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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490

새로운 오늘 신동숙의 글밭(203) 새로운 오늘 오늘 이 하루를 새롭게 하는 맑은 샘물은 맨 처음 이 땅으로 내려온 한 방울의 물이 오늘 속에 섞이어지금 이 순간에도 흐르고 있기에 당신의 가슴 속 맨 밑바닥으로 흐르는 한 방울의 눈물이 눈동자 속에 맺히어바라보는 순간마다 새로운 오늘 2020. 8. 4.
먼지 한 톨 신동숙의 글밭(203) 먼지 한 톨 먼지 한 톨로 와서먼지 한 톨로 살다가먼지 한 톨로 돌아가기를 내 몸 무거운 체로하늘 높이 오르려다가땅을 짓밟아 생명들 다치게 하는 일은마음 무거운 일 들풀 만큼 낮아지고 풀꽃 만큼 작아지고밤하늘 홀로 빛나는 별 만큼 가난해져서 내 마음 가벼운먼지 한 톨로 살아가기를 높아지려 하지 않기를무거웁지 않기를부유하지 않기를 그리하여자유롭기를 2020. 7. 31.
"엄마, 내가 끝까지 지켜볼꺼야" 신동숙의 글밭(202) "엄마, 내가 끝까지 지켜볼꺼야" 오후에 갑자기 빗줄기가 거세지는가 싶더니 전화가 걸려옵니다. 합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아들입니다. 지난 겨울 방학부터 코로나19로 반년을 집에서 거의 은둔 생활을 해 오던 아들이, 그립던 친구들을 다시 만나기 시작한 건 초여름인 6월 중순입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학교와 함께 푹 쉬었던 학원들과 학습에도 다시 시동을 걸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즘 들어 매일 아침이면 거울 앞에서 머리 모양과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마지막에 마스크를 쓰고서 등교 준비를 하는 아들의 낯선 모습이, 이제는 제법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이유는 비가 세차게 내리니, 집에 있는 복싱 가방을 가지고 중간 지점인 학교 앞으로 와 달라는 얘기입니다. 집에 들렀다가.. 2020. 7. 30.
마음속의 말 신동숙의 글밭(201) 마음속의 말 믿으라 말씀하시는마음속의 말은 내가 먼저 너를 믿는다 사랑하라 말씀하시는마음속의 말은 내가 먼저너를 사랑한다 먼저 믿지 않고선먼저 사랑하지 않고선 결코 건넬 수 없는 마음속의 말 말씀보다 먼저 있는 마음 2020. 7. 29.
기도의 씨앗, 심기 전에 먼저 신동숙의 글밭(200) 기도의 씨앗, 심기 전에 먼저 장맛비가 쏟아지는 저녁답, 잠시 차를 세운다는 게 과일 가게 앞입니다. 환하게 실내등이 켜진 과일 가게 안을 둘러봅니다. 반쯤 익은 바나나가 비닐 포장에 투명하게 쌓여 있고, 붉은 사과는 계절을 초월해 있고, 일찍 나온 포도 송이에 잠시 망설여지고, 토마토는 저도 과일이라 합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과일이 노랗게 잘 익은 황도 복숭아입니다. 황도 복숭아를 좋아하는 아들의 얼굴이 동그랗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요즘은 떠오르는 얼굴이 그 옛날 맑은 밤하늘에 별처럼 별자리처럼 많아서 행복합니다. 과일에는 씨앗이 있듯이 불교, 천주교, 기독교 등 모든 종교에는 종교 교리 속에 씨앗 같은 영성의 기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리와 기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하나의 .. 2020. 7. 28.
낮아진 가슴 신동숙의 글밭(199) 낮아진 가슴 녹아서 일렁이는 마음의 물살은낮아진 가슴으로 흐른다 무심히 길을 걷다가 발아래 핀 한 송이 풀꽃을 본 순간 애틋해지는 건낮아진 가슴으로 사랑이 흐르는 일 제 아무리 어둔 가슴이라도어딘가에 품은 한 점 별빛을 본 순간 아득한 그리움이 출렁이는 건낮아진 가슴으로 사랑이 흐르는 일 내가 만난 가슴 중에서가장 낮아진 가슴은 무릎을 꿇고 앉아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우던예수의 손길에서 맴돈다 눈가에 고인눈물 한 방울이사랑으로 땅끝까지 흐른다 2020. 7. 27.
나의 소로우 그리고 하나 신동숙의 글밭(198) 나의 소로우 그리고 하나 눈을 감으면 바로 눈 앞으로 펼쳐지는 유년의 풍경이 있어요. 제가 태어나서 유년기를 보낸 부산의 서대신동 산동네입니다. 지금은 신평으로 이전한 예전의 동아고등학교가 있던 자리 바로 뒷동네입니다. 제가 살던 집 옆으로는 아침밥만 먹으면 숟가락을 놓자마자 달려가던 작은 모래 놀이터가 있었는데, 무쇠로 만든 4인용 그네는 언제나 선택 1순위였어요. 흔들흔들 왔다갔다 어지러워지면 땅으로 내려와서 그 다음으로 미끄럼틀을 타고, 시소와 지구본까지 골고루 돌면서 한번씩 타곤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겨워지면 모래땅에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빙글빙글 돌아가던 놀이 기구인 지구본의 이름이 제가 제일 처음 들었던 지구의 이름이예요. 누군가가 장난 삼아 세차게 돌리면 어지럽고 .. 2020. 7. 26.
평온한 둥지 신동숙의 글밭(197) 평온한 둥지 물 한 잔을 마시는 동안맨 처음 물이 떠나온 샘을 생각합니다 밥 한 그릇을 비우는 동안맨 처음 씨를 뿌리던 손을 생각합니다 들뜬 숨을 내려놓으며맨 처음 불어넣어 주신 숨을 생각합니다 샘과 손과 숨 이 모든 처음을 생각함은가슴으로 품는 일 처음을 품으며나의 앉은 몸은평온한 둥지가 됩니다 2020. 7. 24.
책 속에 글숲 신동숙의 글밭(196) 책 속에 글숲 세상에는 수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 마음에 쉼과 평화를 주는 책은 따로 있습니다. 책 속에 자연과 자연을 닮은 사람의 마음이 스며든 글에서 저는 쉼과 평화를 얻습니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경전과 고전에는 하늘과 땅, 자연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동·서양의 고전 음악을 들을 때면, 선율에 담긴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인간 내면의 율동과 더불어 깊은 호흡을 하게 됩니다. 어디서든 자연과 더불어 호흡을 한다는 것은, 그대로 제 무딘 감성에 불어넣는 생명의 기운이 됩니다. 그래서 책과 음악을 함부로 선택하지 않으려, 책장 앞에 서서 한동안 제목들을 곰곰이 마음에 비추어 보는 오랜 습관이 있습니다. 꽃과 나무와 한국의 자연을 사랑하셨던 법정 스님은 에서 를 .. 2020. 7.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