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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191

녹음이 짙은 비에 젖은 아침 등교길을 보면서 신동숙의 글밭(166) 녹음이 짙은 비에 젖은 아침 등교길을 보면서 반바지에 반팔 셔츠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학교에 갑니다. 등에는 가방을 메고 누구나 얼굴엔 마스크를 쓰고서, 학교에 가는 중·고등학생들이 유월의 푸른 잎사귀 같습니다. 교실 안에서는 제 책상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저 푸릇한 귀를 열고서 선생님들의 말씀에 잔잔히 귀를 기울이겠지요. 특히 교실에서도 온종일 쓰고 있어야 하는 마스크에,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여전히 답답하기만 한지 안타깝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합니다. 공부를 잘한다고 함은 다름 아닌,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일과 거듭 새기는 일이 됩니다. 옛어른들은 머리에 새기라고 하였지만, 그보다 더 앞선 옛어른들은 마음에 새겨 자신의 참마음과 세상의 참이치를 밝히는 공부를 참공부라 하였.. 2020. 6. 12.
때론 거친 숨으로, 그리고 언제나 평화로운 숨으로 신동숙의 글밭(158) 때론 거친 숨으로, 그리고 언제나 평화로운 숨으로 숨을 쉰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나의 숨을 스스로 쉴 수 있다는 것은 바람의 흐름처럼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영역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숨쉬는 일에 타의적으로 침해를 받아 숨이 끊어진 타살로 이어진 일이 최근에 일어났습니다. 미국의 조지 플로이드와 한국의 9살 남자 아이가 죽어가던 고통은 마음껏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경찰관의 무릎에 목이 눌려 숨이 끊어져 가던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입에서 새어 나오던 말은 "I can't breathe."였습니다. "나는 숨을 쉴 수 없다.", 계모의 학대로 9살 남자 아이의 몸이 갖힌 곳은 나중엔 더 작은 44cm·60cm의 여행 가방이었습니다. 아무도 아이.. 2020. 6. 5.
안목,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기쁨 신동숙의 글밭(155) 안목,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기쁨 스승을 찾던 20대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가를 배우다가, 요가를 가르치다가, 몸의 움직임이 곧 의식의 움직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에도 혼자서 관련된 서적들을 찾아서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단순한 요가로부터 시작된 책의 관심 분야는 점차 확장이 되었습니다. 인체, 근육과 골격, 운동과 춤, 자연식 섭생법, 한의학, 인도의 아유르베다, 심리와 마음에 관련된 수도승들의 체험 수필, 명상 서적, 명상 음악과 클래식, 국악, 동서고금의 철학과 고전으로 이어지며 자연히 관심 분야가 넓어졌습니다. 한 사람을 구성하는 세상의 모든 유형과 무형의 대상이 공부의 범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점점 명상으로 집중이 되었습니.. 2020. 5. 29.
앉아 있기 위하여 움직입니다 신동숙의 글밭(154) 앉아 있기 위하여 움직입니다 하루의 생활이 앉아 있기 위하여 움직입니다. 뻐꾸기 소리에 눈을 뜨는 아침에도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바로 움직이기보다는 이부자리에 그대로 앉습니다. 말로 드리는 기도보다는 침묵 속에 머무르는 고요한 시간입니다. 고요한 아침을 그렇게 맞이하기로 하는 것입니다. 앉았는 자리가 먼 동이 트는 산안개가 고요한 어느 산기슭이면 보다 더 좋겠지만, 골방에서도 가슴엔 밝은 하늘이 펼쳐집니다. 밤새 어두웠을 가슴으로 숨을 불어 넣으며 더 내려놓으며 새날 새아침을 맞이합니다. 20년 전쯤에 요가를 배우며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12가지 기본 동작을 아사나라고 하는데, 요가 수행자들의 몸수행의 방편이었던 아사나는, 앉아 있기 위하여 움직이는 조화로운 몸동작인 것입니다.. 2020. 5. 26.
5.18에 걸려 온 극동방송 전파 선교비 재모집 전화 신동숙의 글밭(151) 5.18에 걸려 온 극동방송 전파 선교비 재모집 전화 5·18에 극동방송국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예전에 극동방송에 전파 선교비를 후원하셨는데, 다시 하실 생각이 없느냐고 전화기 너머에서 점잖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 편에선, 왜 하필 5·18에 전화를 하셨느냐며 못마땅한 듯 반문을 하였다. 두 자녀 이름으로 두 구좌를 후원했었다. 교회를 다니는 동안 극동방송 전파 선교비가 자동이체가 되었으니까 4년이 넘는 기간인 것 같다. 당시에 극동방송 측으로부터 선물이 배송된 적이 있다. 책 한 권이었는데 창업자이자 현 이사장인 김장환 목사의 자서전이다. 그 안에 전두환 대통령이 김장환 목사의 집에 방문한 일화가 나온다. 김장환 목사는 스스로의 행동을 자랑삼아 들려준다. 대통령이 내 집에 .. 2020. 5. 19.
생각의 기쁨 신동숙의 글밭(149) 생각의 기쁨 모든 생명에게 친절하되 벗과 책은 가려서 사귀어라는 옛말이 언제나 길이 됩니다. 하지만 제 어린 시절에는 이러한 말씀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학급 문고를 만드신다며, 집에 있는 책 중에서 두 권만 가져 오라는 과제를 내주셨습니다. 제 어릴 적 살던 집에는 교과서 외에는 책이 없었습니다. 막막했습니다. 동대신동 시장 입구 모퉁이에 작은 서점이 떠올랐습니다. 그 앞을 지나다니며 투명한 유리창 안으로 슬쩍 보아 오긴 했어도, 들어가 본 적은 없던 작은 서점입니다. 서점에 들어섰을 때의 막막함은 빈탕한 하늘을 대하는 듯도 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가늠해야 하는 순간 같기도 했습니다. 책을 고르려면 뭔가 좋은 책을 고를만한 지침.. 2020. 5. 16.
세상에 이런 글이 있구나 신동숙의 글밭(148) 세상에 이런 글이 있구나 - 허공처럼 투명한 다석 류영모 선생의 글 - 세상에 이런 글이 있구나 글쓰기에 틀이 있다면 그 틀을 초월하는 글 글에 울타리가 있다면 그 울타리가 사라지고 경계도 무색해지는 글 가령 시 한 편을 적을 때, 같은 단어를 두 번 이상 쓸 경우 필자는 긴장을 하곤 한다. 자칫 강조의 말이 강요의 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머지 단어들까지도 탄력을 잃어버리거나 의미가 퇴색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같은 단어를 두 번 쓰기가 늘 조심스러운 것이다. 다석 류영모의 글에선 같은 뜻의 다양한 표현으로 '얼의 나', '얼나', '참나', '영원한 생명', '진리의 성령', '하느님 아버지'라는 단어를 써도 너무 많이 쓴다. 그것도 한 단락 안에서만 찾아 보아도 .. 2020. 5. 13.
경전이 참고서라면 교과서는 신동숙의 글밭(147) 경전이 참고서라면 교과서는 지식의 잎새가 무성해도 하늘을 다 가릴 수는 없습니다. 지혜의 잎새가 풍성해도 마음을 다 밝힐 수는 없습니다. 다석 류영모 선생의 제자인 박영호 선생의 를 읽다 보면 화두처럼 가슴에 인이 박히는 말들이 있습니다. 제 마음에도 걸림이 없는 말들입니다. 류영모 선생의 제자인 함석헌 선생이 말하기를 '"선생님의 두뇌는 천부적이지만 대단히 과학적이다." 이어서 박영호 선생이 말하는 류영모의 사상은 대단히 신비하지만 미신적인 데가 없이 허공처럼 투명하다.'(박영호, , 교양인, 104쪽) 예전에 박재순 선생의 를 감동과 놀라움으로 다 읽은 후 지금껏 남아 있는 한 가지는 허공처럼 투명한 하나님입니다. 참나, 얼나, 영원한 생명이라고도 부르고, 불교에선 불성, 참자.. 2020. 5. 12.
학원 가는 자녀에게 진리를 얘기하려고 신동숙의 글밭(146) 학원 가는 자녀에게 진리를 얘기하려고 딸아이가 영어학원에 간다며 엄마 방으로 들어옵니다. 현관문 앞에서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할 때가 많은데, 구석진 방에까지 온 이유는 알고보니 용돈입니다. 읽고 있던 다석 류영모 선생의 내용 중에서 한 단락을 들려주어야겠단 마음이 실바람처럼 불었습니다. 중 3 딸아이에게 '성서조선'과 '조선어학회 사건'이라고 들어봤느냐 물으니, "어, 조선어학회는 들어봤어." 합니다. 그리고 읽고 있던 내용 중에 재미난 이야기가 있어서 들려주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서대문 형무소에 잡혀 들어간 한국인이 일본인 간수에게 개인 교사가 되어 공부를 가르쳐줘서 승진 시험을 치르게 해준 이야기입니다. 얘기를 들려주며 지갑에서 이천 원을 꺼내 건네주는데 딸아이의 눈이 번쩍하.. 2020.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