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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39

숨은 신? 숨은 신! 숨은 신!!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11) 숨은 신? 숨은 신! 숨은 신!! 내가 건강하고 평안했을 때 하느님은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도 내 곁에 계셨다. 그러나 정말로 그의 도움이 나에게 절실했을 때 그분은 웬일인지 철저히 침묵하셨다. 그럴지라도 나의 지성으로 그가 아니 계신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의 부재가 아니라 그의 항구여일한 존재하심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존재가 엄위하심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그의 철저한 침묵과 외면 가운데 진행되는 비생명의 현실이 늘 있어왔다. 단지 내가 아직 살만하고 여유를 부릴 만 했으므로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그의 존재하시는 방식과 그를 믿는 방식에 있어서 중대한 착오와 착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제 나에게 그러한 .. 2015. 7. 21.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10)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 나에게 여러 차례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나는 정중히 사양한다고 답변해왔다. 말이 정중이지 내 사양은 신경질이었다. 나는 그 인터뷰어들이 내게서 원하는 것들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내 말을 빙자하여 그들이 하고 싶은 말들이었거나 혹은 그들조차도 왜 그래야하는지에 관한한 여하간의 성찰도 없이 마치 서로의 역할이 그래야만할 것 같은 세상살이의 상투성으로 나의 신경질은 그 피곤함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일에 동원되어야 한단 말인가. 혹은 이것이 누군가에게 무슨 유익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2. 나의 장인은 지난 6월 1일 국가지정격리병동에서 돌아가셨다. 향년 71세. 공식적으로 메르스로 사망한 첫 번째 케이스였다. 언론들은 앞 .. 2015. 7. 7.
메르스 바이러스, 데카메론의 시간 천정근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10) 메르스 바이러스, 데카메론의 시간 지금 창궐(?)중인 메르스 바이러스 유언비어 유포의 진원지는 단언컨대 언론이다. 언론이란 결국 기자들이 쓰는 글이다. 그러나 기자들이 작가는 아니다. 기자는 작가처럼 상상력으로 기사를 쓰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이 둘의 경계가 분간이 안 될 때가 자주 있다. 문제는 상상력이 아니라 상상력의 건강성, 곧 독자들을 상상하게 만드는 기사가 지향하는 현실이 어떤 것이냐이다. 상상이 현실이 되려면 얼마만한 절망과 기원이 담겨야 하는 것인가? 절망 속에 기원을 담아야 한다면 그것은 어떤 상상력이어야 하는 것일까? 비단 메르스 바이러스뿐만이 아니다. 계속해서 우리 사회가 마치 재난 영화에 등장하는 현장의 수많은 캐릭터들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 2015. 6. 1.
폐허의 잔해 위의 남은 사랑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9) 폐허의 잔해 위의 남은 사랑 - 인간들은 잔인하고 인간들은 친절하다(라빈드라나드 타고르) - 설교자에도 비관적인 설교자가 있고 낙관적인 설교자가 있다고 한다. 나는 점점 비관적인 설교자가 돼 가는 나를 본다. 물론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비관적인 사람은 아니다. 나는 사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름 상당한 낙관적 행운을 누려 왔다. 감사하게도 극단적으로 혹독한 지경에 떨어진 적이 없었다. 어려움이야 늘 있었지만, 가령 내 아버지처럼 오늘이라는 날의 참담함 때문에 내일을 맞는다는 게 상상이 안 되는 절망 가득한 삶의 굴곡을 육체에 걸머지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나보다 젊은 나이에 세 명의 어린 자녀를 잃는 참척을 당하셨다. 사람들이 더러.. 2015. 5. 24.
삼층천(三層天)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8) 삼층천(三層天) -백 년 동안의 착각- 1. 흔히 ‘66권의 성경’이라는 표현을 쓴다. 물론 방대한 분량이긴 하다. 그러나 선입견 탓인지 낱낱권의 중량감을 한 권의 책이라 쳐주기엔 모자란다는 느낌도 있다. 그냥 ‘66건의 문서로 이루어진 히브리 성서’라든가, ‘유대인에게 전승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예순 여섯 개의 기록물’이라고 했으면 어떨까? 불경한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정확하지 않고 과장된 표현이 오히려 저작의 진정한 의미를 지나쳐 버림을 경계하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신약성서 27권’이라 칭할 때는 과장의 느낌이 좀 더 강해져 민망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사실 신약에는 현대적 관점에서 한 권의 책이라 칭할 만한 분량을 가진 문건이 없다. 내용의 중대함은 둘.. 2015. 5. 14.
죽음에 이르는 병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7) 죽음에 이르는 병 -속이지 말라, 그러면 속지 않는다. (L. H. 톨스토이)- 1. 나는 자주 나 자신의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타인의 죽음을 볼 때 더욱 그렇다. 분명 살아있으나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인가. 아직 거기에 이르지 않은 나는 가늠조차 할 수가 없다. 어디 죽음뿐일까. 추체험이라는 것. ‘입장 바꿔 생각해봐’라고 말하는 이유는 입장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는 살면서 죽음보다는 삶이 중요하다는 말로써 현실에 몰두해 살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현실이 더 이상 죽음을 잊게 해주는 수면제가 아니라 극명하게 죽음을 일깨워주는 각성제로 변할 것이다. 최후에 다다른 나에겐 더 이상 그 어떤 가짜위로도 용납.. 2015. 4. 26.
인문정신과 기독교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6) 인문정신과 기독교 - 기술이 아닌 삶 자체의 사랑을 위하여 - 1. 인문(人文)은 결국 삶에 대한 사랑 곧 인간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인문학을 한다면서 인간미가 없고 사람살이에 대한 너그러움이 없고 역사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그것은 결격이다. 아무리 깊다해도 피상적일 수밖에 없는 지식과 지성의 축적만으로는 인문이 될 수 없다. 태생적으로 우연히 획득한 고정된 신념과 그 연역적 목표만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것도 인문정신이라고 할 수 없다. 하물며 현세에 아부하고 권력을 탐하며 관청의 높은 자리와 연회의 상석에 앉으려 하면서 인문을 논하는 것은 말이 아니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남에게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단지 필요에 의해서만 인문을 들먹이는 것은 그 인문을 낳으려 한 알.. 2015. 4. 10.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으로 가자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5)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으로 가자 1. 또 다른 고향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 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으로 가자 (1941. 9.) 《윤동주 평전》에 따르면 서울에서 만주의 용정까지는 세 번이나 기차를 갈아타야하는 먼 길이었다. 두만강까지만 해도 1,660킬로미터나 된다고 했다. 고향에 도착한 그날 밤.. 2015. 2. 11.
막차를 타고 오시는 하나님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4) 막차를 타고 오시는 하나님 인생은 오묘한 데가 있다. 아무리 갈증나게 원해도 끝내 얻지 못하는 것도 있고, 감불생심 바라지도 않았는데 뜻밖의 수확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구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던 사람의 절망과 원했던 것을 얻어낸 사람의 환희의 중간쯤에서 아직도 원하는 것을 원하는 상태로, 여태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한 상태로 지내는 사람이 더 많다. 이 게임과도 같고, 도박과도 같은 인생의 대회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누가 그 기회를 덥석 움켜잡느냐에 달려있다.’ 이런 말은 참으로 매혹적이고 감질 나는 말이긴 하다. ‘꼭 그렇기만 하다면’하는 공연한 맘이 절로 나질 않겠는가. 그리고는 기대에 부풀어 손가락을 꼽으며 헤아.. 2015.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