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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502

새롭고 더 좋아진 노래들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단강에 와서 새로워진 노래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리라.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리라. 이 봄도 산허리엔 초록빛 물들었네 세상번뇌 시름 잊고 청산에서 살리라. 길고 긴 세월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 -단강에 와서 더 좋아진 노래 “떡갈나무 숲속에 졸졸졸 흐르는 아무도 모르는 샘물 있길래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지요 나 혼자 마시곤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는 이 기쁨이여” -단강에 와서 다시 좋아진 노래 - 1989년 2021. 7. 20.
편히 쉬십시오 당신 떠나시는 날 찬비가 내렸습니다. 을씨년스럽게 불어대는 바람과 함께 흩뿌린 겨울비는 가뜩이나 당신 보내며 허전한 우리의 마음을 더욱 어렵게 했습니다. 질컥질컥 내리는 겨울비가 여간 궂은 게 아니었지만 어디 당신 살아온 한 평생에 비기겠습니까. 부모님 세대는 아무래도 불행한 시절을 사셨습니다. 일제며, 난리며, 보릿고개며, 이래저래 8년씩이나 당신이 군 생활을 하는 동안 나무장사 품 장사로 홀로 자식을 키워야 했던 아주머니의 설움과 눈물. 병상에서 아주머니 눈물 흘리며 지난 시절 말하실 때 “뭘 지난 일을 갖고 그려” 하셨던 당신. 초등학교 그만둔 자식들이 “엄마, 호멩이질이 모두 글씨로 보여.” 했다며 재주 많은 자식들 못 가르친 한(恨) 눈물로 말할 때 깊이 팬 두 눈만 껌벅이셨던 당신. 바튼 된 .. 2021. 7. 19.
손바닥만 한 사랑 주일 저녁예배, 오늘은 특별히 박종구 씨 가정을 위해 예배를 드리는 날이다. 박종구 씨는 변정림 씨 남편인데 얼마 전 발에 심한 동상이 걸렸다. 술에 의지해 살아온 박종구 씨, 술에 취하면 고래고래 큰 소리가 작실 골짜기에 밤늦게까지 가득하다. 얼마 전 동네에 결혼식 잔치가 있던 날, 몹시 춥던 날이었는데 그날 동상이 걸렸다. 한낮에 술에 취한 채 나간 박종구 씨를 밤 11시가 되어서야 윗작실 논배미에서 발견을 했다. 마실을 갔다가 길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던 동네 아주머니가 발견을 한 것이었다. 연락을 받은 집배원 아저씨가 놀라 달려갔을 땐 온몸이 얼어붙어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짚단에 불을 놓아 한참을 녹인 다음에야 겨우 등에 업고 집으로 내려올 수가 있었는데, 그 사이 발에 심한 동.. 2021. 7. 18.
실컷 멀미를 하며 보건소장이 써준 소견서를 읽고 이리저리 부어오른 목을 살펴 본 의사는 너무 늦게 왔노라고 쉽게 말했다. 접수, 대기, 그토록 한참을 기다려 만났는데도 대답은 간단했다. 환자 먼저 나가 있으라고 한 후 나눈 이야기는 어두운 내용이었다. 방법은 수술뿐, 수술도 장담할 수는 없겠노라는 것이었다. 약으로서 치료나 병의 악화를 막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다. “수술을 하면 얼마나 들까요? 의료보호카드가 있는데요.” “글쎄요 그걸 제가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진찰비가 20-30만원, 수술비는 50-60만원 정도 될 겁니다.” 머릿속에 얼핏 100만원의 숫자가 지난다. “중요한건 돈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고 수술을 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결정일 거요. 돈이야 만들면 되는 것 아니겠소.” “실은 저희들에겐 돈도 문제가.. 2021. 7. 17.
가난하지만 작실속 속회, 유치화 청년 집에서 모이는 날이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캄캄해져야 일손을 놓고 집에 돌아오는 사람들, 그제야 씻고 저녁 먹고 하면 어느덧 시간은 저만큼이다. 일찍 모이자고 약속했으면서도 밤 10시가 넘어서야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치화 씨가 주변에 모임을 알리러 나간 사이 치화 씨 어머니가 툇마루에 촛불 하나 밝히고 사람들을 기다렸다. 아직 유치화 청년 집에는 전기가 없다. 오랫동안 비어 있어 전기가 끊긴 집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둘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사는 내력은 길고도 슬프다. 삶이란 저리도 기구하고 질긴 거구나 싶다.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을 기다리며 흔들리는 촛불 앞에 둘러 앉아 나누는 이야기는 불에 관한 이야기였다. “옛날엔 등잔불 아래서도 명주 올이 잘 보.. 2021. 7. 16.
지지 못한 지게 지게를 지고 논두렁길을 걸어오는 사람, 작은 키에 독특한 걸음, 아직 거리는 멀지만 그분이 신집사님임을 안다. 당신 키보다 높은 나무를 한 짐 졌다. 좁다란 논둑길을 걷는 걸음새가 영 불안하다. “집사님!” 땅만 쳐다보고 오던 집사님이 깜짝 놀라 섰다. 이마에 알알이 땀이 맺혔다. 장갑도 없이 꺼칠한 손. “힘드시죠?” 뻔한 질문이 송구하다. 많은 말은 필요 없다. 겉치레도 그렇다. 다시 웃고 마는 집사님. “제가 한번 져 볼게요.” “안 돼요! 전도사님.” 집사님은 놀라 막는다. 조금만 져 보겠다고 몇 번을 얘기한 끝에 지게 아래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을 수 있었다. 지게에 등을 대고 두 팔을 집어넣어 어깨띠를 양쪽 어깨에 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깨끈이 어깨에 걸리질 않는다. 주르륵 팔뚝으로 내려와.. 2021. 7. 15.
앞으로 걷는 게 게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썰물이 되면 나타나는, 바닷가 갯벌에 사는 흔한 게 중의 하나였습니다. 어느 날 그가 이상한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도 생각지 않은 것을 혼자 생각하면 이상하다고 하더군요. ‘우린 왜 옆으로 걸을까. 앞으로 걸을 순 없는 걸까?’ 그는 앞으로 걸어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옆으로 아니라 앞으로야.’ 맘속으로 몇 번이나 다짐을 했습니다.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여 마신 후 조심스레 발을 뻗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떨렸습니다. 눈을 뜨고 싶었지만 참고 다른 한 발을 마저 옮겼습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눈을 떴습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발은 옆으로 가 있었습니다. 처음이니까 그렇겠지 하며 다시 한 번 해 보았습니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생각뿐 발은 옆으로 갔습니다. 몇 번을 더 .. 2021. 7. 13.
새총까무리 아프기 잘하는 박종석 성도가 또 감기에 걸렸다. 해수병이라 말하는, 늘 바튼 기침을 하는 터에 감기가 걸렸으니 연신 된 기침이다. ‘크렁크렁’ 속에서부터 나오는 숨소리가 더욱 거칠다. 지난번처럼 또 혼자 누워 계셨다. 좁다란 방안 가득 산수유를 말리며 아랫목에 좁다랗게 누워 계셨다. 기도하고 마주 잡은 꺼칠한 손, 놀랍게도 그분의 엄지손톱은 V자 모양으로 움푹 패여 있었다. 산수유 씨 빼느라 손톱이 닳은 것이다. 새총 까무리, 깊게 패인 손톱을 보며 떠오른 건 어릴 적 새총까무리였다. 아기 기저귀 할 때 쓰던 노란 고무줄을 양쪽으로 묶어 만든 새총. 힘껏 고무줄을 잡아 당겨도 나무가 휘거나 부러지지 않아야 되는 Y자 모양의 튼튼한 나뭇가지를 우리는 새총 까무리라 불렀다. 새총 감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 2021. 7. 12.
거룩한 모습 그 분은 늘 그곳에 있었습니다. 원주 A도로와 B도로 사이 중앙시장 골목, 해가 한 중간에 떠올라야 잠시 햇빛이 건물사이로 비집듯 비취는 곳입니다. 몇 가지 과일을 상자에 담아 펼쳐 놓고 장사를 하는, 주름이 많은 아주머니입니다. 가끔 나는 그곳을 지나게 되는데 골목을 지날 때마다 멈칫 발걸음을 멈추곤 합니다. 아주머니는 과일을 팔고 있을 때도 있지만 대개는 다른 모습입니다. 조그만 좌판 위 그분은 정갈한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책을 읽곤 했습니다. 낡은 성경책입니다. 표면의 붉은색이 허옇게 변해버린, 아주 낡은 성경책이었습니다. 읽던 곳 바람이 덮지 못하도록 성경 귀퉁이엔 빨래집개를 꽂아 두었습니다. 허름한 옷차림에 오가는 사람들 마다하지 않고 틈틈이 성경을 읽는 그분의 모습은 내겐 성스러움입니다... 2021. 7. 11.