서 살아가기 -한나의 아이 북토크 • 던져짐과 던짐 사이 에덴의 동쪽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보편적 운명은 불안이다. 동생을 죽인 가인은 주님 앞을 떠나서 '놋' 땅에서 살았다. '놋'은 '떠돌아 다님'을 뜻하는 말이다. 정주하지 못하고 떠돈다는 것, 흐름 위에 보금자리를 치고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홀가분하지만 동시에 불안정한 삶이다. 찰라의 불꽃처럼 번뜩이는 기쁨은 있을지언정 지속적인 평강은 언감생심이다. '안식 없음', '고향 상실'이야말로 인간의 운명이다. 삶은 익숙한 곳에서도 늘 낯설기만 하다. 어느 누구도 삶에 대한 영원한 해답을 갖고 있지 않다. 인간은 순간순간 삶의 의미를 묻는다. 그러나 동시에 시간이 혹은 우리의 외부 세계가 던지는 질문에 대답해야 .. 2016. 8. 31.
하늘 북소리 김기석의 톺아보기(26) 하늘 북소리 어른들은 참 아무 것도 모른다. 숫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가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와 만났을 때 자기가 살던 별을 B 612호라고 홋수까지 가르쳐 준 것은 그 때문이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하면, 그들은 정작 제일 중요한 것은 묻지 않는다. "나이가 몇이냐? 형제가 몇이냐? 몸무게가 얼마냐? 그 애 아버지가 얼마나 버느냐?" 그들의 질문은 고작 이런 것이다. 그러니 "창틀에는 제라니움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고운 붉은 벽돌집을 보았다"고 했을 때 어른들이 그 집 모양을 상상하지 못한다고 해서 어른들을 비웃으면 안 된다. 오히려 지혜로운 어린이/젊은이라면 몇 억 원 짜리 집을 보았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어느 착한.. 2016. 7. 14.
진짜 어른을 보고 싶다 김기석의 톺아보기(26) 진짜 어른을 보고 싶다 중3 무렵 아들 아이는 내 곁을 지나갈 때면 언제나 허리를 곧게 펴고 고개를 쑥 빼곤 했다. 아버지와 보이지 않는 키 경쟁을 벌였던 것이다. ‘어쭈, 이 녀석 봐라’ 하면서 실소를 머금기도 했지만 한편 아이의 성장이 대견하기도 했다. 아이는 이제 곧 아버지 키를 뛰어넘게 된다는 설렘으로 나름의 통과의례를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녀석은 키 재기를 그만 두었다. 아버지가 자기보다 작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확인한 후였다. 그때부터 녀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숙명은 아버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미지는 아들로 하여금 언제나 자신의 행동을 검열하게 하는 ‘내면화된 타.. 2016. 7. 14.
세월호 유가족 못지않게 외로우신 하나님 세월호 유가족 못지않게 외로우신 하나님 • 라헬의 울음 주님의 은총과 위로가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분들에게 임하시기를 빕니다. 벌써 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4월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우리는 봄을 봄답게 맞이할 수 없습니다. 피어나는 꽃들과 함께 누군가의 신음소리 또한 피어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옛날 예레미야 선지자는 패망한 조국의 현실을 보며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라마에서 슬픈 소리가 들린다. 비통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라헬이 자식을 잃고 울고 있다. 자식들이 없어졌으니, 위로를 받기조차 거절하는구나”(예레미야 31:15). 이 땅의 라헬들도 위로받기를 거절하며 지금 울고 있습니다. 295명의 희생자들, 그리고 아홉 분의 미수습자들의 가족들은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은 비통의.. 2016. 4. 14.
우리는 지지 않는다 김기석의 톺아보기(25) 우리는 지지 않는다 차이를 내포한 반복 손석춘 선생님, 하염없이 내리는 장맛비를 바라보면서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오규원 선생의 시구가 떠올랐습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나를 젖게 해놓고, 내 안에서/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부분) 혼자 비감해져서 “비가 온다, 비가 와도/젖은 者는 다시 젖지 않는다.”는 마지막 연만 되뇌고 있습니다. 뭔가를 적어야 한다는 생각에 컴퓨터를 켜놓고 앉아 있지만 모든 언어가 물살에 떠내려갔는지 아니면 물기를 머금어 무거워진 것인지 도무지 떠오르질 않습니다. 뜬금없이 ‘슬픔’이라는 단어만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나이가 들면 젊은 날 나를 온통 .. 2016.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