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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시노래 한 잔297

충만한 하늘 신동숙의 글밭(282) 충만한 하늘 빈 하늘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기에아침마다 이렇게 환하게 밝아오는지 태양이 비추는 우주 공간은언제나 어둠인 채로 아침이 오지 않습니다. 들숨으로 들으킨 하늘이뼈와 피와 살이 되는 신비로움 몸이 하늘에 공명하여울리면 노래가 되고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를 따라서몸짓은 춤이 되기도 합니다. 비로소 잎들을 다 털어낸 빈 가지를 하늘이 고이 품에 안고서 이 겨울을 지나며 겨울 바람이 웅웅 자장가를 불러주는 겨울밤은촛불 하나만 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긴긴밤 황금빛 햇살을 걸쳐 입은 빈 가지마다새 움을 틔우는 이 충만한 하늘의 사랑을 2020. 11. 22.
하늘 그릇 신동숙의 글밭(279) 하늘 그릇 그릇에 담긴 물을 비우자마자얼른 들어차는 하늘처럼 나를 채우려는 이 공허감과 무력감은얼른 들어차려는 하늘의 숨인가요? 나를 비우고 덜어낸 모자람과 패인 상처와 어둔 골짜기마다 하늘로 채우기를 원합니다.나의 몸은 하늘 그릇입니다. 더 가지려는 한 마음이 나의 모자람인 줄 하늘에 비추어 알게 하시고 남을 헐뜯으려는 한 마음이 나의 패인 상처인 줄 하늘에 비추어 알게 하시고 높이 오르려는 한 마음이 나의 어둔 골짜기인 줄 하늘에 비추어 알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를 채우려는 이 없음이없는 듯 계시는 하느님인 줄 스스로 알게 하소서. 나의 몸은 하늘을 담는 하늘 그릇입니다. 2020. 11. 19.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샘물 신동숙의 글밭(278)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샘물 글을 다 쓴 후자꾸만 손이 갑니다열 번도 가고 백 번도 가는 일 바르게 고치고 또 고치고부드럽게 다듬고 또 다듬으며 글에 생기를 불어넣으려는 쉼 없는 일 문득 이 세상에서 일필휘지가 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사색으로 흐릅니다 한 순간 떨군 눈물 한 방울한 순간 터트린 웃음 한 다발풍류 장단에 춤추는 민살풀이 우리들 모든 가슴마다이미 공평하게 있는 샘물이 샘솟아 올라 순간이 영원이 되는 일 본래 마음이 휘 불면일필휘지(一筆揮之)아니할 도리가 없답니다 2020. 11. 18.
구멍 난 양말 묵상 신동숙의 글밭(277) 구멍 난 양말 묵상 -라오스의 꽃 파는 소녀, 강병규 화가- 몸에 작은 구멍 하나 뚫렸다 하여멀쩡한 벗님을 어떻게 버리나요 내 거친 두 발 감싸 안아주느라맥없이 늘어진 온몸이 미안해서 어디까지나 나의 게으름 탓에 제때 자르지 못한 내 발톱에 찔려 아픈 님을 작은 틈으로 비집고서 세계 구경 나온 발가락은 웃음도 되고 서러움도 되었지요 실과 바늘로 한 땀 한 땀꿰어주시던 어진 손길은 묵주알처럼 공굴리는묵상의 기도손입니다 2020. 11. 17.
달빛 가로등 신동숙의 글밭(276) 달빛 가로등 집으로 가는 밤길길 잃지 마라 가로등은고마운 등불 달빛에 두 눈을 씻은 후 달빛 닮은가로등 보면은 처음 만든 그 마음 참 착하다 달과 별을 지으신 첫 마음을 닮은 2020. 11. 15.
"엄마, 오다가 주웠어!" 신동숙의 글밭(275) "엄마, 오다가 주웠어!" 아들이 "엄마, 오다가 주웠어." 하며왕 은행잎 한 장을 내밉니다. "와! 크다." 했더니"또 있어, 여기 많아." 하면서 꺼내고꺼내고또 꺼내고 작은잎찍힌잎푸른잎덜든잎예쁜잎못난잎찢어진 잎 발에 밟혀 찢어진 잎 누가 줍나 했더니 아들이 황금 융단길 밟으며 엄마한테 오는 길에 공평한 손으로 주워건네준 가을잎들 비로소 온전한 가을입니다. 2020. 11. 14.
침묵의 등불 신동숙의 글밭(271) 침묵의 등불 초 한 개로 빈 방을 채울 수는 없지만 초의 심지에 불을 놓으면 어둡던 빈 방이 금새 빛으로 가득찹니다 백 마디 말씀으로 하늘을 채울 수는 없지만 마음의 심지에성호를 그으며 내 안에 하늘이 금새 침묵으로 가득찹니다 촛불처럼나를 태워 침묵의 등불을 밝히는고독의 사랑방에서 2020. 11. 8.
조율하는 날 신동숙의 글밭(269) 조율하는 날 밥은 먹었니?가슴 따뜻해지는 말 차 한 잔 하자가슴 설레이는 말 어느 날 문득그러한 초대에 따뜻해지지도 설레이지도 않는 날 내 마음의 결을 고요히 조율하는 날 2020. 11. 5.
귀를 순하게 하는 소리 신동숙의 글밭(266) 귀를 순하게 하는 소리 낮동안 울리던 귀를밤이면 순하게 슬어주던 풀벌레 소리 멈추고가을밤은 깊어갑니다 오늘밤엔 창문 틈으로 들려오는가을비 소리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우리의 귀를 순하게 하는 자연의 소리는 늘 가까이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지 멈추어 귀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어느 곳에서든 누구나 들을 수 있는 2020. 1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